문화

눈 가리고 '고래 노래' 연주…암흑서도 음악은 빛난다

입력 2022/07/03 16:53
수정 2022/07/03 20:39
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올해 주제는 '가면(mask)'
코로나 시기에 세상 떠난
조지 크럼 작품 등으로 개막
화분 4개 두드리는 연주도

역대 최장·최대 규모로 진행
22일간 주요 콘서트만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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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뮤직텐트에서 열린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에서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과 첼리스트 김두민, 피아니스트 손열음(왼쪽부터)이 조지 크럼의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연주자를 위한-고래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강원문화재단]

2일 저녁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뮤직텐트. 한낮 찌는 듯한 무더위를 이겨내고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이 열리는 이곳까지 찾아온 클래식 음악 팬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다소 편안해 보이는 검정색 옷을 입고 한 남성이 등장했다.

객석을 메운 관객 1000여 명의 박수를 받으며 시작된 곡은 '화분 연주'였다. 타악기 주자 매슈 에른스터는 막대기 2개로 크기가 다른 화분 4개를 두드려 가며 프레더릭 르제프스키의 '대지에(To the earth)'를 연주했다.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 화분의 크기 차이에서 발생하는 음의 높낮이만으로 무대를 채우면서 음정 없는 노랫말을 더했다. 그가 손에 쥔 막대기와 목소리에 힘을 넣을 때마다 듣고 있는 이들에게도 긴장감이 전해졌다.


화분 연주가 끝나자 세 명의 연주자가 무대 위에 올랐다. 각자 플루트와 첼로, 피아노 앞에 선 그들의 눈은 이번 음악제의 주제이기도 한 '가면(mask)'으로 가려져 있었다. 연주자가 등장할 때마다 환해지던 조명 대신 쪽빛 일색만 비춘 채 연주가 시작됐다.

그들이 연주한 조지 크럼의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연주자를 위한-고래의 노래'는 한 해양과학자가 녹음한 혹등고래의 울음소리에 영감을 받은 곡이다. 시간의 시작과 바다를 상징하는 첫 두 악장을 시작으로 시생대부터 신생대까지 다섯 개의 변주가 이어졌다. 피아노 연주자는 건반과 함께 내부 현을 직접 만져 가며 연주했고, 플루트 연주자는 본인의 목소리로 마치 고래 울음과 같은 소리를 냈다. 무대를 채운 푸른빛은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며 연주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연주가 끝나고 다시 무대가 환해지자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과 첼리스트 김두민, 그리고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제의 예술감독인 손열음의 얼굴이 드러났다. 개최에 앞서 이번 음악제에 '역대 최장·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을 생각하면 개막공연 1부는 지극히 고요하고 단조로웠다. 현대음악의 난해함과 행위예술을 보는 듯한 연주에 일부 관객들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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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공연 1부의 선곡은 이번 음악제의 주제를 전하기 위한 손열음 예술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는 지난해 작고한 르제프스키와 올해 초 생을 마감한 크럼의 작품을 통해 새 시대가 열린다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손 예술감독은 "현재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까운 오브제(물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마스크를 떠올리게 됐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가면서 하나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음 시대가 온다는 생각에 최근 돌아가신 분들의 작품을 처음에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2부 공연은 올해 처음 음악제 무대에 서는 '에스메 콰르텟'과 '모딜리아니 콰르텟'의 연주로 채워졌다.

개막공연으로 포문을 연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오는 23일까지 총 18회의 메인 콘서트와 4회의 스페셜 콘서트, 5회의 연중기획 시리즈 공연을 이어간다.

규모가 커진 만큼 새로운 얼굴도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됐다. 2018년 손 예술감독 부임 이후 해외 유수 악단에 재직 중인 단원으로 구성해 주목받은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PFO)'를 이을 '평창페스티벌스트링즈'와 '평창페스티벌바로크앙상블'도 이번 음악제에서 첫 무대를 갖는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로베르토 곤살레스 몬하스,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알레시오 박스,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다이신 가시모토, 바수니스트 닥옌센 등도 처음으로 음악제를 찾는다.

[평창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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