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돈돈돈 하지 말라지만 그 자체가 인생"…돈의 인문학

입력 2022/07/05 17:04
수정 2022/07/06 11:22
대문호 에밀 졸라도,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간파했다

인문학으로 본 돈의 양면성
◆ 매경 포커스 / 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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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돈이란 인생 그 자체요! 돈을 없애보시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거요, 아무것도!" 자본주의가 막 밑그림을 완성해가던 19세기 후반 프랑스 대문호 에밀 졸라는 '돈'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외친다.

이 소설은 프랑스 은행가와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금융자본주의의 민낯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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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50대 정력적인 은행가 사카르의 성공과 몰락이 주요 줄거리다. 소설에서 주목하는 건 돈의 양면성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성 파괴와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과 선행의 밑거름이 되는 돈의 양가적 얼굴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면서 에밀 졸라는 외친다.


"왜 돈이 모든 오명을 뒤집어써야 하느냐"고.

그가 돈에 대해 내린 결론을 소설의 구절로 대신한다면 이것이다.

"돈은 저주이며 축복이다. 모든 악이 돈에서 비롯되고 모든 선도 돈에서 비롯된다. 돈은 내일의 인류를 성장시킬 퇴비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모든 가치의 기본값이다.

선과 악의 추동력이자, 찬미와 증오의 대상이고, 보상과 징벌의 형식이다. 오랫동안 돈은 인문학의 중요한 화두였다. 얼핏 돈은 은행에 있고 인문학은 도서관에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인문학이 '돈'에 대해 어떻게 말해왔는지 살펴보자.

▶ 돈은 무차별한 외면의 상징이다. 동시에 내면을 지켜주는 수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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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인문학' 하면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하는 역작이 있다. 바로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의 '돈의 철학'이다.

20세기가 막 문을 연 1900년.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명저 세 권이 출간된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에드문트 후설의 '논리 연구', 그리고 바로 지멜의 '돈의 철학'이다. 지멜의 '돈의 철학'은 어떤 책일까. 다음 문장을 곰곰이 읽어보자.

"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면(外面)화되는 모든 것의 상징이고 원인이다. 그러면서도 돈은 개인의 가장 고유하고 내면적인 것을 지켜주는 수문장이기도 하다."

돈의 양면성에 대한 적확한 지적이다. 돈은 모든 것의 가치를 외면적으로 평가해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돈은 내면에 감추어진 개인의 고유한 개성을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지멜은 자본주의를 하나의 실재적인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인다. 당시만 해도 인문학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자본주의가 타락과 차별을 조장한다는 논리였다. 자본주의자로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 자본주의를 욕하는 모순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멜은 자본주의를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 질서이자 정체성으로 봤다. 그는 자본주의와 그 토대 위에 자리 잡은 화폐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임을 직시한다. 그는 돈과 영혼의 결합에 관심을 가졌다.


자본주의도 하나의 문화이며 그것이 한 시대 정신문화의 뿌리를 형성한다고 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혜안이다.

돈은 처음에는 양적 차이만을 구별하는 도구로 인식된다.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돈의 양적 기준이 현대인을 탈개성, 탈인격으로 몰고 간다는 말에도 일부 수긍이 간다. 하지만 돈은 궁극적으로 현대인이 누리는 문화적·정신적 삶의 토대가 된다. 돈을 소유한 개인은 결국 그 돈을 이용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삶을 일구어 나간다. 이것은 영혼을 풍요롭게 한다. 지멜은 이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인간을 영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돈이 다시 인간을 영혼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아이러니가 바로 돈의 속성이다.

▶ 자공이 재산을 잘 모으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잘 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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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의 원류인 공자는 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제왕들의 책사가 되기 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는데 그가 가장 오래 한 일이 노나라의 창고지기였다. 위리(委吏)라는 하급 벼슬이었는데 창고의 물건들을 관리하고 출납업무를 하는 직책이었다.

철학자인 공자가 창고지기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공자가 매우 셈을 잘하는 창고지기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 가장 돈이 많았던 사람이 자공(子貢)이라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중국 최초의 재벌이라고 한다. 공자가 그를 싫어했을 것 같지만 아니다. 그는 공자의 애제자였다. 공자 사후에 자발적으로 6년상을 치른 것도 그였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공이 재산을 잘 모으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논어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지멜이 돈의 양면성을 간파한 것과 비슷하다. "가난한 이는 아첨을 해야 하고, 부자는 교만하기 마련이다.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이게 쉬운가. 평범한 사람들은 가난하면 아첨하고 부자가 되면 교만하게 된다. 내세가 아닌 현실의 도를 설파했던 유교의 맹주였던 공자는 가난하면서도 도를 알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행하는 것이 최상의 가치라고 본 것이다. 역설적으로 돈의 양면적 속성도 인정한 것이다.

▶ 군자는 취(取)해서는 안 될 곳에서 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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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모은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도 돈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관대한 사람은 올바르게 소비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괴로워한다.


또 취(取)해서는 안 될 곳에서 취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를 문제 삼지 않고, 어디에서든 무턱대고 돈을 취하는 사람은 방탕하거나 인색한 사람이다. 그들은 가난해야 할 사람에게 부를 주고,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소유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그에게 돈은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좀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훌륭한 사람, 즉 돈을 제대로 쓸 사람에게 돈이 분배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야 세상이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유지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탈레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탈레스가 어느 날 별을 관찰하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걷다가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본 하녀는 "자기 발밑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면서,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다니!"라며 그를 조롱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탈레스를 보고 "도대체 학문 따위는 쓸모없는 것이오. 당신같이 학문만 하는 사람은 늘 가난하게 살지 않소?"라며 비웃었다. 참다못한 탈레스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사건을 만든다. 탈레스는 자신의 모든 천문 지식을 동원해 올리브 농사가 풍작일 것으로 예측되는 해를 특정하고, 겨울에 미리 올리브 착유기를 싼값에 사 모았다. 가을이 되어 실제로 풍년이 들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기름을 짜기 위해 탈레스에게 착유기를 빌리러 왔다. 탈레스는 착유기 대여로 순식간에 큰돈을 벌었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에피소드를 대중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자는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학자의 목적은 돈을 버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탈레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돈을 버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일들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일화다. 돈으로만 가치를 평가하려는 만능주의에 경고를 날린 것이다.

▶ 돈을 빌려주면 종종 돈은 물론이고 친구까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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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에 종종 썼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스스로 돈에 몰두했던 사람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단역배우였던 젊은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다. 이후 극장 경영에 나서면서 부를 쌓은 그는 글을 쓰는 틈틈이 몰트, 보리 등 각종 곡물을 싼값에 사들여 가격이 올랐을 때 주변 이웃들과 무역상에게 되파는 사업을 했다.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번 돈으로 대부업까지 했다고 말한다.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추궁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가 왜 "돈을 빌려주면 종종 돈은 물론이고 친구까지 잃게 된다"는 유명한 명언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설명이 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셰익스피어의 이런 경험이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명작의 모티프가 됐다는 점이다. 제인 아처 애버리스트위스대학 르네상스문학과 교수는 "속물적인 경험이 오히려 이 창의적인 천재의 집필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그가 겪은 가난 역시 그가 더 인간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 돈은 욕망과 결탁하면 비극이지만, 그러지 않으면 인간의 가능성을 지켜준다


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선이 늘 공존한다. 흔히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완전체가 아니다.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행복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뉘기도 한다. 당장 등록금이 없는 학생이거나 한 끼 식사도 못 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돈도 분명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돈이 늘어난다고 꼭 그만큼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해 돈과 행복은 완전히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돈이 많아지면서 최종적인 만족을 잃어버리고 돈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돈이 행복을 빠르게 얻을 수단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돈이 곧 행복인 것은 아니다. 이를 혼동하면 행복을 위해 돈을 벌려던 애초의 목적을 상실한 채 돈에 집착하는 우를 범한다. 돈은 언제나 우리가 부여하는 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사람에 따라 돈은 악의 화신이기도 하고 선한 수단이기도 하다. 돈이 욕망과 결탁하면 많은 비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돈은 인간이 가진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루이기도 하다. 고전들이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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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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