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낯익은 벽화가 반복해 말한다…"세상을 바꿔보자"

입력 2022/08/09 17:21
수정 2022/08/10 10:08
셰퍼드 페어리 최대 개인전

'눈을 떠라, 마음을 열어'
11월 6일까지 롯데뮤지엄

오바마 대선 포스터로 명성
거리 벽화를 예술로 끌어올려
'예술의 민주화' 외치는 행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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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경종을 울린 셰퍼드 페어리의 2021년 작품 Open Minds, Version1. [사진 제공 = 롯데뮤지엄]

나를 응시하는 눈, 눈, 눈….

푸른 지구 아래쪽 크게 뜬 눈이 있다. 사람 눈 같지만 감시카메라 렌즈도 연상시킨다. 위에는 'EYES OPEN(눈을 떠라)'이라는 붉은 구호가 박혀 있다. 그 위로 장미와 카네이션이 섞인 크고 붉은 꽃이 핀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거리 예술가) 셰퍼드 페어리(52)의 최신 작품 'Eyes open'(2021)이다.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주변을 살피고 마음을 열어 주체적이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기후변화에 직면한 지구공동체에 연대의식도 드러낸다.

영국에 뱅크시가 있다면, 미국에는 그의 친구 페어리가 있다.


롯데문화재단 롯데뮤지엄은 페어리의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 470여 점을 모아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EYES OPEN, MINDS OPEN)'를 열고 있다. 전시장의 여성 운동가와 예술가의 눈빛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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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 페어리의 2008년작 Obama Hope. [사진 제공 = 롯데뮤지엄]

공식 인스타그램 폴로어만 130만명으로 팬덤이 강한 페어리는 2008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초상화 포스터 'HOPE(희망)'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원화 판매대금으로 포스터 30만장과 스티커 50만장을 무료로 배포해 오바마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미국 성조기 빛깔을 반영한 이 초상은 그해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고, 워싱턴 DC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소장됐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2009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됐다.

그는 비주류 문화계에선 이미 무시 못할 존재였다. 미국 남동부 소도시 중산층 출신으로 14세 때 펑크록과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누구나 할 수 있다(DIY)는 평등주의 정신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의식이 이때 싹텄다.

시작은 다소 엉뚱했다.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RISD)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며 스케이트보드 가게 아르바이트로 스티커를 제작했다.


1989년 프랑스의 거인 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1946∼1993) 얼굴로 장난 삼아 만든 스티커가 전환점이 됐다. 도시 곳곳 스티커가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일종의 문화 현상이 됐다. 하지만 상표권 분쟁에 휘말려 얼굴을 단순화하고 B급 영화의 반복된 대사 'OBEY(복종하라)'를 더한 도상으로 바꿔야 했다. 'OBEY Giant' 캠페인의 시작이다. 거인은 통제하는 권력도 은유해 복종보다는 불복종이나 저항을 유도한다.

페어리는 예술의 힘을 확인하고 인종과 성차별은 물론 혐오범죄, 환경파괴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벽화와 포스터로 펼쳤다. 그는 러시아 구성주의식 사회주의 선전물부터 광고, 팝아트, 만다라 문양 등 다양한 미술사조를 자기 방식으로 흡수해 레이저 커팅과 실크스크린, 콜라주로 표현한다. 강력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상투적 표현도 꺼리지 않는다. 한번 쓴 이미지가 반복되고 다른 작품에 조연처럼 등장해 변주된다.

페어리는 "작품이 미술관에만 머물지 않고 거리로 나갈 때 비로소 대중과 연결될 수 있다"며 "작품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대중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예술이 지닌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는 서울에도 벽화 5점을 남겼다. 롯데월드타워 내외부, 석촌호수 건물은 물론 도산대로변 아티스트컴퍼니빌딩과 성수동 복합문화공간(피치스 도원)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전시는 11월 6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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