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물고기와 아이, 새…담배 은박지에 담긴 이중섭의 순수 세계

입력 2022/08/10 17:07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12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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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작품 90점 한꺼번에…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손바닥만 한 은박지 속에서 알몸의 아이들 여럿이 엉겨 놀고, 큼직한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다.

별다른 채색도, 세밀한 묘사도 없이 빛바랜 은빛 바탕에 검은 윤곽선으로만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담은 이중섭의 은지화다.

은지화는 이중섭 작품 세계에서 독자적인 분야로 평가받는다.

담배를 감싸고 있는 알루미늄 속지를 철필로 눌러 오목하게 만든 뒤 안료나 담뱃재를 바르고 문질러 윤곽선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어려운 시절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로 만들어낸 이 그림들은 이중섭 작품의 순수성과 쾌활한 필치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구상하던 작품의 초고이기도 했다.




그는 1953년 7월 일본으로 건너가 아내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은지화 70여 점을 건네며 나중에 그릴 작품의 '에스키스'(초벌 그림)니 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1956년 이중섭이 4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우리는 조각난 은지화에서 끝내 완성되지 못한 작품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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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닭과 병아리' 이건희컬렉션 통해 첫 공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2일 막을 여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이 같은 은지화 27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전시장 벽면에는 은지화의 디테일을 커다랗게 확대해 볼 수 있는 영상을 상영해 관람객들이 작은 은박지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현정 학예연구사는 "은지화는 실제로 보면 섬세하고 아름답다"며 "철필로 담뱃갑(속지)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누르고 검은색을 바르는 것이 상감기법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의 작품 90여 점을 한데 모았다.




전시를 따라가면 1952∼1955년께 그려진 은지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와 게, 아이들, 새와 같은 도상이 이를 전후한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중섭은 아예 같은 그림을 여러 차례 반복해 그리기도 했는데, 그 바탕에는 진한 가족애가 자리하고 있다.

태현·태성 두 아들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동봉한 그림을 놓고 다툴까 싶어서 같은 그림을 각자 앞으로 따로 그려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존에 소장해온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아들인 '태현군'이라는 글씨가 붙은 동일작이 함께 공개된다.

연애 시절 아내에게 보낸 엽서화도 총 36건(37점)이 전시된다. 발랄한 색감과 초현실주의적인 경향, 점점 발전하는 이중섭의 화풍이 드러나는 그림들이다.

우 학예연구사는 "엽서화를 보면 초반에는 먹지를 대고 그리다가 나중에는 먹지 없이 선을 긋고, (대표작인) 황소를 보면 외곽선이 없다"며 "1940년대 쌓아온 것이 1950년대에 화려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닭과 병아리', '물놀이하는 아이들'도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전시는 12일부터 내년 4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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