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22 이효석문학상] 평범함으로부터 멀어지는 우리들에 대하여

입력 2022/08/10 17:26
수정 2022/08/10 17:27
번듯한 집·매년 해외여행…
MZ세대에게 평범함이란
절대 평범한 일 아니다
◆ 제23회 이효석 문학상 / 최종심 진출작 ⑥ 김지연 '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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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양꼬치집. 미선 앞에서 맥주 세 병을 연거푸 마신 호두가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거기 민재 있어요? 왜 없어요?"

호두는 민재에게 2000만원을 빌려줬다. 전화기를 꺼두고, 가끔 미선에게만 연락을 하는 민재. 호두에겐 민재가 '고동'이란 곳에 있다는 알쏭달쏭한 힌트만 남겨졌다. 민재는 지인에게서 몇십만 원부터 100만원, 200만원, 많게는 수천만 원을 꾼 뒤 도망쳤다. 호두는 지금 고동이란 지명이 들어간 모든 곳에 전화를 돌리고 있다.

김지연의 단편 '포기'는 MZ세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룬 작품이다. 돈 빌리고 사라진 민재, 돈 뜯기고 울먹이는 호두, 또 민재의 전 여친이자 호두의 사촌인 미선은 사실 별반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청춘들이다.


민재가 떡하니 나타나면 다행이겠지만 제목이 암시하듯 호두가 민재의 채무상환을 포기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현시대 젊은 세대에게 '평범함'이란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집이 있고, 차가 있고, 매년 해외여행을 가고, 또 그 모든 일상을 함께할 애인과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것. 이 같은 '보통 사람'의 평범한 삶은 진짜 보통 사람에겐 불허된다. 미선은 생각한다.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시절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건 아주 어렵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삶이었다.'

우리에게 평범함이란 도대체 뭘까. 그건 무탈한 생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 민재는 생각했다.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 없는 삶이란 없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떼인 돈을 둘러싼 세 사람의 현재 풍경은 하나의 알레고리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두가 망했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암울한 시대의 초상이랄까. 흥미로운 대목이 다수다.


사과하지 않았는데도 용서와 화해가 오가고, 그런 식으로 오해가 쌓여 돈독해지는 호두와 미선의 이상한 관계는 잘못 그려진 인물화 같다. 설거지가 쌓여 있는 건 참을 수 없어도 머리카락이 떨어진 건 그럭저럭 참을 만한 미선과 그와 정반대인 호두의 동거도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미세먼지가 '나쁨'으로 표시되자 "그럼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거잖아"라고 말하는 대목도 밑줄을 긋고야 만다. 늘 '매우 나쁨'이거나 최악이어서 그냥 나쁨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세대 분위기 때문이다.

김동식 평론가는 "소설은 보통 사건 내지 문제를 만들어내는데 이 작품은 문제의 발생보다 풀어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중산층적인 삶을 기준 삼는다면 지금 세대는 축적을 해야 가능한 계층인데 이걸 포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편혜영 소설가는 "호두도 민재에게 해를 가하려 하지 않고, 도망간 민재도 최선을 다하려 하는 점에 주목했다. 특별한 삶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한 세대의 이야기란 생각으로 읽었다"고 말했다. 구효서 소설가는 "김지연 소설의 장점은 만듦의 티가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참 잘 만들어낸다는 것"이라며 "돈 떼먹은 민재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연 소설가는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장편소설 '빨간 모자'를 출간했다. 2021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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