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제 8000원 짜리도 없다…종이값 인상에 시집 30% 올라

입력 2022/09/22 17:10
수정 2022/09/22 23:25
문지·민음 1만2000원으로
인쇄비·제본비 20% 상승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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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진은영·문정희 시인의 시집. 인상된 가격 1만2000원이 적용됐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민음사]

얇은 주머니로도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며 세상과의 불화를 달래던 문학도들의 풍경이 이제 옛말이 될 전망이다. 태풍처럼 들이닥친 고물가에 주요 출판사 시인선 권당 가격이 최근 전부 1만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이제 8000원, 9000원 하던 시집은 사라졌다. 출판사들은 "시집 독자층 이탈을 고민했지만 제작원가가 올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22일 문학출판계에 따르면 문학과지성사와 민음사는 최근 시인선 가격을 각각 3000원, 2000원 인상했다.


1980년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이후 총 572권의 시집이 출간된 '문지 시인선' 가격은 9000원이었으나 1만2000원으로 올랐고, 최근 299권까지 출간된 민음사의 '민음의 시'도 지난 6월부터 가격이 1만원에서 1만2000원으로 인상돼 출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증쇄하는 시집도 인상된 가격을 적용해 일제히 1만2000원으로 올랐다. 문학동네·창비 시인선은 3년 전부터 이미 1만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서정시학 시인선은 1만3000원, 파란 시인선과 현대시 기획선도 1만원이어서 앞으로 서점가에서 '1만원 미만 시집'은 거의 만나보기 어렵게 됐다.

시인선을 내는 출판사들은 시인선 가격을 여간해선 잘 올리지 않는 편이다. 지갑이 얇은 학생이 주요 독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별 판매가가 다른 일반 책에 비해 시인선 시집은 한 번 인상되면 모든 시집의 정가로 굳어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 시집은 소규모로 초판을 찍은 뒤 장기간에 걸쳐 증쇄를 거듭하는 경우가 잦은데, 스테디셀러는 구판과 신판의 가격 차가 크지 않도록 조절하기도 한다.


가격 인상 시 소수만 남은 시인선 고정 독자층이 줄어들 우려도 있어 다른 책에 비해 시집만큼은 저가를 고수해왔다.

출판계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주요 출판사 시집 가격이 30% 가까이 오른 까닭은 최근 출판계에 들이닥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한 권의 시집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용지대(종이 값), 인쇄비, 제본비가 필요한데 모두 20~30% 오른 상태다.

시인선을 출간하는 문학출판사 관계자는 "용지대가 23~25%, 인쇄비 10%, 제본비는 20% 인상돼 제작비 여러 부분에서 더는 버티기 힘든 탓이 컸다"며 "2년 남짓 인상 여부를 고민하다가 올여름부터 결국 인상안을 적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 대표는 "1만5000원 안팎이던 인문서 책값이 요즘엔 신간 기준 2만원에 가깝게 올랐다. 제작원가 상승으로 팔수록 손해를 볼 위험이 있어 인상이 불가피한데 시집의 경우 1만원 미만 가격 책정은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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