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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돼지와 사랑에 빠진 김동연 전 부총리

정혁훈 기자
입력 2020.08.09 06:01   수정 2020.08.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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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전문가 교육과정 고문 맡은데 이어
이천 설봉 돼지농장 방문해 가족들 격려
'양돈 마이스터' 초청 자장면 간담회도 열어
"보조금 제도 수술하고 순환농업 키워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출액 기준으로 가장 많이 먹는 것은? 정답은 쌀이다. 대부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잘 한다. 핵심 질문은 그 다음이다.

그러면 한국인들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건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답을 제대로 못한다. 쇠고기 아니면 닭고기?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래도 근접한 사람이다. 정답은 바로 돼지고기다.

가장 최신인 2018년 농업 생산액 통계를 보면 쌀 생산액이 8조4000억원으로 1위, 돼지가 7조1000억원으로 2위, 그 다음이 한우(4조8000억원), 닭(2조3000억원), 우유(2조1000억원), 오리(1조3000억원), 딸기(1조2900억원), 계란(1조2700억원) 순이다. 사실 2018년 이후 쌀값이 올라서 그렇지 2016년과 2017년만 해도 쌀보다 돼지 생산액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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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5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설봉농장에서 새끼돼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혁훈 기자] 이런 돼지를 생산하는 농가가 한국에 대략 5000곳 있다.


돼지 생산액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적은 숫자다. 그만큼 벼농사에 비해 양돈농가가 대형화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더구나 돼지농가는 앞으로 줄면 줄었지 더 이상 늘어나기 어렵다. 주민들 민원 때문에 사실상 지자체에서 신규 돼지농장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돼지농가들은 앉아서 쉽게 돈을 버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돼지고기 소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을 수입산이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축산은 앞으로 대체육과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식물성 고기나 배양육 등 대체육이 축산 시장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위기가 잉태되고 있는 셈이다.

돼지농가들이 조금이라도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다.


돼지 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 '양돈 마이스터'들이 지난 5월부터 매달 한 차례 공부모임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혁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마이스터는 양돈 경력 15년 이상을 갖춘 사람 중에서 필기시험과 역량평가, 현장심사를 통과해야 될 수 있다. 국내에 양돈 마이스터가 단 13명에 불과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마이스터 중 7명이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으로부터 선진 양돈 기술을 습득하는 '와게닝겐 어드밴스트 애그리컬처 마스터 클래스(WAAMC)'에 참여하고 있다.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와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전 농촌경제연구원 원장)이 양돈 선진화를 위해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 마스터 클래스에 뜻밖의 인물이 참여하고 있다. 바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그는 이 과정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5월 마스터 클래스 킥오프 미팅 때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가 고문을 맡아달라는 마이스터들의 즉석 요청을 "부족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역할을 하겠다"며 받아들였다.


김 전 부총리까지 나서서 힘을 실어주자 마스터 클래스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달엔 세계적인 양돈 전문가인 네덜란드 와게닝겐대 로버트 호스테 교수팀과의 영상회의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민승규 교수는 "사실 영상회의가 처음이어서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호스테 박사의 한국 양돈업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마이스터들도 한 마디라도 놓칠새라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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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오른쪽)가 지난 5일 경기도 이천 설봉농장에서 엄문일 설봉영농조합 대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정혁훈 기자] 이런 소식을 접한 김 전 부총리가 마이스터들에게 힘을 더 보태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지난 5일 마이스터가 운영하는 이천 돼지농장을 직접 방문해 격려한 데 이어 7일엔 마이스터들을 서울로 초청해 개인 비용으로 자장면 간담회를 열었다.

김 전 부총리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설봉농장을 방문할 때 동행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에어샤워를 거친 뒤 탈의실에서 속옷만 남기고 위생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양말을 벗고 장화도 신었다.


각 돈사로 들어갈 때마다 장화를 소독액에 담궈야 했다.

김 전 부총리를 안내한 엄문일 설봉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돼지를 실어가는 트럭도 농장 안으로는 못들어오고 바깥으로 연결된 출하장에 차를 댄다"며 "운전자도 트럭에서 내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검역을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곳에서 기르는 돼지는 총 6500마리 정도. 그 중에서 새끼돼지를 낳는 모돈은 대략 500마리 정도다. 이 모돈을 잘 관리하는 것이 돼지농장의 핵심 역량이다. 모돈 한 마리가 1년에 평균적으로 2.4회 새끼를 낳는다. 1년에 새끼를 몇 마리 낳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좌우된다. 우리나라 양돈 농가는 이 마리 수가 평균 20마리 정도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 같은 축산 선진국들은 30마리 정도를 낳는다. 이 숫자를 올리는 게 한국 양돈 농가들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김 전 부총리는 돼지 이력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각 모돈이 있는 자리에는 해당 돼지의 이력이 붙어 있다.


모돈의 출생일을 비롯해 교배일, 분만일, 출산 새끼 수를 비롯해 각종 호르몬 및 항생제, 진통제 등 접종일과 시간 등 내역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엄 대표에게 돼지는 임신기간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엄 대표는 "3개월 3주 3일 즉 114일간 임신을 한다"며 "통상 새끼돼지 젖을 먹이는 기간이 28일이고, 이후 다시 임신하기까지 7일을 쉰다고 하면 1회 번식 간격이 149일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부총리가 어미 주변에서 놀고 있는 새끼돼지 한 마리를 들어올리자 놀란 돼지가 '꽥'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가 이내 얌전해 진다. 김 전 부총리는 "돼지농장은 냄새가 많이 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냄새가 심하지 않은 것같다"며 "돼지들이 청결하고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축산업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격려했다.


이 농장은 돈분을 대형 건조기를 이용해 말린 뒤 비료 등으로 재활용하는 데다 출하 전에 일정 시간 먹이를 주지 않도록 하는 절식(絶食) 규제도 잘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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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왼쪽 세번째)가 지난 7일 서울 내곡동 영동농협 6층에서 양돈 마이스터들과 함께 자장면 간담회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김문조 더불어행복한농장 대표, 엄문일 설봉농장 대표, 김 전 부총리, 송일환 금강축산 대표. [정혁훈 기자] 김 전 부총리는 이어 이틀 뒤엔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하는 양돈 마이스터들을 서울로 초청해 자장면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엔 이틀 전 방문했던 설봉농장 엄 대표 가족들도 함께 했다. 엄 대표 부인과 아들 부부, 손자와 손녀 등 6명이다.

이날의 최대 관심 인물은 엄 대표의 며느리였다. 전직 간호사 출신인 며느리는 30대 초반의 두 아이 엄마이면서도 남편과 함께 농장 일을 직접 하고 있다. 엄 대표는 "시킨 것도 아니고 기대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농장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무척 대견하다"고 추켜세웠다.

이날 간담회에선 와게닝겐 마스터 클래스의 경과를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 리뷰 내용 중 호스테 박사가 지난달 영상회의 때 발표한 한국 돼지산업의 특징 10가지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30년 경력의 양돈학자인 호스테 박사는 2014년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으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국 양돈업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가 밝힌 한국 양돈산업의 대표적 특징은 △전반적으로 낮은 돼지농장 생산성 △전산관리시스템 이용 저조 △정보공유에 대한 낮은 인식 △갈수록 커지는 노동비용 △농업교육의 비효율성 △혁신을 방해하는 정부 보조금 △완전하지 못한 방역 등이다.

현역 시절 혁신을 강조했던 김 전 부총리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김 전 부총리는 "유쾌한반란 활동을시작한 이후 전국의 많은 농어촌에서 농어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상생과 협력, 공감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양돈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혁신의 깃발을 든 것에 대해 칭찬을 하고 싶고 또 다른 분야에도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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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초청해 마련된 자장면 간담회 참석자들이 행사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뒷줄 왼쪽 네번째부터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 김 전 부총리. [정혁훈 기자] 김 전 부총리는 이어 순환농업을 미래의 화두로 제시해 양돈 마이스터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김 전 부총리는 "농어촌 현장을 돌면서 우리 농업의 미래가 뭘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순환농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양돈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순환농업에서 미래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환농업은 농업 부산물을 다시 농업 생산에 투입해 물질이 순환되도록 하는 농업을 말한다. 가장 친환경적인 농업이다.

호스테 박사가 말했던 것처럼 정부 보조금이 허투루 쓰이는 것에 대해서도 한 마이스터가 문제를 제기하자 김 전 부총리는 예산통 출신 답게 본인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다. 김 전 부총리는 "정부가 개별 농민이나 개별 사업장에 지급하는 방식의 보조금 제도는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는 업종의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보조금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순환농업이나 유기농업이 중요한 방향이라고 한다면 그런 농업이 잘 될 수 있도록 순환·유기농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정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총리의 돼지사랑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돼지에게 요구르트를 직접 만들어 먹이는 충남 공주 금강축산 농장과 경남 거창에서 동물복지 인증 1호를 기록한 '더불어 행복한 농장'도 연이어 방문할 예정이다. 김 전 부총리는 "작은 것에서부터의 혁신을 추구하는 유쾌한반란의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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