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스페셜 리포트] 5년만에 누명 벗어던진 '가짜 백수오'…덩달아 韓기능성 작물 산업도 '꿈틀'

입력 2020/12/20 18:08
수정 2020/12/30 09:19
부활하는 백수오 산업
2015년 가짜 백수오 사태로
기업주가 폭락, 재배농가 폭삭
검찰·식약처 조사서 '잘못 없음'
저명학자 연구로도 오해 풀려

내츄럴엔도텍 사업 새 출발
제약사 손잡고 백수오제품 출시

기능성 작물은 韓농업의 미래
약콩·식방풍서 약리성분 추출
건강식품·화장품에 적극 활용

그린바이오 원료 69% 해외의존
약용작물 주권 확보노력 절실
◆ SPECIAL REPORT : 백수오 사태, 그 후 5년 ◆

지금으로부터 5년8개월 전인 2015년 4월 22일.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이른바 '백수오 사태'가 터진 날이다. 당시 언론은 '가짜 백수오 파동…진짜는 10%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기사에는 '대부분이 모양 비슷한 중국산 이엽우피소…신경쇠약 등 부작용'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한국소비자원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작성된 기사였다. 같은 날 백수오 시장을 개척한 내츄럴엔도텍이라는 회사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했고, 다른 제약·바이오 종목 주가도 동반 급락했다.

이후 전개된 상황은 알려진 그대로다. 당시 코스닥에서 시가총액 9위였던 내츄럴엔도텍 주가는 한 달 새 90% 폭락했다. 한창 인기 있던 종목이다 보니 개미투자자 손실도 어마어마했다.


연간 매출이 1200억원을 넘어서며 유망 중소기업으로 통하던 내츄럴엔도텍은 이후 연매출이 수십억원대로 추락하면서 손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소비자 선택권도 날아갔다.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농민 피해도 적지 않았다. 내츄럴엔도텍 성공에 힘입어 백수오 재배농가가 급증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 측과 계약을 맺은 재배농가가 140곳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1곳으로 줄었다. 나머지 농가는 판로가 막히자 수확물을 폐기 처분하고 새 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었다. 고스란히 농가 손실로 이어졌다.


'가짜 백수오' 검증방법 자체가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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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진 서울대 교수가 직접 재배한 백수오 뿌리를 한데 모아놓은 사진. 같은 백수오인데도 제각각의 크기와 모양이 종의 다양성을 입증한다. [사진 제공 = 양태진 교수]

이처럼 기업, 주주, 소비자, 농가 모두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백수오 사태는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 안타깝게도 누구도 잘못이 없고, 시장에만 충격을 준 해프닝으로 끝났다. 수원지검은 2015년 6월 백수오 사건에 대해 "내츄럴엔도텍이 이엽우피소를 고의로 혼입하거나 혼입을 묵인했다고 보기 어려워 '혐의 없음'으로 처분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백수오·이엽우피소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실시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8월 "백수오를 열수추출물 형태로 가공한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식품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검찰이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뿐 이엽우피소가 섞였다는 것은 사실이며, 식약처도 이엽우피소는 식품원료로 계속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양태진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강하게 반박한다. 그는 인삼 유전체를 해독·완성한 식물 육종 분야 세계적 전문가다. 양 교수가 백수오·이엽우피소 연구에 나선 계기가 바로 백수오 사태였다. 전문가 자문을 하러 검찰에 들어갔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아예 자체 연구에 착수한 것이다.

양 교수는 백수오 사태 당시 소비자원이 이엽우피소가 섞였다고 주장한 근거로 활용한 유전자검사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의 조상이 서로 같다보니 엽록체는 달라도 미토콘드리아 내 유전체가 서로 같은 경우가 있어 해당 유전자검사법으로는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이 논문은 네이처 자매지에도 실렸다. 양 교수는 "당시 소비자원은 백수오 유전자 수만 개 중 단 1개를 분석해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그런 검사법으로는 진짜 백수오에서도 이엽우피소와 같은 유전자형이 검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엽우피소 자체에도 문제가 없다는 게 양 교수 설명이다. 이엽우피소는 중국이 고향이고, 백수오는 한국이 고향인 사촌 관계의 식물이라는 것이다. 이엽우피소는 주요 성분과 효능이 우리 백수오와 일치해 중국에서는 약재로 활용하면서 아예 백수오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양 교수는 "소비자원에서 인용한 중국 논문도 이엽우피소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독성이 있다고 한 것이지 정상 복용하면 해가 없다는 내용이었지만 '독성이 있다'는 내용만 부각돼 오해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그린바이오 산업에 찬물 끼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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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츄럴엔도텍 이천공장에서 백수오 뿌리를 활용해 기능성 추출물을 뽑아내는 모습. 추출물은 건강기능식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충우 기자]

백수오 사태는 시장에만 충격을 준 것이 아니라 한창 꽃피워가던 그린바이오 산업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린바이오 산업은 식물 유전자원을 이용한 바이오산업을 말한다. 기능성 작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의약품을 만드는 산업이다.

백수오에서 추출한 물질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게 대표적인 그린바이오산업 사례였다. 내츄럴엔도텍은 백수오, 당귀, 한속단을 활용해 만든 열수추출물 'EstroG-100'을 개발해 국내외에서 갱년기 여성에게 좋은 건강기능식품 개별인정을 받았다. 당시 연구소장을 맡았던 이용욱 내츄럴엔도텍 대표는 "국내 성공을 발판으로 2014년 미국에 진출한 데 이어 유럽 진출을 본격화하던 단계에서 백수오 사태가 터지면서 많은 것이 물거품이 됐다"며 "특히 천연물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악화되면서 그린바이오 산업 싹이 꺾였던 게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린바이오산업은 요즘 농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다. 농업 영역을 생명산업으로 확대해 신성장동력이 되게 하려면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농가소득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비농업소득이 아닌 농업소득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며 "농업소득을 늘리려면 기능성 작물 재배를 통한 그린바이오 쪽으로 농업 영역과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바이오는 시장규모도 엄청나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그린바이오 관련 기능성 소재산업 시장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3500억달러, 국내에서는 2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나고야의정서를 오히려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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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약용작물을 비롯한 기능성 작물 재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고야의정서 때문이기도 하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 유전자원으로 기능성 식품이나 의약품, 화장품 등의 연구개발·상품화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을 유전자원 제공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 협약으로 2018년 8월 발효됐다. 한마디로 해외에서 들여온 작물로 식품이나 의약품을 만들어 돈을 벌면 일정 금액을 해당국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생물 유전자원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활용하고 있는 생물 유전자원 해외 의존도가 식물은 68.9%에 달한다. 나고야의정서 영향으로 다른 나라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가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백수오 사태 와중에 국내에서 재배되던 이엽우피소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협약이 발효된 1993년 말 이전에 해외에서 들여온 유전자원은 그 나라 유전자원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농가들이 이엽우피소를 중국에서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 대략 1990년대 초반부터다. 따라서 이엽우피소를 지금까지 재배하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유전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백수오 사태 이후 이엽우피소에 '가짜'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당시까지 이엽우피소 재배를 독려하던 농촌진흥청이 거꾸로 이엽우피소 소탕에 나서면서 지금은 이엽우피소 자원이 전부 사라졌다. 앞으로 이엽우피소를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한다면 중국에 로열티를 내야 할 수도 있고, 나아가 아예 반출 자체가 차단될 수도 있다. 양 교수는 "다행히 연구실에서는 이엽우피소 유전자원 일부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꿎은 백수오 사태로 귀중한 유전자원을 놓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내 자생 약용작물만 2000여종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기능성 작물을 활용한 소재 개발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약콩(쥐눈이콩)을 활용해 다양한 식품과 의약품, 화장품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기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팀은 약콩에서 다양한 약리성분을 추출해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농진청에서 제공받은 다양한 약콩 종자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품종을 골라낸 뒤 기능성 물질을 추출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근력, 면역력, 피부 등에 좋은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고 아토피에 좋은 기능성 화장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효소기술과 합성기술까지 더해 다양한 의약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식방풍도 한 예다. 양 교수는 제주도, 울릉도, 금오도 등 전국 각지에서 식방풍 자원을 수집해 우량계통 육성에 나서고 있다. 식방풍이 갖고 있는 항산화와 항염 등 기능을 활용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장명초(長命草)라는 이름으로 식방풍이 다양하게 상품화되고 있다. 알약 형태의 건강기능식품도 나온다. 최근 한 대형 제약사에서 내츄럴엔도텍과 손잡고 백수오를 활용한 새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했다는 소식도 반갑게 들린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기능성 식물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속한다. 국내 자생하는 약용자원만 대략 2000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작물로 재배되고 있는 게 120여 종이다. 그중에서도 재배 면적이 일정 규모 이상이어서 공식 통계에 반영되는 작물은 50~60종에 달한다.


고부가 의약품 개발까지는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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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약용작물을 재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안태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은 "약용작물은 재배 역사가 오래된 벼나 밭 작물에 비해 재배기술 자체가 덜 발전해 있다"며 "재배가 어렵긴 하지만 성공하게 되면 소득 측면에서는 일반 작물보다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농가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토로한다. 약용작물은 노지에서 재배되는 특성상 파종, 관리, 수확 등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구인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근로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다. 백수오 등 다양한 약초를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는 유덕종 영동약초영농조합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가 귀해지면서 하루 일당을 기존보다 40~50% 올려 주겠다고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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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의약품 분야에서는 기능성 작물을 소재로 활용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인삼만 하더라도 고유성분을 의약품에 쓰려면 유효물질과 약리 메커니즘을 규명해야 하지만 아직 그 단계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기원 교수는 "유효물질과 약리 메커니즘 규명을 위해서는 한 연구자가 한 작물에 평생을 바쳐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한국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농업 분야 연구 역량을 기능성 소재 개발 쪽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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