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님 수출회복 어느나라 얘기인가요"…제조업 중기의 절규

입력 2021/03/04 17:28
수정 2021/03/04 21:20
반도체 빼면 제조업 위기인데
정부·여당 걸핏하면 낙관론

기계·석유 등 줄줄이 역성장
1월엔 일자리 110만개 증발

"공장 용지 급매물로 내놔
직원 10명중 3명 내보내
작년은 대출로 버텼지만…"
21135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제조업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4일 인천시 남동공단에 위치한 금속부품 가공·제조업체에서 직원이 조업을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 대구 인근 산업단지에서 10년 넘게 플라스틱 금형 제품을 생산해 온 길 모 사장(52)은 기자와 통화에서 "작년에는 공장을 확장하려고 사놓은 용지를 급매물로 내놓고 정부 대출까지 동원해 겨우 공장 문을 닫지 않고 버텼는데, 올해는 뭘로 버틸지 걱정"이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달에는 5년 이상 가족같이 함께 일한 직원 10명 중 3명을 내보냈다. 주문은 끊겼는데 원료값은 급등하고 월급은 또박또박 나가 할 수 없는 '고육책'이었다. 그는 "정부 발표 때마다 '다음달부터 회복된다. 올해는 회복된다'고 하는데, 대체 어느 나라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전후해 정부가 경기 회복 기대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지만 일자리 주축인 제조업·서비스업 현장은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 정부 '낙관론'은 최근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올해 경제성장률이 3%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에 기인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무회의에서 "수출 호조 등 국가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며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진단했다.


이틀 뒤인 18일 임서정 청와대 일자리수석도 "고용 상황이 1월을 저점으로 해서 더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낙관했다.

올 들어 수출은 빠른 회복 수준을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1년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수출은 9.5% 증가한 448억1000만달러였다. 조업일수를 감안한 하루 평균 수출액이 26.4% 증가한 약 22억9000만달러로 역대 2월 실적 중 가장 높았다.

211354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반도체와 연관 산업은 호황세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 하단으로 온기가 전혀 퍼져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해 지난달 26일 발표한 올해 1월 중소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69.6%. 지난해 11월 가동률이 70.2%, 12월 69.9%였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침체 국면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중소기업 취업자는 2308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6%(110만4000명) 줄었다.


종업원 1~4인 업체 취업자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5.1% 감소했다. 5~299인 업체 취업자도 4.2%나 줄었다. 김수현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1월 국내 전체 취업자 수가 100만명 가까이 감소하며 외환위기급 고용 쇼크가 온 것도 중소기업 취업자 감소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윗목' 격인 대기업 중심 반도체·디스플레이 활황으로 인한 '착시효과'는 제조업 안에서도 'K자형 양극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우리 수출은 12%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곤 한 자릿수 증가였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지표는 여전히 침체다. 지난 2월 일반 기계 수출은 코로나19 첫 창궐인 지난해 동기보다도 5.6% 오히려 줄어들었다. 석유제품 수출도 15.2% 감소했고, 섬유는 23.7% 줄어들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내수 서비스 업종은 경기가 잔뜩 가라앉아 실제 체감하는 고용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수출 산업과 무관한 내수 위주인 서비스업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한계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숙박·음식점 사업체 종사자는 104만5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4만명(18.7%) 급감했다. 예술·스포츠업 종사자도 5만4000명(17%) 급감했고, 여행업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업 종사자도 6만9000명(6%) 감소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정부가 부랴부랴 서비스업 일자리를 늘리겠다면서 스마트 시스템 지원이나 5000억원 규모 바우처·쿠폰 대책을 내놨지만, 모두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된 이후에야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현실적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수출 증가에 힘입은 경기 개선 흐름이 '멈칫'하는 신호가 나타나 정부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1월 99.5로 8개월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경기동행지수가 하락한 것은 생산, 투자 등 경제활동이 확장되지 못하고 위축되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지용 기자 / 한우람 기자 / 전경운 기자 / 오찬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