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친 현대인의 '녹색 처방전'…농촌에서 몸과 마음 건강 되찾아요

입력 2021/04/11 17:17
수정 2021/04/12 10:28
10년 공들인 '치유농업법' 시행
◆ SPECIAL REPORT : 막오른 치유농업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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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에 있는 치유농장인 드림뜰 힐링팜에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꽃을 활용한 치매 예방 원예치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드림뜰 힐링팜]

농업계에서 각별한 관심을 받는 법 하나가 지난달 말 새롭게 시행됐다. 바로 치유농업법이다. 정확하게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이 '각별한' 이유 중 하나는 소관 정부가 농촌진흥청이라는 점이다. 농업 관련 법은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인 것이 일반적이다. 이제껏 농진청 소관 법률은 3개뿐이었다. 그나마도 하나는 직제에 관한 법이고, 나머지는 4H 활동 지원법과 지역특화작목 육성법이다.

농진청은 농업 연구개발과 기술 보급, 농촌 지도 등 업무를 맡은 정부기관이다. 그런 농진청이 치유농업법 제정에 10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도대체 치유농업이 뭐길래 농진청이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일까.

치유농업은 농업 활동이나 농촌 자원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도움을 주면서 사회·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정의된다. 쉽게 말해 농업·농촌을 수단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산업을 말한다. 해외에서는 주로 '케어 파밍(care farming)' 혹은 '소셜 파밍(social farming)'이라는 말로 불린다.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에는 각각 1200개가 넘는 케어팜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유럽 농부들은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면서 부가적인 소득을 올린다. 농진청이 향후 '농촌 진흥'을 위한 수단으로 치유농업에 무게를 싣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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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우울감 줄이는 치유농업 효과


농진청이 치유농업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치유농업이라는 말이 없었고 원예치료라는 말이 사용됐다. 사람들이 식물을 기르면서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스트레스 완화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분석이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유럽 선진국의 치유농업 사례와 효과에 대한 분석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 연구가 이뤄지면서 국내에서도 치유농업이라는 용어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4~2016년엔 세계적인 농업대학인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과 국제협력 과제를 수행하며 치유농업 총서를 발간하는 성과도 냈다.

농진청은 동시에 치유농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법 제정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전북 순창의 한 농장에서는 만성 대사성 질환자들을 7주간 프로그램에 참여시켰다. 매주 한 차례 4시간씩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참여자들은 작물을 돌보고, 건강식도 직접 만들어 보고, 산책도 하는 등 가벼운 농장 활동을 이어갔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참가자들의 평균 인슐린 분비가 47% 늘어났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28% 감소했다. 허리둘레도 평균 2㎝ 감소하는 등 비만 지표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서울시 산하 농업기술센터가 노인을 상대로 주말농장을 운영하며 측정한 결과 주 1회 2시간씩 27주간 이어진 텃밭 가꾸기와 공동체 밥상 차리기 등 활동 덕분에 노인들의 우울감이 60% 줄어들고, 총콜레스테롤이 5% 감소했다.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성과가 확인됐다. 강원도 홍천 열목어 마을에서 소방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1박 2일 치유체험에서도 자율신경 활성도와 심장 안정도가 높아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진 것이 측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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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 수요 증가로 농촌 새 소득원 가능성


농업·농촌의 기본적인 기능은 국민에게 먹거리를 공급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국민 치유 기능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게 그 배경이다.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환자가 2017년 8200명에서 2019년 1만500명으로 2년 새 28% 증가했다. 정신·행동장애 환자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바깥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26.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에 해당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다문화가정이나 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19년 기준 79만9000명에 달했다. 2040년에는 치매 환자 수가 200만명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그뿐만 아니라 치유농업은 농업·농촌의 훌륭한 추가 소득원이 될 수 있다. 농진청은 치유농업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3조7000억원(2017년 기준)으로 추산한 바 있다.


장정희 농진청 치유농업추진단장은 "농업·농촌을 통해 심리적, 육체적 위안을 받는 것은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의 귀소본능과도 같은 것"이라며 "치유농업이 우리 농촌의 최대 문제인 인구 감소와 도농 간 소득 격차 등 문제를 해결하면서 농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다양한 형태의 케어팜 운영하는 유럽


국민 치유 수요는 선진국일수록 높다 보니 유럽에서는 어디를 가든 케어팜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각 케어팜 운영 방식은 지원 기관 형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건강보험이나 요양보험 지원을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선단체 지원을 받는 곳, 사회보장제도와 연계된 곳 등 다양하다. 예컨대 6㏊ 면적에서 부부가 운영하는 네덜란드의 드후페 농장은 보험과 연계해 발달장애아나 자폐아, 알코올 중독자, 치매 노인을 치유한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텃밭도 가꾸고 동물도 돌보고 치즈도 만든다.

보험 덕분에 이용자들은 매우 저렴한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영국의 시드넘 가든은 자선단체와 연계해 기부금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곳이다. 이 농장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노인이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원예치료와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일의 바트 뵈리스호펜이라는 치유농장은 사회보장제도와 연계돼 있다. 숲을 비롯한 자연환경 속에서 냉수욕을 통한 자연치료 요법을 활용하는데 하루 3000~4000명이 방문할 정도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초기 단계인 만큼 주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치유농장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우선 자연놀이학교라는 이름으로 치매안심센터나 아동복지센터 등과 연계해 원예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일부 농장은 농진청의 시범 사업 지원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 남양주 안나농원이나 청주 더자람교육농장 등이다. 이들 농장에선 청소년과 성인, 노인을 대상으로 세대별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소득을 늘리고 있다.

◆ 한국형 치유농업 개발 여부가 성공 관건


치유농업법이 시행되기는 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다 보니 치유농장이 어떤 형태로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유럽형 모델을 그대로 수입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농업·농촌 환경이나 수요자들 요구, 정부 입장 등 여건이 유럽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치유농업 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장 단장은 "유럽은 케어팜 탄생 자체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제공 측면이 강했다"며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심신 치유를 통해 온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쪽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국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국민 건강과 복지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나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통일부, 동물 관련 생명산업을 다루는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각자 운영하는 유사 프로그램 안에 치유농업 활동을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는 "유럽에서는 케어팜의 정의 자체가 농업과 헬스케어(보건의료) 영역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치유농업이 성공하려면 농업과 다른 분야의 융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곧이어 치유농업사라는 국가자격증도 생긴다. 치유농업사는 치유농업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실행하고 관련 서비스의 운영 관리 등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농진청은 7월까지는 치유농업사 양성기관을 지정한 뒤 오는 11월 첫 자격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자격은 1급과 2급으로 나뉘는데, 2급을 통과한 뒤 5년간 치유농업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 1급에 응시할 수 있다. 2급 기준으로 치유농업개론 등 8과목에 대해 142시간 수업을 들으면 응시 자격이 부여된다. 농진청은 치유농업사 자격시험의 난이도를 어느 수준으로 맞출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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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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