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美·日·대만 '中 반도체 포위작전'…'좌고우면' 한국은 고립 위기

입력 2021/04/20 17:44
수정 2021/04/21 11:35
美日 정상, 中견제 협력 약속
중국 '테크봉쇄' 염두에 두고
美·유럽·호주·인도 동맹 구축
인텔·애플, 유럽에 新공장
국경 넘은 기업 교류도 활발

"中시장 잃을라" 눈치보는 韓
美주도 기술동맹 참여 소극적
◆ 위기의 K반도체 ⑤ ◆

380931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미국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기술 산업에서 중국을 뿌리부터 고사시키겠다는 의도로 글로벌 합종연횡을 서두르는 가운데 한국에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중국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미국과 일본·대만, 유럽 등 각국 기업은 발 빠르게 협력을 가시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문재인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업계 염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정부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말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 반도체 공급망과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 분야에서 한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공급 대책 회의에 삼성전자를 초청해 미국 공장 증설을 적극 요구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산업 육성과 중국 반도체 굴기 억제라는 '투 트랙' 전략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EU)과 대만, 일본에 협력을 요청했고 한국이 다음 차례"라며 "문재인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할 수 없다. 어느 편에 설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달 미·일정상회담을 거쳐 일본과 반도체 파트너십을 공고히 다졌다. 백악관은 지난 16일 양국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일 간 경쟁력과 회복력(CoRe) 파트너십 팩트 시트'를 공개하고 이 같은 협력 약속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양국은 디지털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5G와 차세대 모바일 네트워크 분야 정보통신기술(ICT) 협력을 위해 미국 25억달러(약 2조7800억원), 일본 20억달러 등 모두 45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한 '반도체 민주주의'를 대의명분으로 삼아 한국에도 동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 공산당이 글로벌 기업의 AI 반도체 기술을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비롯한 중국 내 소수민족 탄압·감시에 악용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에 대한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 통제를 적극 추진 중이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네덜란드 정부를 움직여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첨단 반도체 공정용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 산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AI위원회는 지난달 네덜란드·일본 정부와 협력해 EUV뿐 아니라 액침불화아르곤(ArF) 노광장비도 중국에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연방 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안보 브레인인 리처드 폰테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소장과 재러드 코언 구글 지그소 최고경영자(CEO)는 'T12(테크노 데모크라시12)' 협의체를 제안한 상태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미국·일본·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 선진 7개국(G7)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추가로 인도·호주·이스라엘이 동참할 예정이다. 다만 문재인정부는 아직 T12에 대한 참여 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권과 일본·대만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해 이미 적극적 동맹 행보를 가시화하고 있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앞서 10일 애플은 독일 뮌헨시에 3년간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해 모바일 반도체와 소프트웨어(SW)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인텔은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공장 두 곳을 새로 짓겠다고 밝힌 데 이어 유럽 공장 신설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공조에 따른 결실이다.

파운드리 왕국 대만도 미국의 반(反)중국 반도체 동맹에 동참 의지를 굳혔다. 대만의 반도체 설계기업 알칩 테크놀로지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미국의 제재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슈퍼컴퓨팅 기업 파이티움과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TSMC는 35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최첨단 반도체 공장 6개를 신설한다고 밝힌 상태다. 이미 건설을 시작한 공장도 있다. TSMC는 이 밖에 일본에도 반도체 R&D·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확정하면서 반도체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우물쭈물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제안한 4자(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 참여 역시 꺼리고 있다. 현재 한국은 화웨이와 ZTE 같은 중국 통신 기업을 견제하고 5G 기술 협력을 도모하는 미국 주도 다자협의체 'D10'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정도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약한 고리'로 한국을 점찍고 반도체·5G 기술 협력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현지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에 추가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외교부는 샤먼(廈門) 한중 외교장관회담 이후 내놓은 입장 자료에서 "중국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며, 5G·빅데이터·녹색경제·AI·집적회로·신에너지·보건산업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반도체 최강국이지만 국내 반도체 산업의 높은 중국 의존도 때문에 한국 정부가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발표한 올해 2월 ICT 수출입동향 자료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대(對)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9%로 국가별 기준으로 가장 컸다.

[노현 기자 / 이종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