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깊고 진한 '맛의 DNA'…씨간장을 아시나요

입력 2021/06/10 04:01
단순히 오래됐다고 씨간장 아냐
짠맛·단맛·신맛에 오묘한 감칠맛
시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맛'

햇간장 섞어 특유의 풍미 보존
씨간장 개념 세계 어디에도 없어

선조들, 손님 오면 간장부터 대접
식전 살짝 맛보면 입맛도는 효과
559549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예로부터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을 빼고는 우리 음식의 맛을 논할 수 없다는 의미다. 특히 간장은 한국적인 맛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 마늘, 파, 소금 다음으로 자주 섭취하는 식품이 간장이라고 발표한 국민영양통계 자료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만큼 소금과 함께 한국인의 짠맛을 간장이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소금과 간장의 짠맛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간장은 단순히 짠맛만 내지 않기 때문이다. 특유의 감칠맛을 비롯해 단맛, 신맛 등 복합적인 맛으로 음식에 풍미를 더한다. 콩과 우수한 발효에서 나오는 천연의 복합적인 맛들이 단순한 짠맛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간장이 식재료 맛을 살리고 식재료가 간장 맛을 살리는 상호보완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간장의 이러한 점에 주목해 별다른 조미료 없이 간장 하나만으로 많은 요리에 간을 담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비롯된 오묘한 검은 빛깔도 시각과 입맛을 동시에 자극한다.

◆ 간장 맛의 씨앗, 씨간장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간장을 만들어 먹었다. 간장은 폐백 물품에 반드시 들어갔고, 전쟁과 기근으로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류와 함께 중요한 구호 물품 중 하나로 꼽혔다. 그만큼 간장은 우리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하지만 간장이라고 다 같은 간장이 아니다. 실제로 간장은 발효 기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용도 또한 달라진다. 이는 발효 기간에 따라 생기는 맛과 색의 차이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간 숙성한 간장은 청간장, 3~4년 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묵힌 간장은 진간장이라고 칭한다. 간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짙어지고 풍미가 깊어지기 때문에 미역국 등 맑은 국물 요리에는 햇간장을 쓴다. 중간장은 잘 다려서 맑게 거른 다음 나물이나 찌개 같은 일상 반찬을 만드는 데 쓰인다. 5년 이상 숙성시켜 진득해진 진간장은 거무스름한 색이 잘 살아 입맛을 돋우는 갈비찜이나 불고기, 각종 조림 등에 활용된다.

559549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같은 간장 외에 또 하나의 간장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오래 묵힌 진간장 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간장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온 간장을 말한다. 씨간장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맛의 씨'가 되는 역할을 한다. 색은 진한 흑색을 띠며, 부드럽고 강한 풍미와 단맛, 감칠맛을 낸다. 맛이 뛰어난 씨간장을 잘 보관해 뒀다가 새로 담근 햇간장을 섞는 '겹장'의 형식을 거쳐, 씨간장에서 느꼈던 맛과 가장 가까운 풍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와인이나 위스키 등의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블렌딩하는 것처럼, 씨간장을 통해 햇간장의 맛을 한층 더 깊어지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분이 날아가 양이 줄어든 만큼 햇간장을 부어 늘 같은 양을 유지하는 조상들의 지혜까지 엿볼 수 있다. 맛의 씨가 되는 중요한 원료인 만큼, 그 가치가 옛날부터도 높게 평가됐다. 오죽하면 좋은 씨간장은 옹기째 훔쳐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씨간장의 개념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

우리 선조들은 집에 손님이 오면 간장을 가장 먼저 대접했다고 한다. 상 위에 올라온 간장을 찍어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간장이 오늘날의 애피타이저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집의 역사가 담긴 장을 손님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그만큼 손님에게 특별한 애정과 정성을 표현한다는 의미였다. 영양학적으로도 간장에 담긴 효소와 유익균을 나눈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미슐랭 가이드에 수차례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한 한식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에게 7년 된 씨간장을 제일 처음 내놓는다고 한다.


달콤 짭짤한 간장의 풍미로 오감을 자극해, 이후의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깨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간장게장 전문점 '큰기와집'도 이러한 씨간장으로 맛을 낸 간장게장으로 미슐랭 원스타 선정의 영예를 얻었다. 청주 한씨 집안에서 전해진 씨간장이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간장게장 맛의 중요한 비법인 것이다.

한영용 큰기와집 대표는 "봄이 되면 햇간장에 씨간장을 더하는 겹장 방식으로 간장을 담그고, 씨간장에도 진간장을 조금씩 더해 보관하면서, 발효가 지속되고 맛이 깊어지도록 하고 있다"며 "이런 간장들을 조금씩 활용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맛뿐 아니라 씨간장은 버릴 것이 없는 효자 식품이기도 하다. 씨간장독 아래 가라앉은 소금 결정체를 건져내 여러 번 씻고 말려 사용하면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은 적고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조화로운 천연 조미료가 된다. 또 씨간장은 맛뿐 아니라 건강에도 유익하다. 양질의 단백질과 풍부한 지방을 함유하고 있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에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스님들은 소화가 잘 안되거나 속이 안 좋을 때 속을 다스리기 위해 천연 소화제 용도로 간장차를 마신다고 한다.

◆ 씨간장의 조건, '시간'보다 '맛'

씨간장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다. 단순히 오래된 간장이 씨간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몇 대째 이어온 100년 된 씨간장, 200년 된 씨간장 등을 우리는 대중매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씨간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간장의 종자가 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간장의 씨앗이 되는 풍미가 좋은 간장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오래된 간장인데 풍미가 떨어진다면 그것은 씨간장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씨간장의 정의는 '오래된'이 아닌 '맛있는'이 돼야 한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맛에 진정한 씨간장의 가치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표도 "김치 맛이 집집마다 다르듯, 씨간장 역시 그렇다"며 "이는 지역의 풍수, 강우량 같은 환경적 요소와 소금, 물, 항아리 등의 재료, 각 집안의 담금 비법 등이 합쳐져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맛의 씨간장으로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승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