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친환경의 역설?...골드만 "정유주 사라" 외친 까닭 [글로벌 머니백]

입력 2021/06/16 21:01
수정 2021/06/17 07:14
[글로벌 머니백-4] 지난 2월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이 보유한 주식 내역이 공개됐을 때 미국 2위 정유사 셰브론이 새로 포함돼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주요국이 앞다퉈 '탈(脫)석유' 드라이브를 걸며 탄소 감축을 본격화하고 기업은 이런 흐름에 맞춰 사업을 재편하는 시기였죠. 모두가 석유 시대의 종말을 얘기할 때 정유사에 거액의 투자를 단행한 겁니다.

그의 '역발상 투자'가 적중한 걸까요. 시장 전문가가 유망한 투자 종목으로 정유주를 꼽으며 버핏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번 화 머니백에선 석유의 100년 권좌가 흔들리고 청정 에너지가 각광받는 시기에 왜 정유주가 시장의 주목을 받는지, 그 배경을 다룹니다.


◇골드만 "브렌트유 80弗 간다…정유업체 사라"

골드만삭스는 최근 미국 최대 정유기업 엑손모빌과 미국 최대 독립 정유사인 마라톤페트롤리엄을 포함해 코노코필립스, 필립스66 등 정유업체에 대해 투자 '매수' 의견을 내놨습니다. "백신 접종에 힘입어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공급이 비탄력적인 상황"이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올여름 8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네요. 올 초만 해도 배럴당 50달러 선이던 브렌트유 가격은 현재 70달러 초반에 형성돼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최한 원자재 글로벌 서밋에서 석유시장 플레이어인 비톨·글렌코어·트라피구라는 브렌트유값이 1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수요와 공급의 법칙입니다. 하나씩 뜯어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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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의 모습 [블룸버그]



◇원유 수요 정점 멀었다…올여름 이동 수요 폭발

원유 수요 증가는 세계경제가 코로나 여파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올 6~8월 여름 휴가철 이동 수요가 변곡점이 될 전망입니다. 여전히 주류인 내연기관차의 휘발유·경유와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항공유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이른바 '보복 소비'도 원유 수요 증가의 원인입니다.


'우리 몸의 70%는 물이고 우리 소지품의 70%는 석유화학제품'이란 말이 있죠. 원료로 쓰이는 중간 제품이라 드러나지 않지만 휴대폰, 옷과 양말, 안경, 가방 등 일상생활 용품 대부분이 석유화학제품입니다. 소비재 판매 증가는 곧 원유 수요 증가입니다.

이런 추세는 이어질 전망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소 2026년까지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월간 보고서에선 "강력한 수요 회복으로 인해 하반기 원유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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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페르미안 분지에 있는 유전에서 석유를 시추하고 있는 오일 펌프 잭 [블룸버그]



◇친환경의 역설…공급 축소로 유가 자극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에너지 전략이 공급을 억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달 초에는 알래스카주 북극 보호구역 내 석유·가스 시추 계획을 중단을 중단했죠. 정부에서 압박하니 기업들도 공급을 꺼리는 분위기 입니다. 로열더치셸이 미국에서 가장 큰 유전인 텍사스주 페르미안 분지 26만에이커를 전부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이 있었죠. 그에 앞서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토탈에너지도 석유와 관련한 자산 규모 감축 계획을 밝혔습니다. 친환경 기업 투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이런 흐름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투자를 꺼리다 보니 수요 충당이 어려워집니다. 실제 영국 에너지분석회사 우드맥킨지는 세계 원유 시추 등에 대한 투자액이 올해 348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2014년 8070억달러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크리스티안 말렉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원유 생산 확대를 위해 예정된 투자액은 2030년까지의 수요 충족을 위해선 6000억달러 부족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유전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하는 드릴 리그(Drilling Rig) 수도 6월 둘째주 기준 365개로, 코로나 이전인 작년 1월 첫째주(670개)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란산 석유가 시장에 풀리며 국제유가를 떨어뜨릴 위험도 당분간 없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9일 이란 핵합의와 관련해 "이란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 한 제재는 유지될 것"이라며 합의 준수를 지켜보겠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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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트유 배럴당 달러 가격 추이 [그래프=FT]



◇유가 상승…정유사 돈 벌 시간 온다

유가 상승은 정유사에 호재입니다. 유가가 오르면 저유가 때 사들였던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상승해 구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의 유가 차이만큼 회계상 이익(재고평가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미리 재고 물량을 확보하기 때문에 완성된 제품은 유가가 오른 만큼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통상 유가와 정제마진은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인 점도 정유주에 대한 기대를 높입니다.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수송비 등을 뺀 값을 뜻하는 정제마진은 정유사의 핵심 수익성 지표입니다. 올해 글로벌 정제마진은 가파르게 오른 국제 원유값과 달리 부진했습니다. 수요 부진 탓이었죠. 하지만 원유 수요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글로벌 정제마진이 4월부터 상승 추세로 접어들었습니다. 청정 에너지 육성 경쟁이 역설적으로 유가를 자극하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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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빅토리아주 알토나노스에 있는 엑슨 모빌 정유소의 모습 [블룸버그]



◇"석유, 주요 원자재 지위 유지할 것"

석유 시대가 황혼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데 이견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년 넘게 에너지 시장의 주연이던 석유의 위상이 쉽사리 저물 것 같지도 않습니다. 버핏처럼 '저가'에 매수할 수 있다면 좋은 투자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 대니얼 예긴도 저서 '뉴 맵'에서 "전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적 연료로서 석유는 천연가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원자재 위치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네요.

[진영화 기자]

※'글로벌 머니백'은 이번주 글로벌 증시는 왜 요동치는지, 특정 산업군은 어떤 지형을 이루고 있는지, 가상화폐의 트렌드는 무엇인지 등 글로벌 자산시장을 심층 분석하는 연재물입니다. 매주 수요일 풍부한 정보 보따리를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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