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적폐 될라, 일단 팔고보자"…자원개발 거꾸로 가는 한국

입력 2021/07/18 18:12
수정 2021/07/18 20:46
한국광물자원공사가 2011년부터 보유해온 캐나다 구리탐사 기업 '캡스톤 마이닝' 지분 1971억원어치를 지난 5월 말 전량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작개발을 추진했던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광산 지분 30%(약 1320억원)를 캡스톤 측에 넘긴 지 2개월여 만이다.

18일 광물공사는 5월 28일 캡스톤 지분 11%(4019만8632주)를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다.

지분은 캐나다 스코샤은행에 보트딜(bought deal) 방식으로 총 2억1345만4735.92캐나다달러(당시 환율로 약 1971억원)에 넘어갔다. 보트딜은 매각 주관사가 주식을 우선 매입한 뒤 제3자에게 재판매하는 방식이다.

현 정부는 MB정부 당시 추진했던 해외 자원사업을 전부 '적폐'로 낙인찍고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리, 니켈 등 유망 전략광물 자산이 무분별하게 처분될 우려가 크다.

K배터리 키운다면서…핵심소재 구리·니켈광산 헐값에 파는 정부

세계각국 자원 확보전 뜨거운데 한국만 거꾸로

광물公 "빚더미에 매각 불가피"
칠레광산 1천억 손해보고 팔아
세계 10위권 파나마 구리광산
아프리카 니켈광산도 매각 추진

4차산업혁명 이끌 핵심광물
구리·니켈 1년새 40%넘게 급등
세계 자원전쟁 뒤처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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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물자원공사가 문재인정부에서 '적폐'로 찍힌 해외자원 개발 사업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문제는 광물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광물자원은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각국이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지난 8일 본격적으로 힘을 싣겠다고 천명한 'K배터리' 산업만 해도 원활한 자원의 확보 없이는 어려운 분야다. 구리·니켈 등 현재 매각됐거나 매각이 추진되고 있는 사업 관련 광물들은 전기·수소차, 차세대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특히 구리·니켈은 각각 1년 전 대비 40% 이상 가격이 뛸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매장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선 해외자원 사업을 무조건 팔아치우면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신산업 부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광물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등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부채가 6조6500억원에 달하는 광물공사는 오는 9월 한국광해관리공단과의 통합을 앞두고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캐나다 구리탐사 기업 캡스톤 마이닝 지분 11%(4019만8632주)를 전량 매각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장기적 실익을 따지기에 앞서, 당장 주가가 회복된 만큼 명목상 손실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매각한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광산 지분 30%는 매각가 1억5000만달러로 총 투자액의 60% 수준이다. 급하게 매각하다 보니 투자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광물공사는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코브레파나마 광산도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파나마 콜론주 도노소시에 있는 코브레파나마는 추정 매장량이 31억8300만t에 달하는 세계 10위권 규모의 대형 구리광산이다. 연간 30만t의 구리를 40년간 채굴할 수 있으며, 2023년에는 연간 40만t 이상의 구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물공사는 이 사업 지분 10%(약 7500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리는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뛴 광물이며, 코브레파나마는 세계적으로 미래 경쟁력이 높은 알짜 광산으로 꼽힌다"면서 "지금 급하다고 팔았다가 나중에 양질의 구리 확보가 어려워지면 그때 가서는 더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지분 매각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암바토비 광산은 국내에서 4조6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최대 해외자원 개발 사업이다. 매장량은 니켈 원광 1억4620만t으로 세계 3대 니켈 광산으로 꼽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광산 조업이 중단되면서 지난해 상반기에만 1조6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현재 광물공사 22.5%, 포스코인터내셔널 4%, STX 1% 등 한국 컨소시엄이 27.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광물공사는 보유 지분 전량을 팔겠다는 방침이다.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추진 계획이 속도를 내면서 전기·수소차 관련 원자재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1t당 구리 가격은 9396.5달러로 2020년 7월 16일 6385달러에 비해 3011.5달러 상승했다. 니켈 가격은 1만8895달러로 같은 기간 5642달러 올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10년 새 최고 수준으로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는 상황"이라며 "원자재 가격 상승이 장기간 이어지는 '원자재 슈퍼사이클' 진입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물공사는 지난달 15일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재입찰 공고를 냈다. 호주 시드니 북쪽 약 80㎞ 지점에 위치한 와이옹 광산은 광물공사가 지분 82.25%를 보유하고 있다. 전략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해외자원 사업에 전 정권 '적폐'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 정치적으로 철퇴를 가하면서 '옥석 구분'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워졌다"며 "기업들도 위험 회피에만 급급하고, 자원 개발 사업 분야가 얼어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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