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깻잎 재배도 AI로…병충해는 카메라가 감지[Special Report]

정혁훈 기자
입력 2021/10/10 18:17
수정 2021/10/10 19:51
김영상 멀티캠퍼스 상무
시스템통합(SI) 업체에서 20년간 컨설팅과 솔루션 개발을 맡았다. 기업 인재 교육기관인 멀티캠퍼스에서 IT 교육사업을 총괄한다.

최재빈 넥스트온 대표
SW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서울반도체 사장을 지낸 LED 전문가다. 폐터널 수직농장에서 엽채류와 딸기, 바이오 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최대근 디지로그 부사장
바헤닝언대학에서 시설원예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로 들어와 온라인 농식품 판매 플랫폼인 파미너스를 창업한 경험이 있다.

서현권 동아대 교수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에서 농업용 로봇과 AI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업AI경진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디지로그 팀장이었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도쿄대 농업경제학 박사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농업 분야 연구 컨설팅을 담당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농촌진흥청장을 지냈다.
◆ SPECIAL REPORT : AI농업 전문가들 미래 농업을 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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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영상 멀티캠퍼스 상무, 최재빈 넥스트온 대표, 최대근 디지로그 부사장, 서현권 동아대 교수,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김호영 기자]

연간 농식품 수출액이 1100억달러(약 131조원)에 달하는 네덜란드. 농지 면적이 우리나라와 엇비슷하지만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농식품 수출국이다. 수출 규모가 우리나라의 10배를 넘는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네덜란드 농업에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정보통신기술(ICT)이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네덜란드가 2018년부터 세계에서 유일하게 매년 '농업AI경진대회'를 개최하는 배경이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선전을 펼치고 있다. 1회 대회 때는 예선 탈락했지만 2019~2020년 열린 2회 대회에서는 우리나라 디지로그팀이 본선 3위를 차지했다.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참여자가 팀을 구성해 정해진 기간 내에 모델을 만들어내는 경쟁) 방식의 예선을 거쳐 6개월간 원격으로 유리온실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대결이었다.

지금은 제3회 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7월 1차 예선에는 24개 국가에서 46개 팀이 참가했다. 대회는 다음달 2차 예선을 거쳐 내년 3~6월 본선으로 이어진다. 본선에서는 4개월간 AI만을 이용해 상추를 재배하게 된다. 여러 한국 팀이 현재 2차 예선을 준비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 농업의 AI 경쟁력에 기대가 모아진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농업AI경진대회에서 거둔 성과는 사실 ICT 학계와 업계의 성과일 뿐 농업계 성과는 아니다. 한국 디지로그팀 단장이었던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의 경험담이다.

"농업AI경진대회에 참가하기로 하고 팀 구성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농협이나 농촌진흥청, 식품기업 등에서 어렵지 않게 농업AI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그렇게 큰 규모의 조직에서도 농업AI 전문가를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거 큰일 났다 싶어 방향을 바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젊은 AI 전문가를 물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여 명이 힘을 모았고,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AI 활용 못하면 농업 후진국 전락


상황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농업계는 물론이고 식품업계에서도 AI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농산물·식품 생산과 가공에 AI를 활발하게 적용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AI가 농식품 분야 현장에 거의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 AI 적용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문인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점검해 보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농업 분야 AI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디지털 강소농(强小農)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지만, 이들의 관심은 우리나라 농식품업계 전반으로 향해 있었다. 참석자들은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최재빈 넥스트온 대표, 김영상 멀티캠퍼스 IT교육사업 팀장(상무), 서현권 동아대 교수, 최대근 디지로그 부사장이다. AI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이들의 발언을 정리했다.

―농업에서 AI가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는.

▷민승규 교수=농업의 역사를 보면 18세기와 20세기 중반 두 차례의 혁명이 있었다. 18세기 중반의 혁명은 영국에서 이뤄진 윤작법의 발명이다.


농지 3분의 1을 놀리는 삼포식 농경을 하다가 돌려짓기 방식으로 전체 농지를 활용하는 윤작법이 도입되면서 생산량 증대가 있었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이 주도한 화학비료와 다수확 품종 개발이 있었다. 농업 생산성이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농업시장 개방을 요구한 우루과이라운드(UR)가 1980년대 시작된 것도 미국 주도 농업혁명의 성과로 선진국에서 농산물이 과잉 생산된 영향이 컸다. 그리고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AI를 비롯한 각종 ICT가 농업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농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면 순식간에 농업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

농업 전후방 산업 '환골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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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워리파밍이 운영하는 실내 수직농장 모습. 이 회사에서는 각종 엽채류 재배에 AI를 활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 [사진 제공 = 보워리파밍]

―농업에 AI가 접목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서현권 교수=과거 두 차례의 농업혁명은 농산물의 생산량 증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현재 AI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신(新)농업혁명은 단순히 생산량의 증대만이 아니라 농업 전후방 산업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종자 개발부터 농산물 재배, 가공, 유통, 소비로 이어지는 전체 밸류체인(생태계)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전후방 산업 전체가 환골탈태하면서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소니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듯이 이제 AI에 적응하지 못하는 농업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농업 경쟁력은 시설과 장비, 기술에 달려 있었다면, 앞으로는 빅데이터와 AI를 누가 더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최재빈 대표=지금까지와는 다른 농업이 펼쳐지게 된다. 우선 생산성이 상향 평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략의 자동화를 통해 농부의 의사결정이 보다 정교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실 농촌 현장에 가보면 고령화로 인해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 농민이 많다. 날씨나 병충해 등 돌발 변수가 발생했을 때 농부의 대처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작물 상태에 대한 인지 능력 면에서 이미 AI가 농부를 추월한 사례가 많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늘어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AI는 필수다. 급변하는 대외 변수에 즉각 대응하려면 AI 지원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농업에 AI를 적용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민 교수=지금 전 세계를 보면 혁신적인 농업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농업기술 수준이 선진국 수준 대비 75%에 불과하다. AI 수준도 미국을 100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81.6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다. 우리가 신농업혁명의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농업에 ICT를 접목할 수 있는 융복합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농업도 알면서 ICT에도 능한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정부는 농업에 대한 지원에는 예산을 많이 투입하지만, 융복합 농업 인재를 키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AI와 같은 ICT를 적용해 생산과 가공, 유통 등 농업 밸류체인 전체를 혁신할 수 있는 인재가 절실한 실정이다.

ICT 다룰 농업인재 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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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도 농업 IT 인재를 육성하지 않나.

▷서 교수=농업에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보니 정부에서도 스마트팜 기술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마트팜 기술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진 대부분이 기존 농업계 출신이라는 점이 한계다. 이들은 IT 분야 전문가들과 달리 ICT의 최신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팜 교육 커리큘럼이 과거 IT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민승규 교수=농업의 ICT 기반이 외딴섬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신농업혁명은 농업계 인사들만 갖고는 어렵다. 융복합 인재 육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해외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최대근 부사장=유럽에서는 농업과 ICT를 융합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농업대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의 MIT라고 하는 델프트공대에 애그테크 인스티튜트(Agtech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접목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세계 최고 농업대학인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 출신들이 AI 기술을 추가로 배우기 위해 애그테크 인스티튜트를 찾는다. 한국으로 치면 KAIST에 농업대학원을 설치해 각 대학 농대 출신 인재들에게 ICT를 교육하는 식이다.

―스마트팜 기업에서 보는 상황은.

▷최 대표=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농업 스타트업을 창업해 IT를 적용해 보면서 느끼는 것은 다른 산업에 비해 농업에 ICT를 접목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농업에서 생산하는 작물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보니 품질을 컨트롤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일분일초의 시간에도 세포분열을 하는 것이 작물이다. IT산업보다 더 수준 높은 지식 관리가 필요한 분야가 바로 농업이다. 따라서 농업에서는 다른 산업에 비해 더 수준 높은 ICT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업 분야 인력이 ICT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관이 거의 없다. 이를 늘려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농업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 인재들이 농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바이오 소재용 작물 재배를 위해 약학박사를 구하는 데 3년이 걸렸을 정도다.

―멀티캠퍼스에서 IT 인재를 키워보니 어떤가.

▷김영상 상무=K―디지털 트레이닝과 같이 멀티캠퍼스가 진행하는 청년 IT 인재 양성 과정들을 보면 IT 비전공자 수강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비전공자 비중은 거의 50%에 가깝다. 기존에 소프트웨어를 전혀 배우지 않았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추가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영을 전공한 학생이 IT 인재 양성 교육을 통해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 뒤 기업이나 금융사로 취직해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소프트웨어 기술을 익힌 은행 창구 직원이나 보험사 영업 직원이 ICT를 활용해 현장 업무를 혁신시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농업 분야 전공자가 추가로 소프트웨어 기술을 익히면 농업계를 혁신시킬 수 있는 융복합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

―교육 전문가로서 복안이 있다면.

▷김 상무=농업 분야에서는 문제기반학습(Question based Learning·QBL) 방식의 교육이 적절할 것 같다. 교육생을 모아놓고 단순히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의 질문에 전문가들이 답을 찾아주는 과정을 통해 교육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과일을 수확한 뒤 크기나 무게, 품질에 따라 선별하는 작업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AI와 같은 ICT로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AI 전문가가 나서 카메라와 이미지,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과일을 자동으로 선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보는 것이다.

깻잎 농가들의 '디지털 소농' 전략


―금산 깻잎 농가들의 AI 도입 상황은.

▷서 교수=디지로그, 아마존웹서비스(AWS) 등과 함께 지난 3월부터 충남 금산군 소재 5개 깻잎 농가를 상대로 AI 기술을 접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말로만 강소농을 외치는 게 아니라 ICT로 무장한 소농을 직접 키우고 싶은 생각에서 출발한 일이다. 우선 농가와 아마존, 금산군과 함께 수차례 모임을 갖고 농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AI 기술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을 했다. 그 결과 깻잎 재배에 가장 중요한 비닐하우스의 환기시스템, 그리고 카메라를 이용한 병충해 자동탐지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올해 말이면 날씨 변화에 따라 어떻게 환기를 할 것인지를 자동으로 결정하는 기능이 개발될 예정이다. 또한 카메라가 깻잎의 재배 상태를 24시간 모니터링하면서 병충해 등이 감지되면 농민에게 자동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깻잎 농가의 이런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민 교수=혹자는 소농(小農)의 비중이 높은 것이 한국 농업의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소농들이 경쟁력 제고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선 소농들이 AI와 같은 ICT를 농업에 잘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깻잎 농가들의 AI농업 전략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뒤차가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코너에서 속도를 높이면서 차로를 바꿔야 한다. 한국 농업이 선진 농업을 따라잡으려면 디지털을 활용해 차로를 바꾸고 속도를 높이는 신농업혁명에 나서야 한다.

―식품업계에서도 AI 도입에 어려움이 많은데.

▷김 상무=농업과 마찬가지로 식품업계에서도 QBL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 얼마 전 농산물 가공식품 공장에서 AI를 활용한 불순물 제거 공정에 관심을 표명한 적이 있다. 다른 불순물은 여러 가지 장비를 이용해 다 걸러낼 수 있는데, 유독 사람의 머리카락은 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식품 분야 전문가에게 카메라를 활용해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가르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에게 포토샵을 아무리 가르쳐봐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 포토샵을 가르치면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농식품 분야 종사자들이 ICT를 익힐 경우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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