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정이 정치 볼모된 한국…정작 계층사다리 논의는 실종"

입력 2021/10/17 17:00
수정 2021/10/18 09:18
교육이 기득권 유지수단 전락
저소득층 성공 못할 확률 70%

불평등 해결해야 효율성 향상
분배·안전망 구축 정부역할 커

능력주의는 공정 대안 아냐
계층·지역 강제할당 확대를
◆ 매경·서울대 경제학부 공동기획 Rebuild Korea ⑥ / 주병기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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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기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 교정에서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 극복이 혁신 경제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본인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통용돼 왔다. 실제로 한국 경제가 성장해오면서 이 같은 '성공신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갖게 하고, 한국 경제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고스란히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이 확산되면서 개천 용이 말 그대로 신화 속 얘기로 바뀌어버렸다. 계층 간 이동이 막혀버린 현실은 경제의 역동성마저 갉아먹는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의 기회 불평등 수준을 수치화한 '개천용지수'를 고안해 발표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계층의 이동 통로로 가장 크게 활용되는 교육 측면에서 보면 청년들의 교육 불평등도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교수는 "소득 최하위 계층 가정의 자녀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해도 성공할 수 없는 확률이 70% 수준"이라며 "현재의 교육은 계층사다리가 아닌 계층 유지의 수단이 되고 있는데, 교육의 계층사다리 기능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이라고 말했다. 계층 이동이 활발해야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성이 회복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교육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공정과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는 게 중요하다고 주 교수는 강조했다.

―우리 사회와 경제는 공정한가를 먼저 묻고 싶다.

▷불공정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득 분배도 불공정하고, 일하는 사람이 일한 만큼 돌려받는 것도 아니다. 투기로 앉아서 돈 버는 불로소득이 만연하다. 자신이 형성한 부는 안정적인 사회를 통해 창출된 측면이 있으니 환원을 해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강제성도 약하고 자발적 기부도 크게 이뤄지지 않는다. 공정에 대한 수준이나 빈부에 대한 인식이나 여전히 천민자본주의 단계에 있다고 본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이슈 등 이번 정부 들어 '공정'이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됐는데.

▷기본적으로 인천국제공항의 고용 이슈로 사회가 상당히 분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사회가 갈등을 겪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나눌 수 있는 기회, 즉 파이가 너무 작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파이가 작다 보니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초래되는 것이다. 그 갈등을 잘 해소하면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정치 이슈로 비화되면서 객관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공정하게 성찰하고 무엇이 우리 사회의 문제인지 제대로 제시하는 주체가 부족한 것 같다.


―능력대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는 게 공정하지 않나.

▷능력주의를 공정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능력이라는 것을 1차원적으로 줄 세워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만큼 능력주의적인 제도도 없다. 시장에선 가격으로 능력이 측정된다. 그 사람이 얼마나 벌어들이느냐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공정하다고 하진 않는다. 능력주의가 해결하지 못하는 불공정 문제가 상당히 많다는 뜻이다.

―불공정의 경제성장 영향은.

▷공정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공정은 크게 시장질서의 공정과 분배의 공정 두 가지다. 시장질서 측면에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업이 거래 상대방이나 소비자에게 불공정한 압력을 행사할 때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또한 분배 측면에서는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이 심해지면 계층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개개인의 노력 자체가 없어지는 사회가 될 수 있다. 혁신이라는 것은 개인의 희망과 노력, 교육이나 인적 역량에 대한 투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불공정,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혁신이 지체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경제성장을 해야 하고, 기술선도국으로 도약하려면 필요한 것이 공정한 사회다.

―한국은 어떻게 진단하나.

▷과거 고도성장의 비결은 교육열이 높아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을 하거나 성공하려는 열망이 많았던 덕분이다. 이 같은 인적자본이 장기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도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에 교육이 평등한 기회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과거의 교육과 인적자본 축적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는 성장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게 심각한 문제다. 어느 정도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서 과거처럼 빨리 성장을 못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질서 자체가 불공정해도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빠른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부 질서를 공정하게 하지 않으면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극히 미미해진다. 내부 질서와 분배를 공정하게 만들고 정부가 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됐다.

―개천용지수를 고안해 발표했다.




▷말 그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지표로 나타내보고자 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기회 불평등한지 측정하는 지표다. 교육 측면에서 서울대 등 5개 대학과 의약학계열 등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본다면 자신이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좋아도 부모 소득이 하위 20%에 속한다면 성공(명문대 진학)하지 못할 확률이 70% 정도 된다. 학생들의 잠재력에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실제 차이는 별로 없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도 충분히 잠재력이 있고 타고난 능력이 있다. 그러면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심각한 기회 불평등이다.

―교육의 계층사다리 기능을 강조하는데.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 상승의 주요 사다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이 계층 상승 사다리라기보다 계층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교육이 계층사다리 기능을 하도록 하는 건 장기적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경제정책이다. 교육을 통해 취업, 창업 등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아야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대학에서 다양한 사회계층과 다양한 지역에서 인재를 선발하는 게 중요하고 할당제 등 제도를 강제해야 한다고 본다.

―공정한 채용 수단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다. 채용은 여러 방식을 시도하고 가장 좋은 것을 찾아야 하는 사회적 실험의 광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주로 공공부문에서 도입하는 블라인드 채용은 채용의 예측 가능성을 많이 떨어뜨렸다. 예를 들어 자격증이나 경력 등은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인데, 학력은 빼더라도 채용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보완하면서 시행하면 될 것 같다.

韓 불공정 갈등 해소하려면 '성장 파이' 키워야


―우리 경제의 긍정적인 부분은 없나.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 고급 엔지니어들의 혁신 역량이 상당히 높은 사회다. 전체적인 학력 수준이 높고, 개개인의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 최고라 생각한다. 그 역량이 잘 활용만 되면 충분히 우리나라가 기술선도국으로 도약하고 세계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배터리나 전기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고, 태양광이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기술도 단기간에 빠르게 발전했다. 생명과학 등 의료 사업도 10년 안에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분야라고 본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 폭발하려면 인재를 잘 발굴·양성해야 한다.

―혁신 분야 인재가 부족하다.

▷혁신 분야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있는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혁신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반도체, 배터리 등 잘나가는 분야 주력들이 1980~1990년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보면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40·50대 엔지니어들이 빠져나갔을 때 인력 부족 현상이 심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진로를 희망하는지 보면 부정적인 면들이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고급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의사나 변호사를 선호하고 공무원·공기업을 가고 싶어한다. 우리 사회가 반대로 향하고 있다.

―혁신 경제를 위해 필요한 전략은.

▷우리 경제가 목표로 하는 분야에 필요한 혁신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투자를 해야 한다. 대학에서도 반도체 소재·장비, 배터리, 수소, 의과학 등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분야의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한다. 장학금 등 재정적 유인책을 비롯해 필요하다면 병역특례까지 광범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대학 정원만 확보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충분한 기회와 일자리가 공급될 수 있도록 대학 교육과 노동시장이 연계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 측면에서는 젊은 인재들이 창업을 통해 성장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강자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수 없도록 정부가 공정경제를 확실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 주 교수는…

△1993년 서울대 경제학과 △2001년 로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2001년 캔자스대 경제학과 교수 △2006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10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8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응용경제학회장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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