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첨단기술 투자? 稅부담에 엄두 못내"

김정환 기자, 전경운 기자
입력 2021/11/24 17:55
수정 2021/11/24 20:55
매경·한경연 100대 기업 설문

대기업 10곳중 6곳
"조세환경 열악해 경영활동 지장 초래"

법인세율 높고 공제 축소…
美선 감세로 투자유치 '대조적'
◆ 稅부담에 억눌린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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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기술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첨단 기술에 투자해도 세금 혜택을 못 받아요. 정부가 규정한 기술에 포함돼야 신성장 분야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요.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도 세 부담이 크니 투자 여력이 줄고 있어요."(대형 기술기업 A사 재무 임원)

높은 법인세와 투자 세제 혜택 축소로 기업들의 세 부담이 가중되면서 국내 투자가 한파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기업 10곳 중 6곳은 국내 조세 환경이 해외에 비해 열악하다고 답했고, 각종 세 부담으로 경영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 등 경쟁국이 자국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반도체 공장에 보조금을 주는 법까지 만들어 해외 기업을 공격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24일 매일경제 의뢰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회계·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기업의 64.5%는 "한국의 기업 조세 환경이 해외에 비해 열악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 62%는 '최근 5년간 잦은 세법 변경 등 조세 변화로 경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세 부담을 토로한 기업 중 가장 많은 38.7%는 법인세율 인상과 결손금 이월공제한도 축소로 부담이 누적됐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세액공제는 축소됐다"며 "잇단 세 부담에 경영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세수 확보 등을 이유로 대기업 R&D 투자세액 공제율을 2013년 3~6%에서 단계적으로 줄여 지난해 0~2%까지 낮췄다. 기업 손실에 대해 공제 혜택을 해주는 결손금 이월공제한도는 2015년 100%에서 2019년 60%까지 줄었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8년 22%에서 25%로 3%포인트 뛰었다. 이에 따라 기업의 법인세 부담은 재차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법인세수가 65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각종 세 부담이 가중되며 경제 성장동력인 설비투자까지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12.3%였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하반기 5.5%로 급감한 뒤 내년에는 2.1%로 추락할 전망이다.


올 2분기 12.7%였던 설비투자 증가율이 3분기 6.0%로 급락하는 등 하락폭이 가팔라지고 있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정책팀장은 "기업들이 코로나19 타격에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면서 이익률이 개선된 측면이 있다"며 "이익 증대로 올해 법인세가 늘어난 것을 경기 개선 신호로 읽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팀장은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기업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어 내년 설비투자는 더 떨어질 것"이라며 "투자가 얼어붙기 전에 정부가 공격적인 투자 인센티브와 세액공제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AI신기술 투자해도 공제 없어…대기업 64% "법인세 고충 커져"

신성장 R&D 세액공제 항목
일부 기술만 적용돼 문제

손실 기업 稅부담 깎아주는
결손금 공제혜택 갈수록 축소
美·캐나다보다 기준 까다로워
"돈 빌려와서 법인세 낼 판"

쪼그라든 설비투자 증가율
한은 "내년엔 2.1%로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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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손실이 발생하면 이 손실을 다음 해로 넘겨 일정 부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공제 혜택이 급격히 줄면서 세 부담이 크게 늘었어요. 가뜩이나 코로나19 타격에 차입이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빌린 돈을 투자에 쓰지 못하고 법인세 내는 데 쓰게 생겼어요."(소비재 기업 A사 회계담당자)

"법이 기술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어요. 지금은 신성장 기술개발(R&D) 세액공제를 받을 때 법에서 허용한 기술을 빼고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다 보니 첨단 기술에 투자하는데도 세금 혜택이 없어요. 법에서 금지한 것 빼고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세법을 바꿔야 해요."(기술기업 B사 담당자)

24일 매일경제·한국경제연구원의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설문조사 결과 기업체 10곳 중 6곳(62%)은 최근 5년간 정부 세법 개정 등 조세환경 변화로 경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 진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기업 조세환경을 묻는 질문에는 기업의 64.5%가 '열악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들이 매긴 현 정부 기업 조세환경에 대한 평점은 100점 중 58.8점으로 저조했다.

문제는 대기업의 세 부담이 누적된 가운데 코로나19로 경영 내상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국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설비 투자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2.3% 급증했던 설비 투자는 올 하반기 5.5%로 급락할 전망이다. 설비 투자는 내년에는 2.1%로 더 둔화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 팀장은 "정부가 기업 세액공제 규모를 키우거나 법인세율을 낮춰 투자를 유도하고 경기 회복을 노리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토로하는 세 부담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25%) 인상,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강화 등 내야 할 세금이 급증했다는 불만과 R&D 시설 투자 세액공제나 결손금 이월공제 한도 축소처럼 기존에 받았던 세제 혜택이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설문에 참여한 대다수 기업은 "최소한 종전에 줬던 세제 혜택만이라도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조세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조세 지원 규모 확대(28.0%), 법적으로 금지된 것을 빼고 나머지를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 도입(26.7%)을 손꼽았다.

기업 조세환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는 복잡한 과세 체계(26.6%), 높은 법인세율(21.8%), 낮은 과세 형평성(17.5%) 등이 거론됐다.

기업의 62%는 조세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기업 조세제도의 문제점으로는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이 불충분하다'는 반응이 33.3%로 가장 많았다. 세법을 고칠 때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응답(22.6%)과 법이 지나치게 성급하게 처리되거나 계도 기간이 부족하다는 반응(16.7%)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혔다. 법인세 부담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각종 세제 지원에서도 소외되면서 투자가 둔화하고 결국 기업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법인세율이 높으면 결국 우리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원가가 더 올라가기 때문에 법인세가 낮은 국가의 제품보다 비싸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법인세는 부의 재분배보다 효율성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세금"이라고 설명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한국 기업 세제 지원 수준은 미국·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9년 기준 법인세액에서 각종 공제·감면으로 면제된 금액 비중(공제·감면율)은 일본이 24.8%, 미국이 18.6%인 반면 한국은 8.4%에 불과했다. 세금 100원당 미국과 일본 기업이 각각 24.8원과 18.6원을 감면받을 때 한국 기업은 8.4원 감면에 그친 것이다. 오 교수는 "세계 최저 법인세율이 15%로 합의된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18~20% 수준의 세율이 적절하다"며 "과도기적으로 2단계 정도로 법인세율을 단순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단일세율로 변경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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