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명에게 세금폭탄이면 세금폭탄으로 보는 게 민주주의 [핫이슈]

입력 2021/11/26 08:49
수정 2021/11/26 08:57
집 팔라는 정책 안 따랐다고
징벌적 세금 부과하는 건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고
명령하는 비민주적 행태

소수에게만 부과된다고
세금폭탄 정당화하는 건
'소수의 정당한 권리 보호'라는
민주주의 원칙 위배하는 것

유주택자 모두가 1주택자 되면
일자리 찾아 이사할 권리 박탈되고
국가의 경제 활력도 소멸할 것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다수의 이익을 해치지만 않으면 소수에게 손해를 끼쳐도 된다고 한다면 이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한다. 한 사람이라도 그의 정당한 권리가 희생된다면 그 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 한 사람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없다. 자본가이든 노동자든 상관없다. 누구든 정당한 권리가 부인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와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내놓은 발언을 보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종부세는 세금 폭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민 2%에만 부과되고 나머지 98%와는 무관하다는 게 근거다.

이런 발언은 앞서 밝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충돌한다.


단 한 명이라도 과도한 세금 탓에 정당한 재산권을 침해받는다면, 이를 막는 게 민주주의다. 다시 말하지만 소수의 이익 보호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 소수가 집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부인하는 건 헌법 위반이다. 우리 헌법 11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집을 1채 갖고 있든, 2채를 갖고 있든, 3채를 갖고 있든 상관없다. 집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

물론 집 가진 사람은 집에 대한 재산세를 물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더 많은 세금을 무는 게 옳다.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재산세와 별도로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세금이 과도해서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정도가 되면 안 된다. 단지 집을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건 재산권과 행복추구권 침해다. 납세자가 생계비와 자녀 교육비를 크게 줄여야 하고 그의 노후를 위협받을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건 그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만약 종부세 부과로 인해 국민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면, 그 한 명에게 그 세금은 분명히 '세금 폭탄'이다. 불행히도 지금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종부세는 95만 명에 5조 7000억 원이 부과됐다. 상당수 납세자들은 허리가 휜다.

세금 부과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그 세금이 정당하다는 도덕적이고 실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집을 두 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훨씬 높은 소득을 올리는 고가의 1주택 보유자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당신은 국민 중 소수이기 때문에 세금 폭탄을 맞아도 된다'는 주장을 할 게 아니라 '당신은 얼마의 재산을 갖고 있기에 공동체를 위해 얼마 정도의 세금을 내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로 보유세 부과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소수가 내는 세금'이라는 걸 근거로 종부세를 정당화한다. 98%의 국민과는 무관하니 세금 폭탄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사고는 전체주의적 사고다. '소수의 정당한 권리'라는 개념을 망각하는 논리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정부 정책을 따랐으면 피했을 수 있는 세금'이라는 걸 근거로 세금 폭탄을 정당화한다. 종부세를 올린다고 예고했으니 그전에 집을 팔았으면 피할 수 있었던 세금이라는 뜻이다.

이런 주장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은 국민을 설득해 집행하는 것이다. 그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국민에게 벌을 준다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집을 팔라는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금 폭탄'이라는 벌을 준다. 정부 말을 안 들으면 벌을 받는 나라, 이게 진정 우리가 원하는 나라인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가.

물론 정부가 정책을 따르는 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는 있다. 그 정책을 안 따르는 국민은 손해를 볼도 수 있다.


정부가 '1가구 1주택 보유'를 원칙으로 1주택자에게 감세 등의 혜택을 줄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다주택자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물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징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징벌이 되는 순간, 정부는 정책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게 된다. 정부가 국민 위에 서는 게 된다. 국민에게 명령하는 지위를 갖게 된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종부세 부과가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공선 증진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억지로 그 세금을 합리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종부세는 오히려 공공선에 역행한다. 납세자는 세금 부담에 고통을 받는다. 그 세금을 내기 위해 전세를 주던 집을 월세로 바꾼다. 임대료를 올린다. 세입자 역시 고통이다.

만약 정부 정책대로 대한민국 유주택자 전부가 1주택만 보유한다고 하면 임대 주택은 누가 공급하는가. 어느 나라든 전체 가구의 적어도 30~40%는 임대를 산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사람들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사를 한다. 어떤 곳의 산업은 쇠퇴하고 어떤 곳은 새로운 산업으로 번창한다. 번창하는 곳으로 옮겨가 일단은 집을 임대해 생활한다. 젊은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만약 유주택자가 없다면 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사람은 집을 구하지 못해 이사를 못할 것이다. 삶에서 더 나은 기회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임대는 필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다주택자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 정책대로 이 나라에서 다주택자가 박멸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이사할 자유가 없는 나라, 그래서 경제의 활력이 사라진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식의 세금 폭탄은 왜 있어야 하는가. 이른바 '불로소득은 환수해야 한다'는 위정자들의 낡은 이념에 복무하기 위해서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원조 공산주의자 칼 마르크스는 '오로지 노동만이 가치를 창조한다'는 노동가치설을 전파했다. 이를 근거로 자본가와 지주는 아무런 가치를 창조하지 않으면서 노동자가 창조하는 가치를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불로소득 환수' 주장에는 이런 시대착오적 사고가 반영돼 있다. 그러나 가치는 노동뿐만이 아니라 투자와 위험 감수 등 다른 여러 방식을 통해서도 창조된다. 이른바 국민 다수를 대변한다는 착각 속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기본적 사실을 무시한다. 그들은 종부세로 국민 2%는 물론이고 국민 다수에게까지 고통을 안기고 있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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