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실손 믿고 도수치료에 연7000만원…285번 진료받았다

입력 2021/12/02 11:04
수정 2021/12/02 11:20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도수치료에 수천만원을 썼을까요? 직장 동료중에는 도수치료를 '피로 풀어주는 마사지' 정도로 생각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당연히 시도때도 없이 가서 받곤 하지요. 그게 다 내 보험료 부담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여의도 증권사에 다니는 5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최근 실손보험료가 급등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김 씨는 "2007년 가입한 실비보험의 5년 갱신도래 문자가 왔는데, 10만원이던 보험료가 23만5000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부부 실비만 매달 50만원 돈이 나가게 생겼다. 이게 정상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뉴스를 보니까 실비 청구 1위가 도수치료라던데, 잘은 모르지만 이게 꼭 받아야 하는 치료는 아니지 않나. 보험사들이 왜 이런 치료도 못거르고 내 보험료만 올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김 씨처럼 실손의료보험료 갱신 문자를 받았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5대 손해보험사 청구액 상위 고객은 도수치료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외래진료비 보험금을 수령한 실손보험 가입자 상위 5명의 평균보험금은 6945만8000원이며, 외래 진료 횟수는 평균 285회였다. 이들의 보험금 청구액 중 비급여진료비가 95%에 달했다.

이밖에도 실손보험금 수령액 상위 50명 안에는 각종 근골격계 만성통증을 이유로 1년에 200회 이상 도수치료를 받고 4천만원이 넘는 비급여 진료비를 지출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고 보험사들은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청구 내역만으로 환자의 상태나 치료 내용을 단정할 수 없지만, 방문 의료기관 종류, 주 진단명,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 치료 같은 진료 항목을 볼 때 일부 고액 수령자의 과다 이용이 의심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들 고액 수령자는 모두 '1세대' 구(舊)실손보험이나 '2세대' 표준화실손보험 가입자들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2009년 9월까지 팔린 1세대와 그 후 2017년까지 팔린 2세대 상품은 자기부담비율이 0∼20%로 낮아 의료기관과 일부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지목되어왔다.

모 손보사 실손보험 가입자 A씨(30) 지난해 '사지의 통증'을 이유로 252차례 병·의원 진료를 받았다. A씨에게 지난해 지급된 보험금은 비급여진료비를 중심으로 7419만7000원에 달했다.A씨는 주요 5개 손해보험사(메리츠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의 외래진료비 보험금 수령액 상위 5명 중 1위였다. A씨에게 지급된 실손보험 진료비의 97% 이상은 비급여진료, 그 중에서도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에 주로 쓰였다. 지난해 외래환자 중 실손보험을 가장 많이 타간 5명 가운데 4명은 A씨처럼 중증질환 치료가 아니라 주로 도수치료에 수천만원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보험금 수령액 2위인 B씨(72)는 307회 진료를 받아 보험금 7416만1000원을 받았다.


진단명은 '신경계통의 상세불명 퇴행성 질환', '사지의 통증', '골반부분 및 대퇴 통증'으로, 환자는 고령으로 인한 만성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했다. B씨는 의원급에서 도수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C씨(52)는 '기타 명시된 추간판전위' 진단명으로 308회에 걸쳐 의원급에서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치료를 받아 보험금 7158만1000원을 수령했다. 기타 명시된 추간판전위란 '일자 목' 같은 척추부위 변형과 통증을 가리킨다. 분석결과 보험금 수령액 상위 5명 가운데 중증질환자는 다섯번째로 많은 진료비를 받은 53세 유방암환자뿐이었다.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 등 근골격계 분야의 비급여 재활·물리치료는 연간 40%씩 증가하고 있다. 5개 주요 손해보험사가 지급한 비급여 재활·물리치료비는 2018년 2392억원에서 지난해 4717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도수치료의 경우 소아과, 피부과, 산부인과는 물론 치과에서도 청구 사례가 나오는 실정이다.

불필요하다고 의심되는 치료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비급여진료는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겨져 있어 보험사와 금융당국의 노력으로는 진료비 통제에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손보사 관계자는 "보건당국이 비급여 과잉 의료를 제한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보사들은 "올해도 실손보험에서만 3조5000억원 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1세대 상품의 경우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보험료 15% 이상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근거를 보험개발원에 제출했다.

[신찬옥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