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해운담합 과징금 962억…국내외 선사들 "소송 불사" 반발

김희래 기자, 문광민 기자, 박동환 기자
입력 2022/01/18 17:48
수정 2022/01/19 10:40
공정위, 한국~동남아 노선에 과징금 3년만에 결론

한일·한중노선 불똥 튀나
해운사, 두 노선서 낸 흑자로
경쟁심한 항로 적자 메워
과징금 맞으면 경쟁력 약화

'나쁜 선례' 생길 수도
해외선사들 과징금 강력 반발
상대국서 보복성 조치하면
영업기반 자체 흔들릴 우려
◆ 해운사 과징금 후폭풍 ◆

54183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해운사 23곳이 지난 15년간 한국~동남아시아 항로의 해상 운임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하고 1000억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계는 "해운법에 따랐을 뿐"이라며 행정소송을 예고하는 등 즉각 반발했다.

18일 공정위는 "12개 국적 선사와 11개 외국적 선사 등 총 23곳이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지키지 않은 채 불법적인 공동행위를 했다"며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해운사는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541차례 회합하며 한~동남아 수출·수입 항로에서 총 120차례 운임을 합의했다.


국내 해운 업계에선 한국~중국, 한국~일본 항로에도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과징금 부과를 빌미로 외국에서 국내 해운 업체에 불이익을 가하는 역외 제재 조치를 취한다면 국내 해운사들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초 예고된 5599억원(국적 선사 기준) 대비 실제 과징금은 10분의 1 수준인 658억원으로 줄었지만, 국내 해운사들이 과징금 무효를 주장하는 이유다.

이날 한국해운협회는 "한일, 한중 항로의 공동행위에 대해선 해운 기업에 이중·삼중 낙인을 찍기보다는 법·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처리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한일, 한중 항로에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국적 선사의 경쟁력은 약해지고 외국 대형 선사만 유리하게 된다"며 "피해는 한국 수출입 화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근해 노선은 국가 간 이해관계나 안보 문제와 연결돼 있어 다른 노선에 비해 규제가 심하다. 특히 한중 노선은 아직까지 제3국에 개방되지 않아 한국과 중국에서 허용하는 선사만 운송할 수 있다.


반면 동남아 항로는 한중, 한일 항로에 비해 개방도가 높아 선박 투입과 항로 개설이 자유로운 경쟁 시장이다. 동남아 항로에서 출혈 경쟁이 심하던 시기에 일부 국내 해운사는 한중, 한일 항로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동남아 항로 손실을 메우는 데 썼다.

국내 연근해 선사들은 그동안 한중, 한일 항로를 유지해온 기본적인 틀이 공정위 과징금 부과로 인해 흔들리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 '캐시 카우'로 꼽히는 한중, 한일 항로에 제3국 해운사가 진입하면 국내 선사들의 영업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수한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해운 업계 전체로 보면 과징금 자체보다 과징금 부과에 따른 파급 효과가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적 선사들이 동남아 항로에 대한 공정위 과징금을 놓고 반발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선사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해외 노선에서 한국 선사들이 이번 공정위 과징금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컨테이너 정기선사인 PIL은 "가능한 모든 옵션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선사 완하이는 소송을 포함한 과징금 대응책을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해운사들은 단 1원의 과징금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해운협회는 "공정위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고, 해운 공동행위의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해양수산부가 업체 간 세부 협의에 대해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공정위 판단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공정위가 화주와 선사 간 실체적 관계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위는 선사들의 담합 주요 내용을 밝히면서 대형 화주에 대한 투찰 가격을 합의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화주가 제시된 운임보다도 낮은 운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한 해운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화주들이 2자 물류 자회사로 하여금 선사들에 입찰을 통해 운임을 제시하도록 한다"며 "선사들이 투찰 가격을 합의한 데서 끝났다면 담합 소지가 있겠다. 하지만 화주들은 운임을 제시받고 선사를 결정한 다음 운임을 더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경쟁법 전문가들은 과징금 부과가 수범자(피규제자) 신뢰 이익 보호나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사들은 운임 공동행위가 법률상 허용되는 것으로 믿고 했다"며 "과징금은 수범자의 신뢰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 이익은 어떤 법률 행위가 무효로 됐을 때 그 당사자가 무효인 법률 행위를 유효라고 믿었기 때문에 입은 손해를 말한다.

[김희래 기자 / 문광민 기자 / 박동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