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내 노후자금을 시민단체가 좌지우지?…국민연금 지침개정 논란

입력 2022/01/20 17:47
수정 2022/01/21 08:51
세계 3대 규모 '국민연금'
독립성·전문성은 낙제점


韓기금위원 중 정부인사 40%
위원장은 복지부장관이 맡아

친정부 시민단체 위원 가세땐
정부 견제할 수단 사실상 없어

임기 2년…책임 발휘 어려워

세계 2위 노르웨이 GPFG
컨트롤타워는 노르웨이은행

캐나다, 금융·기업CEO 다수
일본,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

"국민연금 지배구조 수술을"
◆ 국민연금 지침개정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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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한 대표소송 제기 결정권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다음달 말 열릴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 재계와 증권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는 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회하고, 출석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등 정부 쪽 위원이 최소 8명(40%)이다.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 위원들까지 합치면 사실상 정부가 추진하는 안건은 모두 통과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수탁자인 국민의 노후를 위해 오로지 수익성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선진국처럼 뜯어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연금이 수탁자의 이익을 우선하고 정부와 시민단체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제도 틀을 확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권 차원의 이해관계 등에서 자유롭도록 해야 국민의 노후가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20일 관계 전문가 등에 따르면 규모 면에서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하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독립성·전문성 측면에서 외국의 다른 연기금과 비교해 낙제 수준이다.

우선 기금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는 것부터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각 부처 차관 4명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정부 쪽 당연직 기금위원만 6명이다.

게다가 국책연구기관장 2명도 기금위에 참여한다. 기금위원 20명 중 정부 인사만 40%를 차지하는 셈이다.


한 전문가는 "지역가입자 대표 몫의 기금위원을 시민단체가 2명 정도 추천하게 돼 있는데 정권에 따라 추천하는 시민단체가 바뀐다"며 "지역가입자 대표를 농협, 수협, 공인회계사에서 추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금위원 중 기업 대표는 3명(15%)에 불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국민연금 보험료 중 기업 부담이 45%에 이른다"며 "45%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업의 목소리가 기금위에 더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성 확보가 안되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진다. 1500조원 정도로 세계 2위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노르웨이은행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한다. 이사 10명은 모두 금융·투자 전문가로 구성된다.

캐나다 연금(CPP)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이사회)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일반 기업 CEO, 학계 전문가 등 총 12명의 금융·투자 전문가로 꾸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의 경영위원회 위원도 대부분 민간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경총 관계자는 "일본, 노르웨이, 캐나다 등 해외 6대 연기금 중 기금운용 거버넌스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기금위원 임기가 2년으로 짧고 비상근인 데다 법적으로 기금위는 1년에 4회만 열어도 되기 때문에 책임성·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연금 기금위와 달리 세계 주요 연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상설기구로 운영되거나 정기 회의체로 운영되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ABP)의 수탁자위원회 의장과 위원은 모두 상근으로 연간 10만유로 안팎의 보수를 받는다. 캐나다 CPPIB도 매년 6번의 정기 이사회와 5~6회의 전문위원회 회의, 안건별 수시 회의 등을 개최하며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 노르웨이 GPFG를 운용하는 노르웨이은행 이사회도 연간 16~17회 정도의 정기·수시 회의를 개최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위 회의를 1년에 6~7회 개최해서는 세계 최고 투자 전문기관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주주·다중대표소송 결정권을 부여받게 되는 수책위도 독립성, 전문성 측면에서 기금위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수책위는 현재 국민연금 지배구조에서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위의 자문기구에 불과해 기금의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소송 제기권을 행사할 근거가 미약하다. 이에 경영계에서는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를 통해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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