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초밥에 치이고, 짬뽕에 밀리고…한식, 한국인마저 점점 외면

김정석 기자
입력 2022/03/25 18:00
수정 2022/04/07 13:54
재료비·인건비 비싼데다가
양식·중식보다 배달 번거로워
서울서만 4년새 2700곳 감소
◆ 한식의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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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옛날집낙원아구찜` 모습. 이곳은 서울식 아귀찜을 처음으로 개발한 유명한 한식 맛집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음식 배달이 일상화되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이충우 기자]

1977년부터 서울 낙원동을 지켜온 '옛날집 낙원아구찜'은 특유의 걸쭉한 식감으로 서울식 아귀찜을 처음 개발해 서울미래유산, 백년식당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난 23일 정오 점심시간대. 3층짜리 '옛날집'은 단 1층만 운영하고 나머지는 문이 닫혀 있었다. 코로나19 유행 탓에 손님이 더 줄어들었다는 하소연이다. 배달로 돌려보려 했지만 아귀찜은 내장을 빼고 양념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 인건비가 많이 들고 배달 음식으로도 가격이 비싸 외면받았다.

옛날집을 56년째 운영하고 있는 윤청자 씨(82)는 "아귀찜은 서로 나눠서 먹는 음식이고 배달로는 편하게 먹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평일에는 사실상 배달 주문이 없다시피 한다"며 "주말에나 간간이 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한식(韓食)이 위기를 맞았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음식맛으로 유명했던 한식당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높은 인건비와 재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데다 배달 음식으로 적합하지 못해 시장에서 차츰 밀려나고 있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식당은 코로나19에도 꾸준히 증가해 2019년 4분기 14만5979개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15만573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한식 점포는 같은 기간 1373곳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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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분기 양식·일식·중식 점포 수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이던 2019년 4분기 대비해 각각 7%, 6%, 3%씩 증가했다. 매장에서 식사하는 손님은 줄었지만 배달 매출이 빠르게 늘면서 오히려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유독 한식 점포만 2% 줄었다. 외식업에서 '나홀로 역성장' 추세가 뚜렷하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는 "한식 특유의 반찬 문화와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 등을 정부 주도로 현대화해야 한다"며 "한식을 단순한 요리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서 재정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달앱 되는 일식집 43%, 한식당 13%…"손맛만으로 버티기 한계"


배달문화 급속 확산에 백년노포도 문 닫는다

고령점주 코로나불황 직격탄
대통령 찾던 한식 맛집도
매출 70~80% 곤두박질
음식 뜨겁고 반찬포장 부담
한식당만 점포수·수익 줄어

배달로 활로찾은 양식·일식당
1년새 300여곳씩 늘어 대조

25일 서울 인사동 유명 한정식집인 '하나로회관'. 코로나19 이후 예약 손님이 줄어 매출이 그전보다 50%나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하나로회관 대표 김 모씨(67)는 "코로나 이후로 직원을 놀릴 수가 없어 도시락 배달까지 시작했는데 사실상 마진도 안 나오고 주문도 별로 없다"며 "자식에게 3대째 물려주어 자부심 있는 우리나라 전통 한식을 이어가고자 하는 꿈을 망설일 정도로 타격이 크다"고 토로했다.

예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 후 방문하려다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렸던 '선천집'도 손님이 80%나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선천집 매니저 정 모씨(51)는 "예전에는 식당에 찾아온 차로 인사동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주차장이 한산할 정도"라며 "한식은 배달음식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다간 우리나라에서 한식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식이 외식업에서 점차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 매출만 봐도 뚜렷이 나타난다. 25일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빅데이터 활용 외식업 경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2월 일반 한식당의 점포당 매출액은 1070만원으로 전월 매출액 1152만원 대비 7.1% 감소했다. 이는 일반음식점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같은 기간 양식당은 점포당 매출이 2068만원에서 2129만원으로 3% 늘었고, 일식당은 2320만원에서 2344만원으로 1%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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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은 식재비와 인건비가 다른 음식에 비해 많이 들어서 팔아도 남는 게 적다. 수익성이 낮다는 얘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0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식은 매출 대비 식재료·인건비 비율이 65.7%로 음식업종 가운데 가장 높다. 양식은 58.9%로 한식보다 6.8%포인트나 적고, 중식과 일식은 63.1%로 2.6%포인트 낮다.


서울 인사동 한정식집 대표 이 모씨는 "한식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고 반찬 가짓수가 다양해 재료비도 많이 든다"며 "사실 요즘은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을 위해 장사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배달음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한식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aT에 따르면 올 1월 외식업 매장 매출에서 한식 비중은 52.2%인 데 반해 배달앱 매출에서 한식 비중은 46.4%로 차이가 크다. 국이나 탕류가 많은 한식은 뒤처리가 불편해 배달을 꺼리기도 하고, 배달을 하면 한식의 장점인 '반찬 무한 리필'이 불가능하다. 배달 메뉴에서 한식 선호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자취생 박 모씨(22)는 "편하려고 배달을 이용하는데 치우기 불편한 한식보다는 간단한 햄버거나 스시 같은 음식을 자주 시킨다"며 "고기는 식당에 가서 직접 구워 먹는 게 낫고 한식을 배달시키면 반찬이 정량뿐인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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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는 한식당은 미미한 수준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배달 앱을 이용하는 한식 음식점은 13.7%에 불과하다. 일식당(43.0%)의 배달 앱 이용률과 비교하면 차이는 두드러진다. 이는 고령층이 많은 한식업 점주가 배달 영업을 도입하기 어려워하고 반찬 가짓수가 많은 특성상 포장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곱창구이 전문집 '종가집'을 운영하는 정종구 씨(71)는 "경영이 어려워 배달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배달할 만한 메뉴도 마땅찮고 배달을 새로 하는 게 어렵기도 해서 결국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한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 농식품부·한식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한식의 인지도는 2017년 64.1%였으나 2021년에는 55.9%로 8.2%포인트 감소했다. 한식당 만족도도 같은 기간 92.2%에서 88.6%로 떨어졌다. 한식당 재방문 의사 또한 92.4%에서 89.5%로 감소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엄 모씨(31)는 "곱창이나 국밥을 먹으러 한식당에 가면 손님은 사실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2009년 이명박정부가 한식재단을 설립하면서 야심 차게 '한식 세계화'를 추진했지만 불과 13년 만에 허울만 남은 셈이다.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로 뻗어가면서 한식을 찾는 외국인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한식 자체가 세계인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적인 '한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식을 현대적으로 분류하고 정의하는 체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식은 중국·일본과 다르게 체계화된 요리법이 없고 집안 대대로 구전하는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규민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한식의 체계나 분류를 명확히 해야지만 정부 지원이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중구난방인 한식 표기를 표준화해 '음식명의 세계화'부터 차근차근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아직도 해외에서는 떡볶이를 'Tteokbokki'나 'spicy rice cake' 등 여러 이름으로 혼용해 번역하면서 한식 인지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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