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전문학 감상] 운명을 걷어찬 춘향, 주체적 여성으로 날다

입력 2022/05/13 08:01
조선 판소리소설 속
주인공 춘향
기생의 딸이란
계급적 한계에도
몽룡에 대한 사랑
끝까지 지켜

사랑에 목맨 18세 아닌
사또 부당한 요구 맞서
당당히 목소리 내는
한 인간으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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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향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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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작가의 현대시 '수정가'의 일부다. 이 시는 총 2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1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화자는 '집'을 예시로 들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집이라고 치면 깨끗한 정화수 위에 매일 아침 새롭게 생기는 집이라고 한다. 아주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1연의 끝에 가서야 화자가 언급하려는 것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것은 '춘향'의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춘향을 알고 있다. 춘향은 고전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으로 이몽룡과 사랑을 나눈 인물이다. 소설 속 그는 사또의 유혹과 모진 고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몽룡과의 사랑과 의리를 지켰다. 이런 춘향은 현대시뿐 아니라 여러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계속 패러디되어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이 인물이 가진 매력이 다채롭다는 의미다.


박재삼의 '수정가'에서 집중한 춘향의 매력은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모습인 것 같다. 시 속에서 '서방님'은 '바람' 같은 존재다. 바람은 갈피를 잡기 어려우며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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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춘향전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18세 어린 나이에 첫눈에 반해 사랑을 나누던 몽룡과 춘향은 몽룡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그사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변사또가 춘향을 유혹하지만 춘향은 그것을 거절하고 옥에 갇힌다. 이 장면은 몽룡이 암행어사 행차 이후 드디어 춘향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몽룡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춘향을 유혹해 보지만 춘향은 끝까지 몽룡과의 의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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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작가의 현대시 '추천사'의 서두다. '향단'을 부르는 걸로 보아 이 시에도 춘향이 등장한다. 향단은 춘향전에 등장하는 춘향의 몸종이다. 춘향은 그네를 밀어 달라고 한다. 사실 그네는 춘향에게 아주 중요한 소재다. '춘향전'에서 그네를 타는 춘향을 보고 몽룡이 첫눈에 반해 둘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춘향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수양버들, 풀꽃더미 등을 언급하며 다소 비장하게 그네를 밀어 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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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의 뒷부분이다.


춘향이는 계속 자신을 하늘로 밀어 달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네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네를 타며 하늘 가까이에 가려 애쓴다. 하지만 그네의 속성상 우리가 아무리 발돋움해도 공중으로 무한정 나아갈 수는 없다. 춘향은 그네 속 자신이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운명임을 알면서도 거듭 하늘로 밀어 달라고 청한다. 하늘로 나아가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춘향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조선시대 사또나 암행어사의 지위는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어린 여자가 그 명을 거역하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춘향의 이런 행동을 단순히 사랑에 목을 맨 어린 여자의 의리로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굽히지 않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목소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춘향이 끝까지 지켰던 몽룡에 대한 사랑은 비록 조선시대 여자라는 계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용기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서정주 작가는 춘향이를 통해, 결국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주관을 쉽게 꺾지 않았던 춘향의 의지를 읽었는지도 모른다. 고전문학은 이렇게 과거 한 시점에 같은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고, 현대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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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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