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세계사 속 경제사] 흑사병에 농민의 힘 커져…중세 봉건사회 몰락 촉진

임성택 기자
입력 2022/05/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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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을 묘사한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

전염병과 경제 : 흑사병

코로나19로 2년 넘게 시행됐던 사회적 거리 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종료되고 코로나19도 종식되어 가는 분위기다. 유행병은 지진이나 태풍 등 국가적 재난 같은 천재지변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천재지변 이상으로 국내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엄격한 방역활동과 거리 두기, 봉쇄로 인한 생산 차질은 물론 자영업자 영업시간 제한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 지출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수많은 기업의 도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자산시장 거품(풍선껌)을 초래했다.

질병이 세계 역사에 악영향을 끼친 가장 유명한 사례는 페스트였다.


쥐벼룩을 통해 전염되는 이 질병은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기며 높은 치사율을 보였기 때문에 흑사병(Black Death)으로도 불렸다. 중앙아시아에서 발현돼 6세기 동로마제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던 흑사병은 700년 뒤 중세 유럽에서 또다시 대유행하게 된다.

당시 유럽은 봉건제 사회로, 주된 생산품은 농산물이었다. 왕에게서 토지를 하사받은 봉건 영주는 영지 내 토지를 소유하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생산 요소인 노동력은 영지에 소속된 농노들이었다. 이들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어 고대 노예보다 나은 처지였지만 거주지와 직업을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신분이었다.

당시 유럽 인구는 식량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빠르게 늘어나 흑사병이 퍼질 때쯤에는 7400만명에 달했다. 토지에 비해 농민 수가 현격하게 늘어나자 추가적으로 투입된 농민이 농산물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정도는 감소하였다. 좁은 땅에 농부가 이미 많이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 명이 더 일을 돕기 위해 와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법이다. 노동의 '한계생산성 체감'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노동력이 풍부할 때 임금을 떨어뜨린다.


고용하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임금이 감소하는 '노동수요곡선'이 이러한 관계를 잘 나타내준다.

1347년 지중해 연안을 통해 유럽에 유입된 흑사병은 유럽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위생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흑사병에 대한 치료제가 없었고 환자가 거주하는 집이나 마을 단위로 봉쇄하는 방법 외에는 대처할 방안이 없었다. 흑사병은 높은 전염력에도 불구하고 치사율이 50~90%에 달할 만큼 높았고 병의 진행 속도조차 빨라 감염된 지 6시간 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흑사병은 1353년까지 기승을 부렸으며 당시 유럽 전역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인구 감소는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초래했는데 노동력이 희소해지면서 임금이 상승한 것이다. 몸값이 높아진 농민들은 흑사병에서 살아남은 특수를 누렸고 좋은 조건을 찾아 거주지를 이동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한편 농민이 줄어들자 풍부해진 토지는 그 가치가 하락했는데 이는 토지 소유자인 봉건 영주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요인이었다. 과거와 같은 임금으로 농민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영주들은 농민 이탈을 금지하는 강압적인 정책을 취했다. 실질적으로 가치가 상승한 노동자를 강제로 억누르는 이러한 시도는 농민과 영주 사이 대립을 고조시켰고 봉건제 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다. 흑사병에 비하면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팬데믹이 남긴 상처와 저출산 기조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는 경제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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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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