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업부담 덜게…얼굴도 모르는 총수 6촌 자료 안내도 된다

입력 2022/08/10 17:54
수정 2022/08/11 09:20
공정위, 36년만에 총수 친족범위 대폭 손질

법적 자녀 있는 사실혼 배우자
특수관계인 포함돼 규제받아

엉뚱한 회사 조사받는 일 없게
사외이사가 운영중인 회사
원칙적으로 계열사 제외

벤처 계열사 편입 유예 요건도
R&D비중 5%서 3%로 완화
◆ 총수 친족규제 완화 ◆

70628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대기업 총수(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축소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2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허위자료 제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2015년 네이버가 대기업 지정자료를 내면서 이 GIO의 개인 회사와 친족 기업 등 20개 계열사를 누락했기 때문이다.

당시 문제가 된 회사에는 사촌이 인천공항에서 운영하는 한식점도 포함돼 있었다. 자료는 제대로 제출됐지만 6촌의 배우자가 운영하는 여행사가 네이버 계열사로 포함되기도 했다. 정작 검찰이 자료 누락을 해도 실익이 없었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릴 때까지 이 GIO와 네이버는 조사 대응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GIO의 사촌과 6촌처의 회사는 별다른 금전·거래 관계가 없음을 인정받은 이후 삭제 조치됐다.


앞으로는 사실상 사업과 관계가 없는 친족 등의 문제로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줄어들 전망이다.

10일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 핵심은 총수의 친족 범위 축소다. 기존에 포함됐던 혈족 5·6촌과 인척 4촌을 친족 범위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했다. 이를 통해 소원하게 지내는 6촌 등의 관련 자료를 누락해 대기업 총수가 공정위 조사를 받는 등의 일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공정위는 실질적으로 총수 지배력 강화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총수 측 회사의 주식 1% 이상을 보유하거나 총수 본인, 총수 측 회사와 채무보증·자금대차 관계가 있는 경우엔 친족 관계를 인정하고 특수관계인에 포함시킨다.

'규제 사각지대'로 꼽힌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규정 신설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현행법은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를 특수관계인으로 보지 않는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대기업집단 제도 합리화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차원"이라며 "사실혼 배우자를 친족 범위에 포함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일반적이기 때문에 정상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라마이더스(SM)그룹은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김혜란 씨 등이 친족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황원철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SM그룹은 지금 사실혼 배우자 김씨가 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라며 "특수관계인에 포함될 정도는 아니라 현재는 동일인 관련자가 아니지만, 시행령이 개정되면 실무적인 검토를 거쳐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관계가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이미 김 이사장이 특수관계인에 포함된 만큼 친족 포함 여부가 실질적인 규제 범위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706284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개정안은 사외이사가 해당 대기업과 별개로 지배·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규제도 완화했다. 원칙적으로 계열사 범위에서 제외하고, 임원독립경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계열사에 편입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사외이사가 지배하는 회사 중 임원독립경영 신청을 거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열사에서 제외했다. 이 때문에 기업과 사외이사 본인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앞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사외이사가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보드게임방 등의 자료를 누락했다가 공정위 경고와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재판 끝에 대법원이 "자료 누락에 고의성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김 의장은 수년간 법적 공방에 시달려야 했다.

공정위는 중소기업의 대기업집단 계열 편입 유예 요건도 완화했다. 지금까지는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비용의 비중이 5% 이상이어야 유예를 해줬는데, 앞으로는 3% 이상이면 유예 혜택을 준다. 공정위는 약 15만개 중소기업들이 계열사 편입 유예 혜택을 받고, 대기업의 중기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친족 범위 축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수의 가족관계, 촌수에 기초해 규제 대상을 따지는 특수관계인 제도는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이 생긴 경우나, 서로 왕래 없이 사는 관계인데도 특수관계인 지위가 유지되는 문제는 여전할 수밖에 없어서다.

과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대표적이다. 양측 간 갈등이 극심했는데, 2015년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서 세운 SDJ코퍼레이션이 롯데 계열사로 분류돼 자료 제출 대상이 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백상경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