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약속 깰 수도 없고"…美투자 발표한 4대그룹 총수의 속앓이

입력 2022/09/22 17:27
수정 2022/09/23 07:25
바이든 美대통령 방한 전후로
수백억弗 투자계획 내놨지만
달러 환산하면 투자금 급증

달러당 원화값 10% 떨어지면
제조업 원가 부담 2% 증가
정유·항공·철강 수익성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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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로 수백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쏟아냈던 재계가 연이은 원화값 폭락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달러당 원화가치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일컬어지는 1400원 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수익성 악화는 물론 대미 투자 계획을 재편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4대 그룹이 최근 공식 발표한 대미 투자 규모는 560억달러(약 78조90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2024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그룹은 지난 7월 최태원 회장과 바이든 대통령이 영상으로 면담할 당시 총 290억달러의 투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전기차와 배터리,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 등을 중심으로 105억달러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LG는 그룹 차원에서 대미 투자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주력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GM, 혼다와의 합작 공장은 물론 단독 공장 증설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주요 그룹이 현지법인과 금융기관 등에서 외화로 자금을 일부 조달할 수 있지만 원화값 폭락에 따른 여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지에서 인력·자재 조달 비용이 급등하고 해외 주요 자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 부담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 회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특파원들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외국 투자는 달러로 해야 하는 만큼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투자 액수가 늘어나고 캐피털(자금 조달)이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원화값 폭락에 따라 대미 투자 계획뿐만 아니라 주요 업종별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과거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중심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러로 대금을 지불하고 수입하는 원자재값이 급등한 데다 일부 업종은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재고가 늘어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달러당 원화값이 10% 하락할 때 제조업 전체 매출원가는 평균 2.1%가량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업종별로는 석탄·석유제품(6.5%), 1차 금속제품(3.2%), 섬유·가죽제품(2.7%), 화학제품(2.2%) 등이 제조업 평균 이상으로 원가 부담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원유를 구매할 때 달러로 결제하는 정유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에만 1조900억원에 달하는 환차손이 발생했다. 정유사들은 통상 원유를 해외에서 외상으로 구매한 뒤 3~4개월에 걸쳐 순차적으로 상환한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원화값이 하락하면 환헤지를 해도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원유를 도입해서 정제한 뒤 절반가량은 다시 수출하지만 순수입량이 워낙 많아 원화값 약세는 경영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환헤지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 상품도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서 개별 업체들이 원화값 약세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수출국에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원화값 약세에 따른 수혜 대신 부담만 늘고 있는 형편이다. 원료인 나프타를 수입하면서 달러 대금 지급 비용은 늘어났지만 해외에 제품을 팔 곳이 없어 재고를 쌓아놓고 공장 가동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어서다. 항공업계는 이미 달러당 원화값 하락에 따른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유류비를 비롯해 항공기 리스료, 영공 통과료 등 운영비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값이 낮아질수록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달러당 원화값이 10원 하락하면 대한항공은 약 3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약 284억원의 외화 환산 손실이 발생한다.

원재료 수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철강업계에서도 경영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철강사들은 철광석·석탄 등 원료를 수입하는데, 달러당 원화값이 낮아질 경우 원가 부담 상승이 불가피하다. 또한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위축되면서 환율 인상에 따른 원자재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부 반영하기도 어려운 형편으로 알려졌다.

[박윤구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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