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韓 지역주의, 美 인종주의만큼 심각"…후쿠야마 경고 [세지포]

입력 2022/09/22 17:42
수정 2022/09/23 15:28
정책 무관하게 특정 집단 응원
승자독식 대통령제도 원인 돼

플랫폼 표현의자유 수호 안해
거짓정보·특정의견 확산시켜
트럼프 아류 세계 곳곳서 등장
中, 방역 앞세워 전국민 감시
자유민주주의 위협하고 있어

우크라戰 명분과 실리의 싸움
러 패배 확신있어야 제재유지
◆ 세계지식포럼 / 프랜시스 후쿠야마와의 대담: 자유의 복원 ◆

83962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22일 열린 세계지식포럼 `프랜시스 후쿠야마와의 대담: 자유의 복원` 세션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오른쪽)와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저명한 정치·역사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의 정치·사회적 양극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또한 거대 플랫폼 기업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인터넷 환경에서 '표현의 자유' 통제권을 쥐는 것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대(對)러시아 공동 제재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내놨다.


22일 열린 세계지식포럼 '프랜시스 후쿠야마와의 대담: 자유의 복원' 세션에서 후쿠야마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해 해줄 조언이 있느냐'는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의 질문에 "한국에서 양극화는 미국과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에 인종주의가 있듯 한국엔 지역주의가 있다. 지역주의에 기대 정책과 무관하게 특정 집단을 응원하는 게 한국 고유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대통령제를 양극화 정치를 부추기는 근본 원인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연립 내각을 구성한 독일 사례와 선호하는 후보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순위선택투표제를 도입한 호주 사례 등을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거짓 정보를 확산시킴으로써 양극화를 부추기고 사회 분열을 가속화하는 주체로 거대 플랫폼 기업을 지목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자기네가 선호하지 않는 의견은 침묵시키고, 특정 의견은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힘을 얻고 있다"며 "그러면서 민주주의에 긍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디지털 공간에서의 소통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진 자유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킬 권한을 기술 기업에 맡겼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좋은 해법이 아니다"며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장을 수호함으로써 얻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집단화할 수 있는 특정 기관이 통제권을 갖는 것에도 신중해야 한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밝혔다.

후쿠야마 교수는 이 같은 자유 민주주의 위기가 향후 미국과 다른 주요 국가들이 치를 선거에서 더욱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4년간 미국의 민주주의 규범은 침식됐고, 이것이 축적되면서 여러 걱정스러운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사례가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원 상당수가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조작으로 당선됐다는 거짓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공화당은 11월 중간선거에 이러한 거짓 주장을 하는 후보를 내놓았다"며 "이처럼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은 2024년 대선 때도 되풀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트럼피즘(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이 남아메리카와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트럼프 아류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자국의 전자투표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2주 뒤에 있을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벌써 보이고 있다"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처럼 트럼프를 추종하는 아류가 여럿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선 '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현실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상황을 걱정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지금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면서도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산업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고, 대체재는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면 유럽은 한 번의 궁핍한 겨울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려면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번 군사적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후쿠야마 교수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안 되고 전쟁이 장기화의 길로 들어설 경우 "일부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일부 영토 포기를 권하며 평화협정을 맺길 제안할 수 있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말했다. 다만 이는 러시아가 재무장할 시간만 주는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으로 유럽 안보에는 심각한 비극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자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또 다른 세력으로는 중국을 꼽았다. 그는 "중국은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이용해 14억명에 대한 포괄적인 감시 체제를 구축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양성 판정 시 집 밖에 못 나가게 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치는데, 이러한 24시간 개인 감시는 과거 한번도 보지 못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독재 체제 강화가 이뤄졌고, 아시아·아프리카 등에서 확장주의 세력으로 행동하면서 큰 위협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젊은 중국 지식인조차 미국을 배우려 하지 않고, 결국 이게 중국에서의 '자유의 복원'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분석했다. 양극화를 비롯해 대내적인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시달리는 미국이 더 이상 사회주의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후쿠야마 교수는 "15~20년 전만 해도 미국에 유학을 온 중국 학생들이 '중국도 언젠가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중국 유학생이 보이지 않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네 모델이 더 우수하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유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