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멜로영화 ‘연애소설’의 이은주

입력 2002/09/13 16:00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당황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조금의 틈도 허용할 것 같지

않은 묵직한 분위기에 마음이 무거워진 건 오히려 이쪽이다. 그녀는

마치 문을 꼭꼭 닫아걸고 열어주지 않을 것만 같은 동화 속 라푼젤의

성곽처럼 높아 보였다. 때마침 그녀가 라푼젤의 긴 머리처럼 잘 정돈

된 웃음을 창 밖으로 던지지 않았더라면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나이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장난으로 스물 일곱

이라고 했어도 곱게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

은 그렇게 믿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다

. ‘한창 발랄하고 명랑할 나이에 그렇게 어두운 역할만 맡아서 슬프

지 않나요?’.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항상 ‘속상하지 않아

요’다.


사실이다. 그녀는 고민이 생기면 깊은 우물 속으로 침잠하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걸 더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끈질기게 한 쪽만을 고집했지만 앞으로

는 다른 쪽도 보여줄 생각이다. 그 중 하나가 13일 개봉하는 ‘연애

소설’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양면성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송어’때는 세화

로, ‘오! 수정’에서는 방송작가 양수정으로 살았다. 어느 날은 애

인을 잃어버린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였다가 최근에는 목젖이

보이도록 큰 소리로 웃는 ‘연애소설’의 발랄한 경희가 되었다. 그

녀는 그것을 ‘영화를 찍는 동안은 그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

다. 대부분 연기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다. 더

철저하다.

하루는 누가 ‘오! 수정’의 베드신을 놓고 ‘잘 봤다’고 했다. 여

느 여배우였다면 중의적인 뜻을 가진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네, 그러셨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

고는 머리 속으로 ‘오! 수정’의 주인공 양수정을 떠올렸다. 영화

속의 그녀는 이은주가 아니라 양수정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의

체득으로 정해진 듯한 대답을 내뱉는 이 배우의 나이는 이제 고작 스

물 둘이다.

▷‘연애소설’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 어느 날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주었다. 수인과 경희 중 누가 하고

싶은지 고르라고 했다. 보니까 수인이는 정적이고 청순한 역이고, 경

희는 밝고 명랑한 역이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이거 또 수인이

역이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경희가 매력적이었다. 그

래서 시나리오를 읽고서는 경희하고 싶다고 졸랐다. 그랬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안그래도 경희역이라고. 다 정해졌으면서도

읽어보고 선택하라고 한 것이다. 두말 할 것 없이 하자고 했다.

▷ 영화를 보면 지환(차태현)이 수인(손예진)에게 첫눈에 반한다.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다고 믿는가.

▶ 첫눈에 반하는 건 안 믿는다. 그건 겉모습이나 몸매가 마음에 들

었다는 뜻밖에는 안 된다. 나는 시간을 두고 최소 6개월에서 1년을

두고 본다.


그렇다고 ‘아, 저 사람이야’하고 찍어놓고 행실이 어떤

지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내다 보면 어느 날 정말 괜찮은 사람이

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나 심지어 화내는 모

습을 모두 보고도 그 사람이 좋다면 그때서야 사랑한다고 고백 ….

▷‘연애소설’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는 심

장을 가진 남자가 있을까.

▶ 사랑없이 5년을 사귄 사람을 알고 있다. 또, 지금하고 있는 사랑

은 마지막에 만날 사랑을 위한 중간단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알고 있다. 세상에는 참 많은 형태의 사랑이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

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한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 혹 운명 같은 것을 믿나.

▶ 너무 믿는다. 운명이란 게 사람마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

가 여기 앉아서 마주앉아 얘기를 하고 있는 것도, ‘오! 수정’이나

‘연애소설’을 만난 것도 모두 내 운명선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개봉되었던 영화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 영화

가 흥행이 잘되면 속상하지만 ‘내 운명에는 그 작품이 없었어’라고

체념하곤 한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

만 바꾸는 것까지 모두 운명에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 80년생에다 졸업과 함께 바로 데뷔를 해서 연애 한번 제대로 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나.

▶ 있다. 지금껏 딱 한 번이었다. 언제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지

금으로부터 가장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다. 하긴 처음이기도 했다.

▷‘했다’는 과거형이다. 지금은 사귀지 않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

나.

▶ 제일 슬픈 일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감정이다. 그때

가장 힘들다. 가족이든 친구든 똑같다. 사람을 너무 믿는 편이라서

종종 그럴 때가 있다. 잘 지냈는데 어느 날 잘 안 맞는다는 걸 알았

다. 어긋났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었다. 평생 내 사람이라는 확신

이 없다면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 적 만드는 건 싫다.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는 살기 싫다.

▷ 만약 연예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지금 제일 해보고 싶

은 것이 무엇인가.

▶ 정말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영화 같이 보고 둘만 여행 가보

고 싶다. 흔히들 그렇게 하듯이.

▷ 미래에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어떤 사람일 것 같은가

▶ 경희같은 남자였으면 좋겠다. 말 많고 명랑한 것 말고 보면 볼수

록 빠져드는 그런 느낌의 사람. 언젠가 내가 그 사람의 진가를 발견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러면 좋을 것 같다.




▷ 경희는 밝고 명랑해서 주위에 친구들이 꽤 많은 타입이다. 현실의

모습은 어떤가.

▶ 고 3때까지 군산에서 보냈는데,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이 제일

편하고 좋다. 주로 내가 어디 가는 것보다 친구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다는 싫어한다. 커피숍에 앉아서 ‘그 남

자가 어떻다’ ‘연예인 누가 어땠더라’하는, 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대화는 싫다.

주로 친구들의 고민들을 들어준다. ‘이거 비밀인데’라고 단서를 붙

이고 들은 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친구들과

는 속에 있는 얘기들까지 나누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만 정

작 자신의 얘기는 잘 하지못하는. 그래서 교등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내가 정말 베스트 프렌즈가 맞기는 한거야?’라는 쪽지를 많이 받

았다.

그러면 ‘내 성격 알잖아. 이해해 줘. 우리 베스트 프렌드 맞아’라

고 답장을 보내곤 했다. 얼마 전 그 친구들이 ‘연애소설’보려고 군

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었는데, ‘이제야 너다운 영화를 찍었구나’

라고 했다. 내 본모습을 너무도 잘 아는 친구들이다.

▷ 얘기를 들어주는 편이면 손해보는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하나.

▶ 만약 내가 청소를 정말 싫어한다고 하자. 그런데 엄마가 청소를

하라고 하면 몸이 아파도 군말없이 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손해보더라도 해주고 싶은 것은 해준다. 의리가 중요하다.

▷ 연예인치고는 수수한 차림이다. 흔한 목걸이나 반지같은 액세서리

하나 걸치지 않았다. 게다가 귀도 뚫지 않은 것 같은데.

▶ 꾸미는 것에는 취미가 없다. 목걸이는 가끔 하는데 반지같은 건

싫어한다. 목걸이도 엄마가 사준 것과 친한 친구가 사준 것을 빼면

없다. 여자애들은 보통 수능 끝나는 날 단체로 귀를 뚫으러 가는데,

그게 싫었다. 사실은 나중에 몇 번 귀를 뚫어야지 마음먹고 찾아갔다

가 다시 돌아온 적도 있다. 미신일 수도 있는데 귀를 뚫으면 남편의

앞길을 막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주 포기해 버렸다.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같은 무채색을 좋아하고, 치마보다는 바지를 좋

아한다. 치마는 기분이 좋지않을 때 업(UP)시키는데 쓴다. 취재가 없

는 사석에서 치마를 입었다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다.

▷‘연애소설’ OST에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했다. 뿐만 아니라 ‘오

! 수정’이나 드라마 ‘카이스트’에서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꽤 수준급이었다.

▶ 원래 피아노를 전공했다가 연기로 전공을 바꿨다.

14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아직 모자란다. 베토벤, 쇼팽, 모짜

르트는 솔직히 재미가 없다. 앙드레 가뇽이나 유키 구라모토 같은 뉴

에이지 계열의 연주자들을 좋아한다.

한번은 앙드레 가뇽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부산까지 내려간 적이 있

다. 무대 뒤에서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다음

날 바로 서울에서 공연이 있더라.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 태어나서 제일 힘들게, 오래도록 했었던 고민은 무엇인가.

▶ 서울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고, 아빠와 오빠는 군산에 살고

계시다. 정말 남남북녀란 말이 우리 가족에게는 딱 어울린다.

나 때문에 떨어져 사는 것이 미안하고, 그래서 어떻게하면 같이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좋아하는 작품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내게는

가족이 우선이다.

▷ 매니저가 차기작의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작품을 고를

때 시나리오를 직접 꼼꼼히 살펴보는 편인가. 다음 작품은 어떤 영화

인가.

▶ 물론이다. 관리를 받기는 하지만 연기하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

다. 다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시나리오

에 그대로 나와있는 건데 촬영에 들어가서 ‘이건 못해요’, ‘저건

못해요’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몇가지의 시나리오를 보고 있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아마

도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는 또 새로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할 뿐

이다.

【Profile】

이은주는 선경스마트 학생선발대회 모델로 뽑혀 KBS청소년 드라마 ‘

Start’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SBS 드라마 ‘카이스트’로 주목받

기 시작한 그녀는 그 후 박종원 감독의 ‘송어’, 홍상수 감독의 ‘

오! 수정’,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 등 스크린으로 영역

을 넓혀 평단과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곧 개봉하는 ‘연애

소설’외 11월 개봉예정인 공포영화 ‘하얀 방’도 촬영을 마친 상태

다.

생년월일은 음력으로 1980년 11월 16일. 168cm의 키에 혈액형은 A타

입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

<김상만 기자 mlolv@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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