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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이야기] ② 해방이후 최초 '종암아파트' 수세식 화장실이 집 안으로

입력 2009.05.25 10:19   수정 2009.05.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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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던 1957년 여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담장 옆 언덕에는 공사 차량과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물자가 부족했던 당시 이런 대규모 공사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높이 올라가는 건물과 거대한 단지가 형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찬탄을 쏟아냈다. 전후 폐허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이듬해 준공된 이 단지는 해방 이후 최초의 아파트로 기록된 '종암아파트'다. 산을 깎아 짓고, 들판에도 짓고, 있던 판잣집을 들어내고도 짓는 대한민국 도처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은 집을 추적해 보면 종암아파트가 그 시조 격이다.


50여년 전인 지난 19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 언덕에 우뚝 섰던 이 공동주택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의 아파트(논란은 있지만), 처음으로 '아파트먼트'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 우리나라 회사가 독자적인 기술로 처음 시공한 아파트, 그리고 최초로 수세식변기를 설치한 아파트다.

수세식 화장실이 집 안으로

지금 생각하면 약간 우습지만 건물을 다 짓고 기념하는 낙성식에서 이승만대통령은 이런 요지의 축사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이 종암아파트에 있습니다. 정말 현대적인 아파트입니다." 당시엔 한 건물에 여럿이 모여 사는 주택에서 집 밖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아침이면 샛노란 얼굴로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 줄 앞에서 조바심을 치던 아이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뭐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원초적인 싸움도 났다.



하지만 종암아파트에서는 수세식 변기를 집 안으로 들여왔다. 종암아파트의 설계 도면을 보면, 현관으로 들어오자마자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수세'하는 좌변기가 놓이고 욕조는 없었다.


이로써 한국인들은 집 안에 있는 쾌적한 공간에서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문명의 진보'를 볼 수 있었다. 중앙산업은 7260여㎡ 대지 위에 3개 동을 지었고 152가구가 입주했다. 독일에서 설계했다는 평면만 보면 '지금 아파트랑 별 차이 없잖아'라는 느낌이지만 당시는 정치인이며 예술인, 교수와 같은 상류층이 입주한 것으로 유명한 '고급' 주택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발 벗는 공간이 있고, 바로 옆은 화장실이다. 방2개, 거실, 주방, 창고가 있고, 발코니까지 갖추고 있었다. 주방에는 인조석 싱크대 시설이 설치됐다. 요즘에는 주방과 거실을 연결하는 설계가 주류를 이루지만 종암아파트는 현관에서 들어서면 작은 복도가 있어 주방과 거실이 분리됐다. 거실은 거실대로, 주방은 주방대로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됐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집안에서도 바닥 높낮이가 달랐다는 점이다. 뜨끈한 온돌바닥을 깔았던 침실은 현관과 주방, 거실보다 한 단이 높았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효형출판, 2009)에 따르면 '단이 높은 안방에서 발코니를 통해 내려다 보는 공간감은 옛날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던' 시각과 닮았다고 풀이한다. 전통의 좌식구조와 서양식 입식구조가 사이좋게 공존한 셈이다.



밖에서 보면 종암아파트는 그야말로 지금의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북동 산자락 언덕에 지은 3개 동 4~5층 높이 건물은 콘크리트 자재로 건립했다. 당시 건물은 모두 단층이라 동네에 그만큼 높은 건물이 없었다. 요즘 구릉지 재개발을 해서 판잣집을 허물고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처럼 고저차를 이용한 설계가 돋보인다. 산을 깎아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지형을 그대로 살려 아파트 모양은 위가 높고 아래가 낮은 계단식이 됐다. 아파트 건물 뒤쪽 출입구를 통해 계단을 오르면 긴 복도를 따라 단위평면이 늘어섰다. 지붕은 아파트 옥상처럼 평평한 슬래브 지붕이었다. 아파트 난간과 모두 같은 모양의 창문 틀도 깔끔했다.


아파트 동의 배치는 우리 민족이 선호하는 남향으로 뒤에는 산, 앞에는 개천이 흐르는 배산임수형이었다.

서울시가 갖고 있던 땅에 1957년 시공해서 1년 만에 우뚝 올린 종암아파트는 미국자본을 지원받았고 독일회사가 설계했지만 시공은 우리나라 건설사인 중앙산업이 맡았다. 그래서인지 묘한 한국식 정취를 남긴다. 엉덩이를 떼지 못하게 하는 따뜻한 온돌이, 집집마다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는 발코니가, 빛 잘 드는 남향으로 개천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정겹다. 1993년 서른 여섯해를 넘기고 철거됐지만 아직도 '고려대학교 옆에 있었던 낡은 아파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자리에는 1995년 종암선경아파트가 들어섰다.

[장박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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