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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니 골프가 더 잘되네

입력 2020.08.0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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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오딧세이-54] "골프가 다시 잘되네. 정말 재미난다."

숏게임 달인 필 미컬슨(50·미국)이 월드 골프챔피언십(WGC)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올해로 만 50세인 그는 저스틴 토머스(27), 브룩스 켑카(30) 등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한 끝에 지난 3일 합계 10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PGA 시니어 투어인 챔피언스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그는 한동안 PGA 무대에서 선수 생활을 유지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시니어 투어에 합류한 최경주, 짐 퓨릭 등 동갑내기 스타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퍼팅도 드라이버샷도 모두 잘된다. 다시 골프가 잘되고 있어 결과도 천천히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

드라이버 티샷으로 평균 300야드를 날린 미컬슨은 그린 적중률도 70%에 달해 전성기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가 현역 무대에 머무를 의욕을 보인 것도 비거리와 샷감이 무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이저 대회 5승을 포함해 통산 44승을 기록한 그는 US오픈을 거머쥐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한다. 마스터스, 디오픈, PGA챔피언십, US오픈 등 메이저 대회를 생애 모두 한 차례씩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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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아마추어 골퍼들 실력은 어떨까. 같은 조건이라면 젊은 시절에 비해 정신적·육체적인 능력이 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에다 연습량이 더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직장 다닐 때보다 골프가 훨씬 재미나고 평균 스코어도 더 잘 나와. 티샷 비거리도 더 늘어 새로운 골프의 맛을 느끼는 것 같아."

얼마 전 60대 초반의 퇴직 선배와 골프를 치면서 나눈 얘기다. 종종 동반 라운드를 하면서 지켜보면 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다.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여유, 다부진 체격, 그리고 적당한 수입을 바탕으로 한 그의 골프 여건은 최상이다. 2세들을 모두 출가시켜 부양 의무에서도 해방된 그는 골프 애호가로 다시 태어났다.


싱글 타수를 기록하는 그의 티샷 비거리도 남자 아마추어 골퍼로는 장타급이다. 얼마 전 2박3일 일정의 전남 강진 골프투어에서 그의 드라이버와 우드 샷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급기야 18년 전 홀인원한 수도권 골프장의 같은 홀에서 다시 홀인원하는 진기록을 세웠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2002년과 2020년, 같은 7월, 같은 홀에서 홀인원 시간여행을 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날 기를 받겠다며 나도 악수를 세 번이나 했다. 퇴직하면 골프 실력이 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노후 준비를 어느 정도 갖춘 퇴직자들의 골프 여건이 양호하기 때문이죠. 정신적 여유가 있고 충분한 연습에다 무엇보다 라운드 횟수가 많죠."

김태영 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의 분석이다. 퇴직자들은 대부분 주중 골프를 한다. 그린피가 주말 대비 50~60%에 불과한 데다 교통 적체를 피할 수 있다. 수도권 외곽 대중골프장 그린피는 10만~13만원이다.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은 시간에 예약하면 가격은 더 떨어진다.


퇴직자들은 여유가 많아 이런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한다.

약간 먼 거리라도 카풀까지 하면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다. 요즘 장마로 주춤하지만 선배는 일주일에 5번 라운드한 적도 있다. 일주일에 평균 2번 정도 필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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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외국 골프투어가 차단되면서 국내 골프장이 초호황을 누린다. 퇴직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평일 시간대 예약도 점점 어려워진다.

월요일 오전은 그동안 가장 한가한 시간대로 비용도 저렴했다. 이 시간대는 여성 골퍼들 주무대였는데 서서히 퇴직 골퍼들이 부킹 경쟁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한가했던 월요일 오후 늦은 시간대도 여유롭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주중 골프 부킹난을 불러온 것이다. 목요일 부킹도 어렵다.

목요일 시간대는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오전 시간을 많이 활용하는데, 온라인 부킹이 시작되면 이 시간대가 주중에 가장 빨리 소진된다. 전문직이나 기업체 오너 가운데 일주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을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부류도 있다.


금요일은 자영업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오전에 일주일 업무를 마무리하고 오후에 골프를 치면서 곧장 휴일 모드로 들어간다.

이에 따라 요즘엔 화요일 오전과 오후 시간대에 부킹 여유가 있다. 약간 어정쩡한 화요일이 골든 부킹 데이로 부상했다.

부킹과 동반자 구하기도 예전과 달라졌다. 하도 부킹하기 어려워 일단 인터넷 부킹이 시작되면 시간부터 잡아놓고 동반자를 구하는 식이다.

보통 3주 전에 인터넷 부킹이 열리는데, 금방 매진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부킹해놓고 멤버를 구해 나간다.

퇴직자들 비용 계산은 철저히 N분의 1을 원칙으로 한다. 그린피와 식음료비는 공동으로 나누고 캐디피도 내기에 걸린 돈으로 적당하게 분배해서 계산한다.

호사가들을 제외하곤 큰돈의 내기를 지양하며 동반자들에게 부담을주거나 부담을 떠안는 상황도 꺼린다.


간혹 식사를 사는 등 베풀 일이 있으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동반자를 구할 때도 비용을 비롯해 기본적인 사항을 미리 공지해 예측 가능한 여건에서 골프를 한다. 불필요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직장 다닐 때는 법인 명의로 골프를 하거나 초청을 받아 주말에 회원제 골프장을 찾았지만 요즘은 주중 대중골프장을 많이 이용하죠. 무엇보다 내 돈 내고 골프를 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하고 떳떳해서 좋죠."

주중 골퍼도 몇 가지 부류가 있다. 크게 분류하면 △완전 퇴직자 △비상근 퇴직자 △자영업자 △기업체 임원 혹은 영업직 등이다.

월례회를 구성할 때 부류별로 처지가 달라 혼선이 생긴다. 퇴직자나 절반 퇴직자는 가격이 저렴하고 교통이 원활한 주중, 전문직이나 현역 종사자는 휴일을 원한다.

필자의 고교 동창 월례회도 용인 소재 골프장에서 토요일에 열리는데 주중으로 옮기는 것을 협의 중이다. 각자 사정이 달라 아직 결론을 못 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골프장 연간 이용 횟수는 나이가 들수록 늘어났다. 30대는 5.1회에 불과하지만 40대는 7.4회, 50대는 12회, 60대 이상은 16.1회, 65세 이상은 17.6회에 달했다.

골프를 치는 비율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3배 정도 높다. 남성은 10.4%, 여성은 3.3%로 나타났는데 남자는 100명 가운데 10명, 여성은 3명 꼴로 골프를 치는 셈이다.

"나에겐 세 가지 골프 로망이 있다. 우선 에이지 슈트(Age shoot)를 하고 아내를 골프에 입문시키고 훗날 손자 손녀와 골프를 치고 싶다."

분기별 골프 동반자가 저녁 자리에서 한 말이다. 에이지 슈트란 한 라운드를 본인 나이나 그 이하 타수로 끝내는 것을 말한다. 보통 60대엔 60대 타수, 70대엔 70대 타수, 80대엔 80대 타수를 기록하는 것도 에이지 슈트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 PGA 공식 투어에서 에이지 슈트를 처음 기록한 사람은 샘 스니드로 1979년 퀴드시티오픈 마지막 라운드를 66타로 마무리했는데 당시 67세였다.

퇴직 후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골프가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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