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14위 한진그룹 뒤흔드는 KCGI는 누구?

장주영 기자
입력 2020/11/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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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투자 후 한진칼 지분 변화 / mk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정됐다. 양사의 결합은 한진그룹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아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산업은행이 제3자 배상 유상증자로 한진칼(대한항공의 모회사)에 8,000억 원을 투입하고, 한진칼은 이에 대해 대한항공 주식 3,000억 원을 교환사채로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산업은행은 한진칼 지분율 10.66%로 주요 주주로 급부상한다.

역대급 빅딜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처음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한진칼의 2대 주주 KCGI가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에 대해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것. KCGI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연대해 ‘3자 주주 연합’을 구성한 상태로, 현재 우호 지분율 46.71%를 보유 중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의 우호 지분율 41.4%보다 높은 수치다.

그러나 이번 인수로 산업은행이 주요 주주로 부상하게 될 경우, 주주 연합의 지분율은 약 42%로 줄어들게 된다. 이에 KCGI는 “조원태 한진그룹과 KCGI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3자 유상증자는 불법이다.

”며 산업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지분을 확보해 조원태 회장의 우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바라본 셈이다. 해당 심사는 오는 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만약 법원이 KCGI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산업은행의 투자 없이는 아시아나항공을 품을 총알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제3자 유상증자가 실패할 경우, 차선의 방안을 마련해 양대 항공사 경영정상화를 계속 추진할 것이다.

”며 양사의 결합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재계 순위 14위 한진그룹을 눈 하나 깜짝 없이 뒤흔드는 모습에 KCGI를 향한 시선도 뜨겁다. 지난 2018년 출범한 이 사모펀드는 어떻게 한진그룹의 포식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걸까. 일명 ‘강성모 펀드’라 불리는 KCGI의 속내를 한 번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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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강성부 KCGI 대표
‘기업 지배 구조 전문가’ 강성부 대표가 주축

KCGI는 강성부 대표를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이다.

강 대표는 대우증권, 동양증권,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를 거친 ‘기업 지배 구조 전문가’다. 신한금융투자 리서치 센터 근무하던 시절엔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라는 보고서를 펼쳐내며 업계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그가 사모펀드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지난 2015년부터다. 당시 LK 파트너스 대표로 지내던강 대표는 요진건설과 현대시멘트 등의 투자에 성공했다.


이후 2018년 LK 파트너스로부터 독립해 지금의 KCGI를 세웠다.

여기서 KCGI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줄임말을 뜻한다.

KCGI는 출범 개월 만에 블라인드 펀드 방식으로 1,400억 원의 투자금을 얻어냈다.

블라인드 펀드는 사전 투자처를 정하지 않고 투자금을 먼저 받는 방식으로, 자본력이 튼튼한 기관 투자자가 펀드에 동참해야 운영이 수월하다. 그러나 KCGI처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기업에 투자할 경우, 사회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로 인해 기관 투자자는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강성부 대표의 실력을 믿는 개인 투자자들이 KCGI에 대거 몰려들었다. 투자금 1,400억 원의 대부분은 과거 강 대표 덕에 수익을 얻었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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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GI가 한진그룹에 공개적으로 요구한 조건 / mk
이 자금은 곧 한진그룹의 지분을 사들이는 토대가 됐다. KCGI는 부실 징후가 보이거나 지배 구조가 취약한 기업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해 수익률을 올리는 ‘행동주의 펀드’다.

강성부 대표는 한진그룹을 그 행동을 취할 타깃으로 삼았다. 투자금이 쌓은 지 한 달 후인 2018년 11월 5일, 우선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 9%를 사들였다.

그렇게 단숨에 한진칼 2대 주주로 올라선 후, 12월 7일 지분 1.81%를 추가 매입하며 지분율 10%를 넘겼다.

기업 경영에 참여하기 위한 지분 매입 최저 기준을 충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진그룹의 계열사 한진의 지분 8.03%도 품에 안으며 한진그룹 경영권 행사에 한 발 더 다가섰다. 2019년엔 한진 보유 지분율을 10.7%로 높였다.

뒤이은 2019년 1월 21일, KCGI는 한진그룹에 지배 구조 개선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경영 참여를 본격화했다. 공개 제안은 크게 지배 구조 개선 및 책임 경영 체제 확립·기업가치 제고·고객 만족도 개선 및 사회적 신뢰 회복 등 세 가지 조건으로 구성됐다.

한진그룹은 당장 공식 반응은 내놓지 않았지만, 2월 13일 대외적으로 ‘중장기 비전 및 경영발전 방안’을 공개하며 미래 성장 전략과 지배 구조 개선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KCGI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다.




갑질 논란으로 여론 악화된 ‘한진그룹’
행동주의 펀드의 완벽한 먹잇감

그렇다면 왜 KCGI는 한진그룹을 작업 대상으로 고른 걸까. 사실 한진그룹은 지배그룹을 고쳐야 할 만큼 복잡한 기업이 아니다.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는 한진칼, 대한항공과 한진 자회사, 그리고 손자 회사 순으로 비교적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다. KCGI는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1위 항공사를 보유한 비중 있는 그룹이지만, 1,000억 원대의 자원만 있다면 주요 주주로 등극하는 것이 가능하다.

KCGI는 투자자들로부터 얻은 자금으로 한진칼과 손자 회사를 대거 거느린 한진의 지분을 사들임으로써,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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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두 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좌)과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우)의 갑질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했다. / yna
게다가 한진그룹은 지난 몇 년간 갑질 논란에 시달려왔다.

실제로 KCGI가 한진그룹 대주주에게 제안한 지배 구조 개선 내용을 살펴보면, ‘대주주 일가의 각종 갑질 행태와 횡령·배임’이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오너 일가의 도덕성 문제가 한진그룹이 저평가 받는 데 일조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포문을 연 행동주의 펀드의 첫 타자로서, 한진그룹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오너가를 향한 여론이 극도로 부정적인 기업과 대결 구도를 띨 경우, 그 반대편에 선 기업에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어서다.

특히 한국처럼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되지 않은 곳에서는 지배 구조가 불안정한 회사를 뒤흔들어 단기 차익을 노리는 방식을 택하면 악덕 펀드라는 오명을 쓸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KCGI가 투자의 당위성을 얻고자 땅콩 회항으로 대중의 공분을 산 한진그룹을 첫 타자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KCGI는 “한진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글로벌 항공·물류 전문그룹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며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의 역량을 높이 샀다. 그러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와 방만한 경영, 오너 일가의 이해관계에 따른 의사결정 등이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라 덧붙이며, 행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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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이뤄진 한진칼 정기 주주종회 후 한진칼 지분 변화 / yna
이렇게 KCGI는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 개선을 주장하며 한진칼과 한진의 지분을 꾸준히 매집해 왔다.

그렇게 단숨에 한진칼과 한진의 2대 주주로 등극하며, 한진그룹의 ‘시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올해 KCGI가 방향을 틀었다. 지난 3월, KCGI는 10.17%였던 한진 지분율을 5.01%로 줄였다.

한 달 후에도 한진 주식 23 만 4,923주를 장내매도함으로써, 지분율이 3.20%로 떨어졌다.

반면 한진칼 주식은 추가로 매수했다. 한진 지분율을 절반으로 줄였던 당시,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기존 42.13%에서 42.74%로 늘어났다.

4월에는 매각한 한진 지분에 주식담보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확보한 자금으로 또 한 번 한진칼 지분을 노릴 예정이다. 당초 KCGI는 3자 주주 연합과 함께 한진칼 지분 약 2%를 사들이는 방향을 검토했다.

그러나 아시아나 항공 인수라는 변수로 인해 전체 한진칼 지분을 5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KCGI는 한진그룹의 골칫덩어리인 듯 보이지만, KCGI 덕에 한진 칼의 지배 구조가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한진칼은 올해 ESG 평가에서 환경(E) B, 사회 책임(S) B, 지배 구조(G) A로 통합 등급 B+를 받았다. 사회 책임은 A에서 B로 한 단계 떨어졌으나, 지배 구조 부분이 C에서 A로 대폭 올랐다.

지배 구조는 한진칼이 2015년 이래 단 한 번도 C 등급을 벗어나지 못한 항목이다. 일반적으로 행동주의 펀드는 잘나가던 기업을 공격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KCGI는 지배 구조 개선 작업이 효과를 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한진그룹 입장에서 KCGI는 눈엣가시 그 자체다. 곧 추진될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서도 KCGI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한진그룹은 “한진칼이 KDB산업은행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것은 상법,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에 적시돼 있는 ‘경영상 목적 달성의 필요’를 바탕으로 한 적법한 절차”라며 반박을 가했다.

또한 이번 인수가 국내 항공산업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덧붙였다. 한진그룹이 국내 최대 항공사를 보유한 기업을 앞둔 지금, KCGI라는 강력한 상대를 어떻게 이겨낼지 관심이 뜨겁다.

[장주영 기자 semiangel@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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