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체제 21주년, 이마트는 어떻게 유통업계 공룡이 됐나

장주영 기자
입력 2020/11/3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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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창동 1호점 / 신세계그룹
국내 대형마트의 역사는 ‘이마트’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는 할인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분기별로 백화점에서 정기세일을 진행하긴 했으나, 지금의 대형마트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신세계 그룹은 그런 할인점 불모지에 뛰어들었다. 1993년 11월 서울 창동에 국내 최초의 대형할인매장 ‘이마트’ 1호점을 개점했다.

이마트는 상시 저가를 내세우며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매장 인테리어는 최소화하고, 대량 납품으로 가격을 낮춘 덕에 저가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모습이었지만 ‘이마트에 가면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는 입소문이 퍼지며 성장을 견인했다. 이듬해 이마트는 2호점을 연 뒤, 매년 점포 수를 빠르게 늘려갔다.




커져가는 이마트의 위상에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견 슈퍼마켓 업체들도 하나둘 대형마트를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 세계 3대 할인점 까르푸, 월마트, 코스트코도 한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해외 대형마트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들으며 매출 하락세를 겼었다. 결국 2006년 까르푸는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월마트코리아 역시 짧았던 해외 진출의 종지부를 찍고 만다.

대형마트 춘추전국시대 속에서도 이마트의 위상은 견고했다. 토종 브랜드라는 점을 이용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최저가 보상제를 도입하여 서비스 개선에도 신경 썼다.

월마트가 떠났을 때는 이들이 남긴 16개의 점포를 인수하며 국내 점포 수를 95개로 늘렸다. 업계 후발주자인 삼성데스코 홈플러스(42개)와 롯데마트(45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였다. 양과 질 모두를 챙긴 이마트는 업계 1위 자리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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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개점 8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전하는 정용진 부회장의 모습 /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가 한창 ‘잘’나가던 때 신세계 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2009년 12월 총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신세계백화점 80주년 기념식에서 “고객이 행복한 회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결정 기준, 시스템 등 모든 요소가 고객이라는 가치를 향해 재정비돼야 한다.

”며, 이를 통해 신세계와 이마트를 초일류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당시 취임 1주년이었던 ‘새내기 경영자’가 당찬 포부를 드러낸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세월 속에서도 이마트는 여전히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영원할 줄 알았던 이마트의 입지는 그간 수차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공 행진했던 매출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지난해에는 사상 첫 영업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던 이마트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떤 변화를 겪은 걸까. 정용진 표 이마트의 변화무쌍했던 지난날을 한 번 돌아봤다.

‘기본’은 하는 이마트,
경쟁 업체 몰아쳐도 업계 1위 굳건

2009년 국내 대형마트 업계는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정용진 부회장은 ‘신 가격 정책’을 돌파구로 삼았다.

이마트는 2010년부터 핵심 생필품을 상시 할인가로 판매했다. 할인 가격은 최대 30%에 달했다. 업계 2, 3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이마트에 대항해 라면, 삼겹살과 같은 제품 가격을 10원씩 내렸다.

이로 인해 하루에 몇 번씩이나 최저가 업체가 뒤바뀌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경쟁이 과열되자 이마트의 가격 인하 정책에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신 가격 정책은 기존의 단기적인 가격 행사가 아닌, Low Cost Operation을 통해 품질 좋은 상품을 항상 싸게 팔고자 하는 것이다.

”라며, 신가격 정책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을 알렸다. 같은 해 8월에는 지름 45cm의 대형 피자를 15,000원에 판매하면서 할인점 본연의 경쟁력을 확보해나갔다. 공격적인 가격 정책에 1월~10월 이마트 이용객 수는 전년 대비 9.1%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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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오픈한 이마트 트레이더스 ‘서울 1호점’ (좌) / 이마트
이마트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상반기 이마트몰을 전격 오픈하며 온라인 시장 업계 1위를 노렸다.

초기 사업이라 마케팅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가긴 했으나,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할 수 있었다. 업계에서도 ‘초석을 잘 다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11월에는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 1호점을 오픈했다.

트레이더스는 코스트코와 달리 회원 가입 없이도 매장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 점이 소비자를 유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회원비를 감당하기 부담스러웠던 소비자들이 트레이더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연이어 선보인 전략들이 모두 홈런을 치며 이마트 매출도 전년 대비 5.3% 성장했다.

2011년 신세계그룹은 기존 하나였던 백화점 부문과 이마트 부문을 두 개로 나눴다. 사업별 전문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조치였다.

기업 분할로 이마트는 바로 직전 성과를 낸 이마트몰과 트레이더스 등의 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년 만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유통법과 상생법의 시행으로 계획했던 신규 출점에 차질이 생긴 것. 쿠팡을 비롯한 소셜 커머스의 급성장도 이마트의 매출 부진에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2012년 10조 9,390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2013년 10조 7,800억 원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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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랜드는 출시 3년 만에 1,000개 품목을 아우르는 메가 브랜드로 성장했다.

/ 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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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의 일렉트로마트 / 이마트
다행히 이마트는 2015년 매출액 11조 6,400억 원을 기록하며 위상을 회복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야심작이 제대로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4월 이마트는 PB 브랜드 ‘노브랜드’를 선보였다. 정 부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노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라는 슬로건으로, 총 9개의 상품을 먼저 출시했다.

낮은 가격에도 확실한 품질을 갖춘 상품에 노브랜드는 빠르게 이마트 대표 PB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포장 디자인부터 이름까지 없는 제품들이었지만, 비움의 미학이 브랜딩의 성공을 불어왔다. 소비자의 열렬한 환호에 노브랜드 상품 수는 1년 만에 800개로 뛰었다.

뒤이어 6월에는 정 부회장이 직접 추진한 통합형 가전매장 ‘일렉트로마트’도 출범시켰다.

기존 가전 중심 매장과 달리, 일렉트로마트는 패션·뷰티 카테고리까지 추가해 남성 관련 상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졌다. 이로 인해 남성들의 색다른 놀이터로 유명해지면서, 일렉트로마트 1호점 킨텍스점은 오픈 10개월 만에 연간 매출 목표 300억 원을 돌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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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의 ‘가격의 끝’ 전략으로 온라인 매출액은 전년 대비 50%가량 올랐다. / 이마트
새로운 대항마의 등장에
‘최저가’로 맞수 둔 이마트

정용진 부회장이 닦아놓은 초석은 이듬해가 되어서야 빛을 발했다.

2016년 대형마트는 이커머스 업체의 급성장에 발목을 잡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53조 8,887억 원으로 나타났다. 2010년 25조 2,509억 원보다 무려 두 배나 커진 셈이다.




반면 대형마트 판매액은 완전히 반대되는 양상을 띠었다. 업태별 판매액 지수를 살펴보면 2010년 판매액을 100으로 했을 때, 2012년 112.6, 2013년 111.9로 하락하다 2015년엔 108.3으로 추락했다.

특히 쿠팡의 기세가 무서웠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등에 업고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라섰다. 티몬, 위메프 등도 배송 경쟁에 합류하면서 그 위력이 오프라인 매장에도 번져나갔다. 유통 공룡으로 불리던 이마트 또한 쿠팡의 아성에 다소 놀란 듯한 분위기였다.

이에 이마트는 가격 경쟁으로 응수했다. 소셜 커머스 업체의 주요 품목인 기저귀를 상시 최저가로 판매하는 정책을 펼쳤다. 대형마트 경쟁사와는 최대 35%, 온라인 업체보다는 최대 15%가량 낮은 가격이었다.

이후 분유, 여성용품 등의 생필품으로 품목을 추가해가며 최저가 경쟁에 불을 지폈다. 최저가 마케팅의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기저귀는 전년 대비 4배 이상, 분유와 여성용품은 각각 176.9%, 220.6%이나 매출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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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의 중국 점포는 실적 부진을 벗어나지 못해, 해마다 하나둘 폐점을 진행해야 했다. / 이마트
하반기에는 정 부회장의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 실적 개선에 보탬이 됐다.

노브랜드는 3분기 매출 1,430억 원으로 연간 목표치 1,000억 원을 넘어섰고, 트레이더스는 출범 6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일렉트로마트 역시 매장 방문객 수를 10% 이상 늘려 이마트의 효자 사업으로 떠올랐다.

덕분에 이마트는 2016년 총매출 13조 5,642억 원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론 미래가 늘 장밋빛인 건 아니었다. 이번엔 해외 진출이 문제가 됐다. 이마트는 1997년 일찍이 중국 상하이에 이마트 해외 1호점을 열었다.

한때 매장 수를 30개까지 늘렸으나, 중국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이익을 낸 적이 없었다. 사드 보복 사태로 사업 환경이 악화됐다는 점도 실적 부진에 영향을 줬다. 결국 2017년 이마트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중국 진출 20년 만에 사업을 모두 철수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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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부회장은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부츠와 삐에로쇼핑을 선보였다. / chosun
해외에서 겪은 아픔을 뒤로하고, 이마트는 국내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에는 영국 H&B 스토어 부츠를 국내에 들여오고, 2018년에는 잡화점 삐에로쇼핑을 내놓았다. 이 중 삐에로쇼핑은 일본의 돈키호테를 그대로 벤치마킹한 만물 잡화점으로, 정 부회장이 “1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고 말할 만큼 애착이 강한 사업이다.

실제로 삐에로쇼핑 매장 곳곳에는 그 노력이 묻어 있었다. 보물 찾기를 연상케 하는 압축 진열 방식으로 쇼핑의 즐거움을 높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다.

그간 정 부회장이 강조해왔던 “오프라인 매장의 한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머무는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도전이 통했던 걸까. 이마트의 2018년 매출은 16조 4,126억 원으로 10.8% 증가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의 강세에 영업 이익은 전년 대비 20.9% 감소한 4,628억 원을 기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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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의 부채 비율은 갈수록 증가하는 반면,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낮아진 수치를 보여줬다. / mk
정용진 야심작 줄줄이 폐점···
외부 인사 영입해 돌파구 마련

위기는 2019년에도 계속됐다.

이마트의 끊임없는 도전에도 대형마트 업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마트는 다시 한번 최저가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유통 시장과 소비자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할인점의 본질을 상기하겠다는 이야기다.

그 주문에 따라 이마트는 7월 ‘에브리데이 국민 가격’을 실시했다. 반짝 할인이 아닌 365일 내내 초저가를 유지하는 정책이다. 이를 가능케 하고자 유통 구조를 바꾸는 데도 힘을 썼다.

대량 매입, 실속형 PB 제품 제작, 배송 거리 단축 등의 방법으로 초저가 정책을 실현해냈다. 동급 상품보다 3~60%가량 저렴한 제품에 소비자도 몰려들어 8월 매출 1조 3,489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할인점이 기세를 회복하자, 이번엔 전문점 부문이 말썽을 부렸다. 정용진 부회장의 야심작 삐에로 쇼핑이 1년 6개월 만에 폐점하게 된 것. 업계의 관심이 쏠렸던 삐에로쇼핑 명동점마저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게 됐다.

명동점은 오픈 초기 일평균 방문객이 1만 명에 달할 정도로 성행했던 지점이다. H&B스토어 부츠도 33개였던 점포가 15개로 대거 줄어들었다. 전문점 사업의 부진에 이마트는 2011년 법인 분리 이후 처음으로 299억 원의 적자(2019년 2분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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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정용진 부회장은 외부 인사를 영입해 이마트에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해 10월,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 출신 강희석이 이마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강희석 대표는 2009년부터 이마트 경영 컨설팅 자문을 맡으며 정 부회장과 인연을 맺어왔다. 이마트 창립 이래 외부 인사를 대표 인사 자리에 앉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용진의 남자’로 이마트의 핸들을 잡은 강희석 대표는 가장 먼저 체질 개선에 나섰다.

비효율 전문점을 정리해 재원을 마련하고, 기존 매장을 리뉴얼하는 데 투자한다는 계획이었다. 그 계획의 일부로 2020년 이마트는 H&B 사업과 삐에로 쇼핑을 완전히 정리하게 됐다. 이마트의 대표 전문점 중 하나였던 일렉트로마트는 주요 매장에 집중해 수익성을 강화했다.

상권이 중첩되는 매장은 없애 매장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대형마트에 불과했던 기존의 이미지를 넘어 전문 매장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다.

성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2020년 2분기 전문점 부문은 영업적자 69억 원으로, 지난해 192억 원이었던 영업적자보다 123억 원을 줄였다.

예상보다 바른 개선에 감명을 받은 듯,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0월 강희석 대표에게 SSG 닷컴 대표 자리까지 내어줬다. SSG 닷컴은 코로나 특수로 예상치 못한 매출 상승을 맛본 사업 부문이다.

정 부회장은 강 대표를 이마트와 SSG 닷컴 자리에 모두 앉혀, 온·오프라인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는 이마트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넘쳐난다.

유통 업계는 이미 포화 상태다. 오프라인 시장은 롯데마트·홈플러스와 계속 경쟁을 벌여야 하고, 온라인 시장은 쿠팡의 아성을 따라가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한계가 분명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를 새로운 돌파구로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마트가 어떻게 ‘유통 공룡’이라는 별명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수장 정용진 부회장의 결단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장주영 기자 semiangel@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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