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뷰

눈 뜨고 망할 수 없었죠, 공장 현장직에서 10억 벌어들인 반전 근황

장주영 기자
입력 2021/09/13 11:51
수정 2021/09/13 14:23

우연찮게 눈길이 간 제품이 있었나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한 제품이 있으셨나요?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펜 하나를 만들 때도 수많은 공정과 문서 작업을 거친 후에 만들어집니다.

이번 시리즈에선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관절은 소모품이라는 얘기가 있다. 평생 써야 할 신체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그만큼 관절은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뢰로 턱관절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의외로 신경을 안 쓴 체 방치해두는 경우를 접할 수 있다. 실제로 턱관절은 말할 때, 씹을 때 심지어 자고 있을 때까지 움직이는 관절이다.

가동되는 횟수를 세어보면 하루에도 수천 번에 이른다.

하지만 한번 불편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턱의 불편함이 일상에 너무나도 큰 제약을 준다는 것을. 심지어 턱관절은 안면 비대칭 등 외모 콤플렉스를 유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통, 어깨, 목 등에도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도 가르쳐 주는 것은 꾸준한 마사지가 필요하다는 게 전부였다.

정진구 대표는 이런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간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영하인이라는 운동 기구를 만들게 된다. 턱관절 개선을 위해 시장에 이미 수많은 제품이 있지만, 국내산 제품은 아직까지 없었다. 스스로를 발명가라고 소개하며 영 라인을 만든 정진구 대표를 만나 제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88232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 블루칼라의 꿈

“저는 학력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끝입니다. 옛날부터 책과도 거리가 멀었어요. 만화책도 체 두 장을 못 읽었으니까요. 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연하게도 봉제 공장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어요.” 그곳에서 정진구 대표는 일본, 독일어를 할 줄도 모르지만 외국인 기술자에게 하루 종일 매달려서 기계 사용법을 배웠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 봉제 기계가 없었어요. 더 자세히 알고 싶었죠. 제가 하루 종일 그곳에서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반복하면서 구조를 알아갔어요. 국내에 없는 기계다 보니, 사람들이 제가 분해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혼을 내기도 했었죠. 그런데 제가 기계를 다뤄야 하는 입장에서 구조도 모르고 다룰 수가 있겠냐 이 말이에요. 그 과정 덕에 기술은 확실하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직 분야와 갈등이  심해 어려운 점이 많았죠.”

882327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현장직에서 경험을 쌓은 정진구 대표
당시 어떤 갈등이 있었나요

“당시만 하더라도 화이트칼라 블루칼라의 구분이 심했습니다.

사무직 사람들이 엔지니어에게 핍박을 주는 일이 다분했습니다. 제가 엔지니어 쪽에서 과장급 직책을 맡고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문서에 받침을 틀리냐면서 면박을 줬습니다. 그때부터 이 분야에서 최고 기술자가 돼서 큰 회사에서 스카우트하게 하겠다고 첫 목표를 세웠어요. 최종적으로는 회사를 차려 블루칼라가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세 차례의 스카우트와 창업

“현대양행, 고려양행 등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차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78년까지 일을 하며 월급을 초기 월급을 15만 원에서 50만 원 선까지 받을 수 있었죠. 집값한 채를 선금으로 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아 기뻤습니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위해 78년도 12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블루칼라로 살아오며, 꿈 꿔왔던 미래를 위해선 첫 발부터 내디뎌야 했다.

정 대표가 잘 알고 있던 기계 설비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공장의 레이아웃을 잡아 설비를 컨설팅 해주는 방식으로 국내에 있는 여러 무역 회사가 찾아오게 만들었다.

882327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사업은 어땠나요?

“컨설팅을 해준 회사만 해도 세아상역, 태평양물산, 삼성물산 등 굵직한 기업이 줄을 이었습니다. 베트남, 과테말라, 도미니카, 미국 등에 공장을 세울 만큼 확장도 뻗어나갔죠. 그런데 너무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어요. 1999년도 11월 과테말라에서 쓰러졌습니다.

폐기종이라고 해서 천식의 기관지 확장이 복합적으로 찾아왔었죠. 100미터를 체 걷지를 못했어요. 이후 한국에서 3년간 치료를 받으며 그동안 운영해오던 회사가 엉망진창이 됐죠. 그래서 2002년도에 모두 정리하고 쉬고 있었습니다.



882327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해외로 발을 넓혀간 정진구 대표, 라틴 아메리카에서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 빈손으로 다시 시작해

정 대표는 그간 운영해오던 공장 설비를 접었다.

사업을 접고 병원을 오다니며 늘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늘 그렇듯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신이 앓고 있던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2002년부터 건강과 웰빙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처음엔 호흡기 관련 제품을 만들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자문을 구했고, 주치의였던 남순열 교수의 연구실을 끊임없이 찾아갔다. 그렇게 처음 만든 제품이 ‘코 마스크’다. 콧속에 삽입하는 필터를 통해 알레르기, 비염, 천식 환자에게 효과를 발휘하고, 더위에 취약한 산업현장 개인 보호구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식품 의약국에서도 1등급 승인을 받으며 신뢰성을 대폭 높이기도 했다. 이 제품을 통해 2008년 제네바 국제발명 신기술 대회에서 금상을 독일 발명품전 피츠버그 발명품전에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882327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1. 남순열 교수(왼쪽)와 정진구 대표(오른쪽). 사진2. 첫 제품 ‘코스크’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실용신안 20건, 상표등록 20건을 보유하게 됐다.

이후 호흡기에서 부위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턱관절이었다.

882327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2007년 발명품전에서 수상한 정진구 대표, 그 외에도 수많은 상을 거머쥐었다.



왜 하필 턱관절이었나요?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턱이 자주 빠졌어요. 식사를 하다가도 처음에는 괜찮다가도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함이 잦아졌어요. 병원에 방문해서 물어보니, 고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한 부위라고 하셨어요. 직접 턱 운동을 위한 제품을 구입해서 테스트를 거쳤어요. 턱 운동 제품은 대부분이 유럽에서 나와요. 그래서인지 제품 대부분이 동양인 사이즈에 안 맞고 사용법도 불편했죠. 우리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혼자서 진행하면 안 되기에 매번 전문가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했다 하더라도, 전문가의 인증 없이는 제품으로 내놓을 수가 없어요. 재질부터 고민이었죠. 경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생산했고, 위생과 안전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의료용 실리콘 소재를 택할 수 있었습니다. 입에 물어야 하는 제품인데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을 찾기까지 계속해서 금형을 파야 했습니다. 사람들 구강구조가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은 기능을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전문의의 인증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금형을 11번 정도 다시 팠습니다.



882327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정진구 대표가 개발한 영라인, 구강운동 기구
비용이 엄청났을 듯해요.

“금형을 한 번 제작하려고 하면 1,000만 원단위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소재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여러 테스트를 거치면서 의료계 실리콘을 선택했어요. 한 문제점을 발견할 때마다 새롭게 금형과 디자인을 바꾸다 보니, 총 3년이 지났어요. 결국에는 사람들이 써야 하는 물건이기에 개발비용은 마땅히 지불해야 할 비용과 시간이었습니다.

”품질 관리에 철저한 듯합니다.

“사출을 하면서 불량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자그마한 점이 찍혀있는 경우라든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그냥 빼버리는 스타일입니다. 직원들이 자금 문제로 반발이 있을 때가 있지만, 돈을 버는 건 나중 문제에요. 일단 제품이 인정을 받으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있어요. 소비자를 현혹하려고 들어서는 안되는 거죠. 단순히 장사를 하기 위해 제품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만든 제품이라 그런 마음이 더 컸습니다.

사출 과정에서 버린 제품만 하더라도 4,000~5,000개 정도 이를 겁니다.” 철저한 검수 덕분일까, 제조 과정에서 하나하나 짚고 넘기는 스타일 덕분에 현재는 불량률을 크게 낮추는데도 성공했다.

882327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끊임없이 현장에 방문하며, 본인이 개발하는 자세로 제품 검수를 이어간다.
◇ 엄격한 검수가 만든 결과

시술도 리프팅도 아닌 얼굴 근육 운동을 위한 기구다.

기존 제품은 사이즈에 맞춰 다른 제품을 사야 했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해한 소재와 크기로 사이즈에 대한 고민을 덜어냈다. 또한 따뜻한 물로 기구를 데워야 했던 제품들과는 달리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휴대용 케이스 또한 결합해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

효과 또한 뛰어나다. 잘 사용하지 않는 안면 근육을 자극하여 주름과 턱 선을 개선할 수 있고, 턱 근육 운동을 통해 관절을 개선할 수 있다.

평소 껌과 오징어 등 자주 씹는 음식물의 경우 한쪽 턱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영 라인은 앞니에 중심을 두고 양쪽 밸런스를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882327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영라인 실제 사용기, 사람들에게 많은 반응을 끌어냈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직까지도 개발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뛸 정도죠. 엔지니어, 개발자들이 대우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서 누가 운영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은퇴하더라도 회사에 남아 기술 고문으로 자리 잡아 계속해서 제품 개발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또한, 작은 연구실을 차려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왜냐면 제가 제품을 직접 만드는 일을 해오다 보니 스타일이 확고한 편이에요. 개발자에게 간섭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질 않아요. 알아서 자율적으로 만들게 하고, 1년에 한 개를 만들던 두 개를 만들던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 개발자들이 자유로워하는 연구소를 갖는 게 꿈입니다.



882327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발명가’ 정진구 대표
창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려요.

“젊은 분들에게 항상 얘기하는 게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다 날려도 후회하지 않을 각오가 돼있는지 물어봐요. 돈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았어도, 결국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사업을 할 때는 만들고자 하는 제품에 집중해야 해요.  개발자로서 어떤 제품을 만들고 론칭하는지가 중요한 거지, 돈을 벌어서 어떤 땅을 살까, 어느 주식에 투자할까를 고민하기엔 너무 많아요. 온전히 제품에만 집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주영 기자 semiangel@mkinternet.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