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하나에 200만 세균 목격한 발명왕 사장님의 1억 아이디어

장주영 기자
입력 2021/09/13 11:19
수정 2021/09/13 14:29

우연찮게 눈길이 간 제품이 있었나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한 제품이 있으셨나요?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펜 하나를 만들 때도 수많은 공정과 문서 작업을 거친 후에 만들어집니다.

이번 시리즈에선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운동, 글, 그림, 공부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조언을 구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바로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기초적인 동작이나 기술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뛰어난 실력을 가질 수 있다.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하든 기본에 충실한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최길윤 대표는 기본기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해 마땅한 컴퓨터 프로그램도 하나 없이 손으로 제품을 직접 재단해서 만들어갔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어느 날 우연히 특허 물건을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특허가 출원되는 과정을 체화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의 최길윤 대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아이디어 및 특허 출원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최 대표는 상상을 현실화해 특허를 낸 제품만 해도 40여 개가 넘는다. 그리고 수 많은 아이템 중 가장 확신에 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여러 번의 도전 끝에 늦은 나이에 시작한 창업이라고 말하지만, 열정만큼은 여느 20대 못지 않은 올커니의 최길윤 대표를 만났다.

88233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올커니 최길윤 대표
창업 이전엔 어떤 일을 했었나요?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테니스 라켓을 만드는 회사에 재직하며 QC(품질관리) 대회에 아이디어를 내며 동상을 수상했다.

“첫 회사에서10년을 재직하며 여러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아이디어가 떠올라 여러 제품을 만들었죠. 그 중 ‘핸들러’라고 탁구체에 셔틀콕을 치는 도구를 만들었는데, 인기가 많아서 계속 판매로 이어질 수 있었죠. 심지어 그땐 은행에 20번 정도 입금 되면 더 이상 처리가 안돼서 통장 정리를 해야했습니다.

 1시간마다 은행으로 가서 통장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매일 제품을 포장하느라 잠을 못 잤어요. 그 당시에는 정말 쉴 틈 없이 일했었죠.

882336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길윤 대표의 목포 공고 재학시절 (사진 1, 2) 첫 번째 직장 한일라켓에서 설계를 맡았던 최길윤 대표(사진 3)
“직장 생활을 15년 넘게 하다 보니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어요. 머릿속에는 자꾸 새로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계속 개발도 이어가고요. 제품만 보면 단점부터 보여서 개선하고 싶은 성향이 많았어요. 이제 근본적으로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도 안된 체 바로 ‘참길’이란 회사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했나요?

“2003년에 시작해서 3년 정도 운영했습니다.

 당시 현수막을 자동으로 게시해 주는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핸들을 돌려 작동하는 방식이었는데, 특허를 내고 판매에 들어갔죠. 그런데 주로 지자체에서 매입을 하는 제품이다 보니 예산이 결정되고 팔리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시장성이 너무 작았던 거죠.”

첫 시작은 B2G 아이템이었다.

 지자체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수요도 끊겨버리는 사업이었기에, 오랫동안 지속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창업 이전 회사에 재직하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중국에 공장을 설립했다.

 첫 사업을 접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시작한 두 번째 도전이었다.

882336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첫 번째 창업 당시 선보였던 현수막 게시대
중국에서도 사업을 하신 건가요?

“네, 2006년 돌쯤 중국 청도에 볼링공을 만드는 공장을 세웠습니다.

 기술을 조금 배워서 현지 노동자를 모아 10년 가까이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중국도 10년 전과 비슷하진 않더라고요.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결국은 자본이 부족하죠 실패하게 됐고 사업을 철수했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조업만 해오다 보니 사업을 운영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케팅을 배워야겠다 생각해 중국에서 대리점을 오픈했죠. 그때가 한국 가전제품이 잘 팔렸거든요. 허베이성과 산시성에서 총판을 맡으며 5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에 홈쇼핑도 쫓아다니고 백화점에 납품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중국에 있는 모든 도시를 다 가본 듯합니다.



882336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당시 중국에 설립했던 볼링공 공장
882336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중국 청도 교민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 사업 접고 다시 한국으로처음에는 좋았으나 매번 상승세만 탈 순 없었다.

 대리점 특성상 본사에서 마케팅 정책이 변하면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처음 목표였던 마케팅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배우고 나니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대리점을 접으며 창업에 다시 한번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최길윤 대표는 매번 아이템을 고민하며 준비했다. 최 대표는 어릴 적부터 일상생활에서부터 영감을 받아 아이템을 만든다고 전했다. 최대표가 내놓은 특허만 해도 40개가 넘는다.

 물론 현실화된 것은 몇 개 없지만 직장을 다니며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게 분명하다. 

최 대표는 실패 경험이 많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실패를 바탕으로 조금씩 개선을 거쳐왔고, 그에 맞는 공부를 쉬지 않았다.

 이제 진짜 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882336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최길윤 대표 앞으로 등록된 특허 목록
어느덧 세 번째 도전이 됐습니다.


 어떤 아이템이었나요?“당시 중국에서 생활하며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 불빛에다 칫솔을 한번 비춰봤어요. 그런데 안쪽이 다 보이더라고요. 여러 이물질이 끼여있기도 하고, 때가 껴있기도 했었죠.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다시 입에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부분이 세척이 가능할까 싶어 다른 칫솔로 막 비비면서 청소를 해보니 씻기더라고요.”

“이제까지 평범하게 쓰던 칫솔인데 의외로 소비자들이 이걸 모르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실제로 검색을 해보니까 칫솔 하나에 평균 200만 마리의 세균이 검출된다고 하더군요. 상황이 맞물렸어요. 제 브랜드에서 개발한 제품이 필요하기도 했고, 실질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발견했으니까요. 그리고 칫솔은 모든 사람들이 쓰는 소비제니까 시장도 크겠다고 본 거죠. 그동안 실패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개발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듯했어요.”

최 대표는 중국에서 운영하던 대리점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대리점 사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기에 돈이 충분치는 않았다. 그래서 가족이 생활하는 데는 부족함 없이 돈을 주고 사업을 위해서는 지원센터를 돌아다니며 재도약을 준비했다.

882336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최길윤 대표가 사업의 재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던 중소기업 성장 지원센터
자본금이 없어, 창업에 어려움이 많았을 듯 합니다.“경기도에 있는 광교 중소기업 지원센터가 있어요. 그곳에서 무료로 창업 공간을 마련해 줘요. 제품 개발을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도중에 특허 공모전 공고가 뜬 거예요. 그래서 우수 특허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때 당시 소비자들이 보고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었는데, 제 아이디어가 1등을 한 거죠. 그때 받았던 500만 원의 상금을 가지고 법인 자본금으로 깔고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최 대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경험만을 무기로 내세워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물로 법인 설립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법인이 세워지자 국가에 재창업 지원 비용을 받을 수 있었고, 중이 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자금을 조달 받았다.

 또한 국가에서 연구개발비용을 지원해 줘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었다.

882336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우수특허공모전에서 1위를 수상한 최길윤 대표, 아이템의 잠재성을 인정받는 순간이였다.

◇ 지금의 모습 갖추기까지 3년 걸려“제품이 많이 달라졌죠, 계속해서 실패하고 또 실패했어요. 아이디어가 좋아도 공모전 이후 칫솔을 청소할 수 있는 솔을 제공했어요. 그래서 많이 복잡했죠. 제품의 기능에 집중한다고 소비자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개발자로만 생각을 한 거예요. 그리고 세척에만 집중해서 본연의 기능인 솔에는 집중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불만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죠.”

“그렇게 해서 나온 제품이 지금 모습이에요. 세척솔을 다 치워버리고 수도꼭지에다 대고 바로 세척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솔 자체도 계속해서 개선을 해갔어요. 너무 부드럽지도 또 너무 강하지도 않은 솔의 두께를 찾아 배치했었죠.”

판매로는 이어지지 않았다고요?“생활용품은 대기업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 브랜드 파워가 작용해요. 생뚱맞은 알지도 않은 중소기업이 만들었다고 하면 신뢰도가 떨어지죠. 그래서 처음 마케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무료 샘플을 몇천 개 만들어 뿌렸어요. 소비자들한테 주려고 하는데도 돈이 들어서 힘든 점이 많았어요. 일일이 포장해 택배로 보낼 수가 없어서, 우편물 안에다가 하나씩 넣어 보내드렸죠. 그렇게 해서 전시장, 치과 등에서 배포했었죠. 그렇게 5000여 개를 뿌렸던 기억이 나네요.”

882336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이후 홈쇼핑에도 진출하며 여러 방면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실제 소비자 반응은 어땠나요?“재구매율이 높은 편이었어요. 50%에 가까웠고, 판매 금액을 본다면 출시하고 나서 일 년 만에 1억 원 정도 기록했네요. 판매 수량은 15만 개 정도였습니다.

 기존 칫솔을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칫솔에 이물질이 끼여 안 빼본 사람이 없더라고요. 안쪽이 다소 지저분한 이물질이 있어도 귀찮아서 쓰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저희가 솔 사이에 구멍을 뚫어서 통로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수도꼭지에 대고 물을 틀어놓기만 해도 칫솔에 걸린 이물질이 다 빠질 수 있어요.

그런데 정작 사람들이 쓰고 나서 만족하는 건 칫솔모였어요. 처음엔 구멍이 뚫려서 신기해서 샀는데 나중에 구멍 얘기는 안 하고 솔이 너무 좋아서 다시 찾게 된다고 말씀을 주셨어요. 처음 개발 당시엔 아이디어에만 집중했는데, 지금에 와서 기본기에 충실하게 되니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크라우드 펀딩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투자를 통해 자본금을 축적하고 기업을 키우고 싶습니다.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해야 할 단계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전동칫솔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현재 중국 시장에선 전동칫솔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큽니다.

 내후년쯤 코로나가 해결된다면 여건이 되는대로 전동 칫솔을 개발해 해외로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882336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대표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요?“저는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창업 생태계가 20년 전일 때보다 너무 좋아졌어요.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지만, 경쟁은 늘 있어왔어요. 최근에는 창업 지원도 폭넓게 해주고, 국가에서 창업 관련한 교육도 많이 진행해 주고 있어요. 이런 방법을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바로 뛰어들지 말고 1년, 2년간 공부하고 창업에 뛰어들어야 해요. 빨리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아이템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고 실행은 조금 시간을 가져도 괜찮아요. IT 분야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뛰어든다 해도 철저히 준비해서 뛰어든다면 먼저 한 사람은 도태되버리는 거죠. 창업은 시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얼마나 내가 충분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해요.” 

장주영 기자 semiangel@mkinternet.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