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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흔한 이 물건, 버려진 소파에서 초대박 창업 아이템 떠올렸죠

장주영 기자
입력 2021/09/29 10:29

우연찮게 눈길이 간 제품이 있었나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한 제품이 있으셨나요?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펜 하나를 만들 때도 수많은 공정과 문서 작업을 거친 후에 만들어집니다.

이번 시리즈에선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골 변두리에 있는 마을이라 마땅한 교육 한번 받아본 적 없었다. 서울로 올라와 가죽 가방 제조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영업사원으로 안 해본 업무가 없었고, 궂은일도 도맡아야 했다.

 영업 사원의 비애를 온몸으로 느껴가며 10년간 일을 이어왔다.


서울에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직장 생활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세경카이프의 김문익 대표 이야기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상경한 시골 청년은 어느새, 국내 운전자를 위해 다양한 분위기를 선사해 주는 업체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가죽 냄새 진하게 나는 공장에서, 삶의 고단함을 배웠고,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험에 나섰다.

 김 대표는 어떻게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오늘은 가진 것 하나 없이, 시대 변화에 끊임없이 주목하고 대응해왔던 김문익 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어엿한 중소기업 CEO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직접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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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진 것은 눈과 발뿐

김문익 대표는 특색 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무기가 있었다.

 바로 안목과 꾸준함이었다. 두 가지 기질을 무기로 30년간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템을 분석하고 새롭게 개발했다. 마땅한 기술 하나 없었던 그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더 많이 누리고 사는 것뿐이었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꾸준히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경험했던 교육의 기회 때문이었다. 자식에게만큼은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생겼고, 포기하지 못할 이유는 늘어만 갔기에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었다.

창업을 할 생각이 없으셨다고요?

학창 시절만 해도 창업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 때만 해도 돈이 많거나, 서울 사람들이 하는 게 창업이라고 생각했었죠. 당시 분위기를 봤을 때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가족을 만들고 공부만 잘 가르치면 잘 산 인생이라고 여기던 시대였으니까요.

직장 생활에 열심히 임해서 능률을 올리고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업사원으로만 가정을 생계를 이어가긴 어려웠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서울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선 창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김 대표가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하고 사업에 뛰어든지 얼마 체 지나지 않아 큰 시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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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려움이 찾아왔나요?

“ 그때 당시 돈으로 1억 정도 규모로 부도가 났습니다.


 당시 사업을 처음 운영하는 입장이라, 무지한 상태였었죠. 물건을 주고받을 때 현금을 통해 거래하는 게 아니라, 어음을 끊어 거래했습니다.

 마트에 납품을 할 때도 어음으로 거래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다른 업체에 물건을 납품했습니다. 그때 거래하던 업체가 크게 부도가 났어요. 살펴보니까 사채도 끌어 쓴 상태여서 공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도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7,000만 원 정도가 묶인 상태였는데,  IMF가 연이어 터지면서 부채가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보면 사업에 대한 이해 없이 대처를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이 찾아온 듯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어디서 기회를 찾았나요?

“빚을 갚기 위해선 대책이 필요했었죠. 어느 날 창고 앞을 지나가다 소파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투리 가죽을 보자마자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운도 좋았다. 당시만 해도, 승용차를 가지는 게 꿈만 같은 일이였다. 그러나 점점 시장에 많은 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장에 수요가 커지면서 대중적인 차도 빨강, 파랑 빛의 색이 다양한 승용차가 인기를 끌었다. “트렌드에 맞춰 색감이 있는 핸들 커버를 만들면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가죽을 재단하고, 염색 도포 작업을 한 후 매장에 가져갔더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있었습니다.”

반응도 좋았다. 핸들로 개성을 뽐낼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핸들 커버를 찾았다.

이때를 기점으로 김대표 앞으로 딸린 빚을 갚아갈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작은 창고에서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는 자투리 가죽에 관심을 가져 재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자동차 액세서리 분야에 대한 가능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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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업을 지속했나요?

“핸들커버와 베이비시트 등, 자동차와 관련된 액세서리를 제조했습니다. 외국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캐릭터를 바탕으로 디자인에 집중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바부와우’라는 캐릭터를 계약을 따오기 위해서, 대만까지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자동차 용품에 캐릭터를 접목하여 시장에 출시하게 됐습니다. 그때까지는 백화점 카센터에서 유통이 되던 상품이 시간이 흐르며 마트에도 입점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디자인을 중심으로 제품 개발을 이어갔습니다.”

◇ 시골 출신 사업가가 제시한 차별화

김 대표는 고민이 많아졌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미 한 번의 부도로 인해 크게 흔들렸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고민이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곧 차별화로 이어집니다. 그러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마련이었습니다.”

유행도 결국은 한순간이다.


 김 대표에게는 사업을 위해 새로운 ‘한 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저희가 생각하는 핸들커버는 다른 품목들 보다 조금은 특별한 상품입니다. 하지만 핸들커버라는 품목이 국내 출시가 되고 여러 해가 지나면서 디자인에만 치중된 뻔한 핸들커버들이 국내 시장에 분포되어 있었고, 저희 또한 비슷한 제품만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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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에 집중했나요?

“모든 제품에는 소재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옷이나 의자를 만들더라도 원단에 따라서 제품의 특성이 결정됩니다.

즉, 기능에 집중하기 시작한 거죠. 생각해 보면 자동차에서 핸들은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이런 핸들에 기능적인 차별화 없이 계속 디자인에만 치중할 순 없었습니다.

 

게다가 손에 땀이 많은 사람은 핸들을 계속해서 고쳐잡거나, 미끄러질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땀이 많은 편이라 이런 문제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마다 손이 축축해질 정도로 다한증이 심한 편입니다.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소재 탐색에 힘써

소재를 찾기 위해 해외 전시회, 콘퍼런스 등 빠지는 곳이 없었다.

“가죽 시장만 하더라도 일반인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큽니다. 광저우 시장을 가면 한 일주일을 돌아다녀도 시간이 부족할 정돕니다.” 그러나 포기할 김 대표가 아니었다. 예전부터 몸에 뱄던 근면 성실함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핸들커버는 우리 피부에 직접 닿으니까요. 적당히 하고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외를 전전긍긍하다 골프장갑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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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장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요?

“네, 골프 라운딩 중 사용하는 장갑이 그립력이 우수하다는 것에 착안해, 그립력과 내구성을 보안하고 촉감도 만족할 만한 원단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밀림 제로 핸들커버라는 상품을 출시하게 되었으며, 저희가 생각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으로만 차별화를 주던 핸들 커버에서 기능성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부드러움과 그립감을 동시에 잡은 셈이죠.”

소비자 반응은요?

“해당 제품에 대한 반응은 한 번만 만져본 분들은 없는 편이에요. 한번 경험하고 나면 계속 찾아주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호응을 많이 받았습니다.

 와디즈를 통해 3차까지 펀딩을 이어가기도 했고, 펀딩률 6,000%를 돌파했었죠. 평점은 4.5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량으로 따지면 월에 5,000개씩 나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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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성에 집중한 핸들커버

손에 땀이 많은 사람이라면 주행 중에 핸들을 고쳐잡는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기에, 손의 땀을 맘 놓고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핸들 그립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그렇게 ‘밀림제로 핸들커버’를 만들 수 있었다. 시중에 있는 일반 가죽과 비교했을 때, 건조력과 내구력, 그립감을 동시에 잡았다.

 인조가죽을 활용한 커버로 고무 커버와는 다르게 땀이 나더라도 쾌적한 그립감을 느낄 수 있다. 가죽이라고 해서 땀 냄새가 밸 우려도 줄였다. 오랜 기간 사용할 경우 세정용 물티슈로 닦아내면 냄새 없이 사용 가능하다.

 인조가죽이라는 장점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찾는 사람도 많아져, 세경카이프의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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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이어오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듯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에 들었습니다.

 제조 분야다 보니 직접 생산하고, 낮에는 납품 가고 밤에는 개발에 몰두하기도 하며 지내왔었죠. 새벽부터 일어나서 근처에 있는 가정집에 부업을 나눠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작에는 차질이 없어야 했습니다. 주말 없이 지낸 시간이 10년 넘게 이어진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기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함게 일하는 사람들이니 단 한 번도 월급이 안 밀리고 줄 수 있었다는 게 기쁨으로 남아 있습니다. 돈이 부족하더라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월급을 줬었죠. 아직 갈 길이 더 남았지만, 지금까지 잘 헤쳐온 듯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지금 회사에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회사 부지를 마련해놓고 지금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올 11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내년 6월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어쨌든 우리 직원들의 보금자리를 잘 마련해서 지금보다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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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을 위해 30년 업력을 바탕으로 조언을 준다면?
 
“모두 영역이 다르기 마련이지만, 제 분야 기준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세경카이프는 그런 의미에서 적응이 빠른 회사다. “2000년도 G마켓이 활성화됐습니다. 우리 업체에서 등록을 하고 물건을 판매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5~6개 정도밖에 나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년 정도 지나니까 50~60개씩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온라인 판매점에서 우리 물건을 가져다 팔았는데, 저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잘나가는 물건만 매입하길 바란 거죠. 비록 제조 업체지만 직접 인터넷 판매를 해야겠다고 느껴 빠른 전환을 통해 판매량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장주영 기자 semiangel@mkinternet.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