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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빠지긴 쉬워도 빠져나오긴 어렵다…뇌부터 망가뜨리는 마약

김윤진 기자
입력 2018/02/23 15:42
수정 2018/02/2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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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끝낼 땐 아니란다.' 과학자들은 마약 중독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애초에 약물에 손댄 1차적 책임은 본인에게 있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개인의 의지만으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 8일 배우 정석원이 '히로뽕'으로도 불리는 마약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을 투약한 혐의로 인천국제공항에서 긴급 체포됐다. 찰나의 호기심이 사랑하는 아내, 갓난아이, 배우로서의 경력을 순식간에 위험에 빠뜨렸고 대중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또 남경필 경기도지사 장남도 필로폰 투약 및 밀반입 혐의로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도대체 가족은 물론 친구, 직장, 건강 등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것을 위태롭게 만들면서까지 이들이 마약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로폰 등 각성제부터 헤로인 등 아편류, 흥분제인 코카인에 이르기까지 마약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정말 '출구'는 없는 건지 과학으로 풀어본다.

마약은 뇌 신경세포(뉴런) 사이의 공간인 시냅스 등 뇌 구조와 기능에 수백 가지 변화를 일으킨다. 한 번 변형되면 복원조차 되지 않는 뇌의 '가소성'은 중독자들을 다시 약을 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시달리게 한다.

2008년 미국 워싱턴대 의대 신경과학자 나이절 뱀퍼드 박사는 마약 중독자들이 왜 이렇게 필로폰을 애타게 갈구하는지 밝히기 위해 생쥐 두뇌 실험을 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약 2년에 해당하는 열흘간 생쥐에게 필로폰을 먹인 뒤 뇌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강한 전압이 컴퓨터 전자회로를 망가뜨리듯 마약은 생쥐 뇌 신경회로를 영구적으로 손상시켰다. 이후 생쥐는 '만성 우울증' 증상을 보였고 약을 끊어도 우울증이 그대로 남아 극심한 금단 증상을 호소했다. 놀랍게도 오로지 필로폰을 다시 줘야만 우울에서 벗어났다. 끝없는 악순환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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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 뇌를 망가뜨리는 원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작에는 쾌락 호르몬 '도파민'이 있다. 도파민이란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다.


마약을 집어 넣었을 때 속칭 '뿅 가는' 것도, 사랑에 빠졌을 때 짜릿한 흥분에 휩싸이는 것도 도파민 때문이다.

뇌 속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그 대상이 연인이든 게임·도박이든 특정 대상에 몰입하게 되고 흔들림 없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한다.

문제는 마약을 했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뇌의 피질에서 선조체로 도파민 등의 신경 정보가 전달되는 '쾌감 회로(보상 회로)'가 왜곡되기 시작한다. 또 기쁨을 느끼려면 도파민이 신경 세포에 있는 도파민 수용체와 결합해야 하는데 도파민 양이 과도해지면 이 수용체들이 결합을 하지 않고 숨어 버린다.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몸이 일부러 수용체 수를 줄이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수준의 쾌감을 위해 더 많은 도파민이 필요해지고 이로 인해 중독자들은 마약 투여량을 더 확대하게 되는 깊은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최화경 국립부곡병원 중독진단과장은 "일반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오는 도파민의 양을 50이라고 한다면 필로폰을 투여했을 때 나오는 양은 900으로 약 18배에 달한다"며 "이처럼 도파민이 너무 많이 생성돼 극단적인 쾌감을 겪게 되면 뇌가 일상의 소소한 자극에는 아무런 기분도 느낄 수 없고 반응이 무뎌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코카인은 300, 니코틴은 220 정도로 마약 종류별로 차이는 있지만 도파민이 늘어나는 것은 공통적이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는 "평소 느끼는 행복이 귓속말이라면 마약이 주는 쾌감은 귀에 확성기를 대고 소리 지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뇌가 이렇게 한 번 느낀 궁극의 쾌감을 기억에 저장한다는 것이다. 마약을 끊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지난해 9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 크리스토퍼 코완 교수팀은 '왜 코카인 중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지'를 연구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뉴런'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마약을 오랜 기간 끊었거나 금욕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마저도 다시 마약에 손을 대게 하는 원인을 '기억'에서 찾았다. 코카인을 처음 접할 당시 장소와 감정을 무의식에 저장해 뒀다가 그때와 비슷한 환경에 노출되거나 단서가 제공되면 다시 약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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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처음 마약을 경험했을 때 기억을 되살릴까. 그 비결은 '중독 유전자'에 있다. 연구에 따르면 코카인은 유전자를 변형시키지는 않지만 특정 유전자 발현을 촉진시켜 뇌가 중독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생쥐에게 코카인을 투여한 뒤 마약 최초 복용 당시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되는지 지켜봤다. 생쥐가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자동으로 코카인을 지급했고 동시에 램프에 불이 켜지고 소리가 울리도록 했다. 그랬더니 생쥐들은 연일 스위치를 누르는 등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램프 조명과 소리만으로도 뇌가 반응하면서 코카인을 찾았다. 이 같은 실험을 통해 뇌의 측좌핵에 있는 'NPAS4'란 이름의 유전자가 중독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NPAS4 유전자가 많이 발현된 쥐일수록 빛과 소리 등 코카인과 연결된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코완 교수는 "코카인뿐 아니라 술이나 아편 등에 중독될 때도 뇌가 비슷한 변화를 보이고 환경 단서를 기억 속에 저장한다"며 "다만 뇌에서 분비되는 'HDAC5'란 효소가 이 중독 유전자 활동을 방해해 중독을 늦추는데 이 같은 방어 효소를 잘 활용한다면 마약 중독의 혁신적인 치료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중독 치료법을 찾으려는 신경과학계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약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은 없다. 최 과장은 "아직까지 마약 중독을 직접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며 "우울, 불안, 통증 등 금단 증상을 완화하고 인지 심리 치료를 통해 재발을 방지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에서는 치료제 개발 외에 직접적으로 뇌 구조를 바꿔 치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충동, 절제 등을 조절하는 뇌의 신경세포를 빛으로 자극하면 마약 중독도 제어할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아직은 실험 단계지만 변형된 뇌를 자극해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것이다. NIDA 신경과학자 안토넬로 본치 박사는 코카인에 중독된 쥐의 경우, 뇌 전두엽 피질에서 회백질이 감소하고 절제에 관여하는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부위를 광유전학 기술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자극했더니, 중독증상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섬유와 유전공학으로 쥐의 뇌를 조작했고 기능을 잃었던 뇌 세포를 되살린 것이다. 본치 박사는 "뇌를 자극하자 생쥐가 거의 즉시 코카인 찾기를 중단했고 코카인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 영감을 받은 이탈리아 의사 루이지 칼림베르티는 자기장으로 뇌 신경회로를 건드리는 '경두개 자기자극(TMS)' 기술을 활용해 직접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실험을 했다.


뇌의 전자기파에 변화를 줘 다운된 컴퓨터를 재부팅하듯 손상된 신경전달 경로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코카인 중독자 16명을 모집해 실험한 결과 1개월간 TMS 뇌 자극 치료를 받은 16명 중 11명이 마약을 끊는 데 성공했다. 반면 약물 표준치료를 받은 경우, 13명 중 단 3명만 마약을 중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2016년 1월 유럽 신경정신약리학지에 발표됐고 NIDA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 더 큰 규모의 위약 대조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필로폰 중독 치료하는 길, 고추 매운맛서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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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아직까지 없다. 중독에 빠져들게 하는 뇌 과학이 복잡한 만큼 치료법을 찾는 일도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에서 필로폰 중독을 치료하고 재발 충동을 막을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내 눈길을 끈다. 지난달 17일 장춘곤 성균관대 약학과 교수 연구팀은 뇌에서 고추의 매운맛을 느끼는 캡사이신 수용체(TRPV1)를 억제하면 필로폰 중독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을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앞서 2014년 비슷한 원리로 모르핀 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발표한 데 이어 3년여 만에 새로운 마약 중독 치료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한 번 필로폰을 투약하면 쉽게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절정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과도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독을 막으려면 이렇게 대량 분비된 도파민이 뇌에서 제 기능을 못하도록 수용체를 억제하면 된다. 장 교수 연구팀은 도파민 수용체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물질인 캡사이신 수용체를 차단하는 방법으로도 도파민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캡사이신 수용체 억제제를 투여했더니 뇌의 한 영역인 측좌핵에서 도파민 결합이 억제되면서 필로폰이 주는 쾌감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자연히 필로폰을 다시 집어들게 만드는 열망도 식고, 강박은 잦아들었다.

장 교수는 "아직까지 임상을 완료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거나 시중에 나온 치료제는 없다"며 "이번 연구 역시 마약 중독 재발을 막을 하나의 원리를 제시한 데 불과하지만,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표적인 만큼 향후 혁신 신약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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