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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이효석의 게임인] 가디언테일즈 채팅에선 왜 '임신'이 금지어였을까

입력 2020.08.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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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국남성' 거짓 정보에 카카오게임즈 애먼 '페미 사냥' 당해
여성비하 되살리고 직원 전원 교체까지…'강요'하는 쪽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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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테일즈, 12세 이용가에 여성비하 욕설 논란

카카오게임즈의 신작 모바일게임 '가디언테일즈'가 '페미 사냥'을 당했다.

"이 걸레 X(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대사를 "망할 광대 같은 게"로 바꾸면서 게이머들의 비난이 시작됐다.

비난 이유는 두 가지다. 수정 과정이 이상하다는 것, 그리고 왜 '광대'냐는 것이다.

"버그 수정 요구는 늑장 대응했는데 여성비하 표현만 빨리 바꾸네? 그런데 '걸레'가 '광대'로 바뀌었네? 얘네 '페미' 아냐?"

일주일 동안 카카오게임즈를 향했던 의혹이다.

의혹에 기름을 부은 것은 '광대'라는 단어에 대한 거짓 정보였다.

"한국 남성과 영화 '조커' 주인공(직업이 광대)을 엮는 페미 성향 트윗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는 "한국 페미 사이에서 '광대'가 곧 '한국 남성'을 가리키는 단어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상당수 게이머가 이를 그대로 믿었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 등 국내 페미니즘 운동, 특히 온라인상의 페미니즘 언어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광대'라는 단어가 국내 페미니즘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광대가 페미 용어다, 운영진에 페미가 있는 것 같다"는 헛소문은 삽시간에 '페미 사냥'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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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장면

'페미 의혹'을 제기한 게이머들이 들고나온 또 다른 근거는 채팅 금지어였다.

대표적으로 '보이루'와 '임신'이 금지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됐다.

'보이루'는 인기 유튜버 '보겸'이 쓰는 인사말로, 보겸과 '하이루'(채팅상에서 안녕하세요를 빗대어 쓴 말)의 합성어다.

보겸이 구독자를 수백만 명 모으며 큰 인기를 얻자 10대 사이에서 '보이루'가 일상적인 인사말로 유행하기도 했다.

'보이루'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단순 인사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보이루'가 여성 성기를 가리키는 표현을 연상 시켜 보X루, 보징어 등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증언이 꾸준히 나온다.

게임업계에서는 "채팅창에 '보이루'나 'ㅂㅇㄹ'가 올라오면 순식간에 같은 단어로 도배된다. 그러다 보면 '보X루' 등 혐오 표현으로 도배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보이루'가 일종의 '깨진 유리창'으로 작용해 무질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임신'이 금지어인 이유도 비슷하다.

온라인 남초(男超) 커뮤니티나 게임 채팅창에서는 '임신'을 욕설의 재료로 쓰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남초에서 임신 욕설은 주로 같은 남성을 향하며 임신과 출산에 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낸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시켜서 인생을 망치라"는 식이다.

남초 게임에서 임신에 관한 진지한 정보 공유나 고민 상담이 이뤄질 가능성보다는 임신이라는 단어가 욕설로 쓰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운영진 입장에서는 깨끗한 채팅창을 위해 '보이루'나 '임신'처럼 단어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악용될 소지가 있는 단어를 차단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두 단어가 금지어라는 사실은 '가디언테일즈 페미 프레이밍'의 재료로 쓰였다.

보통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문제 제기하는 단어들이니 가디언테일즈도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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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댓글 (CG)

"걸레 X"이라는 대사를 고치고 '보이루'나 '임신'처럼 악용 소지가 있는 단어를 금지하는 조처가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공고하던 남녀 차별을 없애고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 있던 세상을 평평하게 바로잡자는 인식인 '성 인지 감수성'이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대다.

국내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 전체를 '여성우월주의'로 해석하는 분위기지만, 성차별·성폭력 철폐라는 페미니즘의 본래 의미로 보면 카카오게임즈의 조처는 이제는 상식적인 수준의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카오게임즈는 '페미'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안티 페미니즘'이나 다름없는 시대 역행적 조치를 단행했다.

"걸레 X"에서 "광대 같은 게"로 바뀌었던 대사에 다시 여성비하 표현을 넣어서 "이 나쁜 X이"로 바꿨다.




아울러 '보이루' 등 금지어도 해지하기로 했으며, 가디언테일즈 국내 운영진을 전원 교체하는 인사 조처를 내렸다.

카카오게임즈 측은 "직원 중 특정 단체 소속이거나 특정 단체에 편향된 직원은 한 명도 없다"며 '사상 검증'도 완료했다고 알렸다.

결국 '가디언테일즈 페미 프레이밍' 사태는 거짓 정보를 기반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한 일부 게이머들이 만족스러워 할 결과로 마무리됐다.

가디언테일즈 게이머 상당수는 "페미 논란 이후 악성 채팅 이용자가 더 많아져 채팅창이 너무 더러워졌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공식 카페 등 커뮤니티 여론이 "여성비하 욕설을 되돌려라, 채팅창에서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 없이 마음껏 떠들 수 있게 허용하라"는 쪽으로 쏠렸던 데 따른 결과다.

게임이 시대에 발맞춰 성 평등과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면 남초 게이머 집단은 "게임에 사상을 강요하지 말라"며 반발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게임에서만큼은 혐오·차별·욕설을 자유롭게 즐기게 놔두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가 보여준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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