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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지도 거꾸로보면 새로운 세상 보인다"…'괴짜' 카이스트 총장 인터뷰

박봉권 기자, 이새봄 기자, 이종화 기자
입력 2021/05/04 16:53
수정 2021/05/04 20:10
[매경이 만난 사람] TV도 세계지도도 뒤집어 보는 '괴짜' 이광형 KAIST 총장
■ 대담 =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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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금광을 찾는 것과 같다. 하나의 구멍만 계속 파게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때로는 바로 옆쪽을 파는 게 금광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연구할 때도 한 번씩 고개를 들고 다른 데를 쳐다봐야 한다. 그런 '딴짓(refresh)'이 미술·음악 같은 예술이다."

괴짜교수·거위아빠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는 이광형 KAIST 총장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딴짓'에 힘을 쏟았다. 캠퍼스 내에 미술관을 짓기 위해 설계를 하고 기금을 모았다. 이공계 수재들이 모이는 대학인 KAIST에 굳이 미술관이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20년 전 KAIST 대덕 캠퍼스에 거위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거위아빠 이광형 총장이 20년이 지난 지금 미술관을 캠퍼스에 짓는 이유는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총장은 "학생들 공부만 하지 말고 다른 데를 좀 보라고 거위를 데려왔고, 미술관도 짓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진정한 일류가 되려면 누군가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뭘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다른 각도로 볼만한 걸 찾아야 하고 이를 도와주는 게 예술이다. 아래만 보고 땅만 파다보면 계속 같은 땅굴만 파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생활 속에서 다른 각도로 보는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15년째 TV를 거꾸로 보고, 학교 조직도도 거꾸로 붙여두었다. '거꾸로 된 세계지도' 역시 집무실을 옮길 때마다 그를 따라다니는 소품이다. 최근에는 10년 후인 2031년의 달력을 직접 만들어 집무실 책상에 올려뒀다. 괴짜교수로 불리게 만든 이러한 습관들에 대해 그는 "생각을 바꾸기 위한 연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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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KAIST 50주년인데 '100년 비전위원회'를 만든다고 들었다.

▷2071년이 KAIST 100주년이다. 50년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로 조직을 구성해보고 있다. 50년 다음이 100년 아니겠나. 100년 후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때의 세상을 상상하면서 그 세상 속에서의 KAIST 역할을 찾아보는 위원회이다. KAIST 교수들과 기업에 계신 분들로 멤버를 구성 중이다. 희망자를 받았는데, 교수들 중 65명이 자원했다. 외부 위원들은 현재 구성 중이다. 어떤 모습으로 이 학교가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질문할 것이다.

―조직도를 거꾸로 붙여놓는 이유는.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특히 대학은 명령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지시가 통하지 않는다. 학교를 운영하려면 이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 교수들의 마음을 사면 학생들은 교수를 통해 움직인다. 조직도를 거꾸로 붙이면, 내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가 보인다.


―포스트AI(인공지능)를 강조하는데, 포스트AI란 어떤 것일까.

▷일단 내 전공이 AI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현재의 AI가 '유행을 타고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의 블록체인, 빅데이터처럼 유행하다가 5년이면 이 관심이 사그라들 것이라 본다. 선장이라면, 선원들이 AI라는 어장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고 있을 때 같이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다음 어장을 찾고 있어야 한다. 나는 KAIST가 그런 선장이 돼야 한다고 본다. 아직은 뭐가 될지 알 수 없다. 10년, 20년 뒤 인간이 무엇을 원할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이 일상화됐을 때 인간의 삶이 어떨지를 봐야 하고, 그 삶 속에서 인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알아야 준비할 수 있다.

―10년 후 인간이 무엇을 원할지를 어떻게 찾을 수 있나.

▷결국 기술이란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거다. 일종의 '수단'이다. 지금까지 KAIST는 눈에 보이는 기술만 만들어 왔다. 하지만 새로운 어장을 찾고, 보이지 않는 것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이 나침반은 인문학이다. 인간의 본능이 뭐고,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문사회학을 디지털과 융합한 디지털 인문사회학으로 개편한다 했는데.

▷인문사회학 교수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열심히 설득했다. 각 연구실에 컴퓨터 전공자들을 모두 붙여주겠다고 했다. 인문학은 수많은 책을 읽고 머리에 집어넣고 지식을 쌓은 뒤 가설을 증명하며 논문을 쓴다. 하지만 이제 많은 문헌들이 디지털화돼 있다. 컴퓨터에 책을 읽힐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컴퓨터는 질문을 하지 못한다. 디지털 인문사회학에서는 컴퓨터에 지식을 집어넣고, 인문학자들은 질문을 찾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를 전공한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교수들에게 인문학을 배우고, 교수들은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다. 아직 전 세계에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빅데이터·AI와 인문학자가 협업하면 엄청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우리나라가 백신을 왜 못 만들고 백신이 없어서 절절맬까. 연구하는 의사가 없어서 그렇다.


약품·의료기기를 생물학 엔지니어들이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항상 필요하고, 이 임상시험은 의사가 해야 한다. 서울의대 졸업생이 매년 135명인데, 이 중에 연구하는 의사는 1~2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연구 인력이 적다.

―KAIST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연구 의사로 가지 않겠다는 학생이 있지 않겠나.

▷그런 우려는 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KAIST 의전대를 졸업하면 10년 동안은 병원 등 임상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KAIST는 다른 대학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연구하고 창업하는 분위기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이쪽으로 관심이 생길 것으로 본다.

―임기 내 설립이 가능할 것으로 보나.

▷임기 내 설립은 어려울 수 있지만, 내년 대선 공약에 KAIST 의전원 설립을 넣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게 돼야만 바이오·메디컬 사업이 대한민국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1980년대 우수 인력이 전자공학을 공부해 한국 전자산업을 일으켰듯이, 이제는 우리가 의료에 인력을 밀어줘야 할 때다. 그 인력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게끔 해야 한다.

벤처창업 대부?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 찾게 지켜봤을 뿐


부모나 교수의 '잔소리'에
생각 갇히면 창의력 안 나와

―학생이 KAIST에 입학해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창업이라고 봐야 하나.

▷그렇지 않다. 다양한 길로 나가야 한다. 학자도 나와야 하고 대기업에 취업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학생들이 꿈을 찾으면 교육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으면 저절로 공부 한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모르고 목표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내가 공부를 적게 시키려고 하는 이유도 같다. 3시간 동안 KAIST 학생에게 앉아서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토론하고 현장학습을 가게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꿈을 찾으면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주입식 공부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 신승우 네오위즈 창업자 등 창업한 제자들이 많다.

▷내 연구실에서 창업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 일이 없다. 사람들은 나보고 '벤처 창업의 대부'라며 비결이 뭐냐고 묻던데, 비결 같은 건 없다.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뒀을 뿐이다. 대부분 교수들이 부모처럼 잔소리가 많다. 학생이 노는 꼴을 못 본다. 계속 잔소리하니 아이들은 구속되고 새로운 생각을 못 하고 말도 못 한다. 나는 연구실에 오든 말든 자유롭게 하라고 했고, 학생들이 무언가 하고 싶다면 그냥 해보라고 했을 뿐이다. 김정주 의장도 게임 만들어 보겠다고 했을 때 '그래 만들어봐'라고만 말했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는 학생이다. 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자극을 줄지 생각하는 게 교수다.

―우리나라는 유니콘 기업이 적다.

▷우리나라 사람은 도전 의식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곧 죽어도 남 밑에서는 일을 안 한다는 마인드가 있다. 창업하기 좋은 마인드다. 문제는 제도에 있다고 본다. 연대보증 때문에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렵다. 미국처럼 위험을 분산해야 창업에 도전할 수 있다. 스톡옵션도 문제가 된다.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해 그 효과를 받기 힘들다. 스타트업에 인재들이 취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뜻이다. 기술 탈취도 해결해야 한다. 3배 징벌배상제가 생기는 등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He is…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1978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 △1980년 KAIST 산업공학과 석사 △1985년 프랑스 INSA 리옹 전산학 박사 △1985년 KAIST 전산학과·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2003년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장 △2007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2019년 KAIST 교학부총장 △2021년~ KAIST 제17대 총장

[정리 = 이새봄 기자 / 이종화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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