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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컴공학과장의 경고 "잡스는 커녕 단순 개발자만 키우고 있다" [인터뷰]

입력 2021/05/08 13:08
수정 2021/05/08 23:10
하순회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과장
"컴퓨터공학 인기에 당장 정원 늘려도 인프라는 한계"
"학교서 우수 개발자 못 만들면 인력 수급 문제 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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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과대학 [사진 : 배윤경 기자]

"소프트웨어(SW)분야는 우수 인력과 우수하지 않은 인력간 생산력 차이가 굉장히 크다. 일당백이다. 100명의 노동력이 모여도 고급 인력 1명의 생산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같이 단 한 명이 이끌어낸 변화를 생각해볼 때 고급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만난 하순회 컴퓨터공학부 학과장은 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급 개발자 양성이 가장 중요한데도 현재는 부족한 개발자 인력을 채우기 급급해 '프로그래머'만 양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서 하 학과장이 언급한 프로그래머란 단순 코더(Coder)에 가깝다. 고급 개발자가 프로그램 전반을 기획하는 설계자라면, 코더는 이를 실현하는 시공자에 해당한다.


하 학과장은 "입사 조건이 좋다 보니 기초지식 정도 쌓은 학부생들이 당장의 조건만 보고 기업으로 가는 경우가 늘었다"면서 "고급 개발자는 학부만 졸업해서는 되기 어렵다. 학생은 우수하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진 않은 셈"이라고 밝혔다.

수 년 전부터 개발자 수급 부족 문제가 이어지면서 최근 들어 IT회사를 중심으로 신입 개발자의 연봉을 경쟁적으로 높이고 있다. 게임 개발사 크래프톤의 개발인력 초봉이 6000만원에 달하는가 하면, 엔씨소프트는 초봉 상한선을 두지 않아 능력만 된다면 신입 개발자라 할지라도 '억대 연봉'까지 가능해졌다. 사회 진입을 앞둔 학부생으로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하 학과장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 결국 SW분야 리더다. 단순 프로그래밍은 학원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매번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나오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져 직업 수명도 짧다"며 "소프트웨어 리더를 양성하려면 단순 재정 지원뿐 아니라 교수진, 조교, 교육 공간에 이르기까지 고급 개발자를 꾸준히 배출할 수 있는 전반적인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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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경 [사진 : 배윤경 기자]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기존 55명이던 학부 정원을 올해 70명, 내년 80명으로 늘렸다.


SW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그만큼 커진 셈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백분위는 치의대에 이어 이공계 '톱'을 찍었다.

규정상 학부생 정원의 100%까지 복수전공자와 부전공자를 받을 수 있어 타과생 역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컴퓨터공학부는 문과생까지 몰리는 인기 복수전공·부전공 학과다. 지난해 55명을 모집하는데 206명이 몰렸다. 지난해 2학기 복수전공자 선발 인원 17명 중 약 30%인 5명이 경영대·인문대 소속이었다.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전공학부생과 지난해 신설된 인공지능 연합전공자(복수전공자)까지 합하면 올 한해 컴퓨터공학부 규모는 300명대로 확 늘어난다. 한 학년당 300명대인 셈이니 전학년을 합하면 1000명을 넘어선다.

반면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25명으로, 부교수와 조교수, 객원교수까지 합해도 교수진은 36명에 불과하다. 교육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실습교육이 어렵단 지적이 나온다. 예산은 물론 기자재, 교수진, 공간은 모두 주전공자 기준으로 배분된다.


하 학과장은 "교육자와 교육환경은 열악한데 학부생들은 인턴 등의 기회가 많이 열려 있다 보니 빨리 돈을 버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금은 학부생이 고급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일할 데가 너무 많고, 기업 입장에선 우수 인재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쓸 수 있다"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어려운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아야 미래 인재 양성에서도 이들이 쓰일 수 있다. 회사도 결국 고급 인재를 원하면서 특채와 수시 채용 등을 통해 너무 빨리 데려간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학계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개발 인력 자체가 부족하지만, 수년 뒤엔 고급 인재 부족 현상에 IT강국으로서의 입지 역시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 학과장은 "미국과 인도 모두 SW 인력이 많지만 현재 소프트웨어 강국은 어디겠나"라며 고급 개발자 양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는 게 하 학과장의 설명이다. 컴퓨터공학은 이제 의료·자동차·바이오 등 전 산업분야에 쓰인다.

그는 "SW 기술은 모든 전공과 산업에 필요하다. 프로그래밍적 소양 없이 정책이든 빅데이터든 스타트업이든 구현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 인재 부족 현상이 단순 컴퓨터공학계만의 문제로 치부되면 안 된다. 지금부터 시스템을 잘 구현해 나가야 한다"면서 "학부는 최상위 학생들로 꾸려지는데 대학원 경쟁률은 2대 1도 되지 않는다. 정년퇴직하는 교수진보다 유수 대학에서 박사 받는 수가 현재는 더 적다. 산업계가 크려면 교육계가 우수 대학간 경쟁하며 고급 인력을 배출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배윤경 매경닷컴 기자 bykj@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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