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연수입 130억, 폴로어 340만명, 22살 모델…잘 나가는 그녀들, 모두 가상인간

입력 2021/09/24 16:49
수정 2021/09/25 01:18
현실 세계 휘어잡은 가상 인플루언서 전성시대

1998년 데뷔한 가수 아담
첫 앨범 20만장이나 판매
당시 수익원 없어 사라졌지만
비대면 시대 가상인간 대세로

김래아·로지·릴 미켈라…
대기업·명품 광고 출연하고
가전 박람회서 회사 소개도

학폭·왕따 등 구설수 없어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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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로지. 나이 22세. 소속사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인스타그램 폴로어 7만명.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펑퍼짐한 청바지 차림의 인플루언서가 보험사 신한라이프의 광고에 등장했다. 광고에서 로지는 발랄하게 춤을 추며 버스정류장부터 슈퍼마켓과 숲 속, 도심까지 장소를 넘나들며 뛰논다. 이국적인 외모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로지가 출현한 광고의 유튜브 영상은 게시 한 달여 만에 1100만여 조회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딱 하나 보통 인플루언서와 다른 게 있다면, 인간이 아니라 '가상인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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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인간은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 혹은 'CGI(컴퓨터로 만든 이미지) 인플루언서'라고 불린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지니고 행동하지만, 실제 사람은 아니다. 가상인간 로지의 등장은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경험이 아니다. 이미 1998년 1월에 '사이버가수' 아담이 가상인간, 즉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시대를 열었다. 178㎝의 키와 68㎏의 몸무게, 잘생긴 사이버가수 아담은 3D(차원)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인간이었다. 첫 앨범만 무려 20만장의 판매를 올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비용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후 2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의 세계에서 가상현실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가상인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된 가상인간 '로지'는 지난해 8월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만들었다. 구체적인 프로필과 함께 명확한 세계관과 정체성이 부여된 게 특징이다. 로지는 세계여행과 요가, 러닝, 패션 등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다. 나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22세이다. 자유분방하고 사교적인 성격이 설정됐다. 특히 로지의 외모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과 이미지를 모아서 만들었다. '흔하지 않지만 매력적인 얼굴'이 나타나게 됐다.

로지는 연일 A급 인플루언서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출현하는 범위도 넓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포함해 TV광고까지 무한확장 중이다. 신한라이프부터 쉐보레, 아모레퍼시픽, 반얀트리호텔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광고 모델로 발탁돼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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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김주하 AI앵커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표 정보기술(IT)기업을 중심으로 가상인간을 활용한 마케팅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LG전자의 김래아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공식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진한 분홍색 후드티와 단발머리를 가진 서울에 사는 23세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프로필을 기초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4개월여간 자연어 정보 수집·학습을 거쳐 목소리까지 갖게 됐다.

LG전자는 CES 2021 행사에서 김래아가 직접 LG의 신제품들을 소개하도록 했다. 호텔 등 특정 공간의 위생을 위해 방역 작업을 하는 'LG 클로이 살균봇'과 2021년형 LG 그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적용한 전문가용 모니터 'LG 울트라파인 올레드 프로' 등 LG 제품을 김래아가 유창한 영어로 소개했다.

LG전자의 김래아보다 1년 더 일찍 세상에 모습을 알린 삼성전자의 가상인간 '네온(NEON)'은 상용화 수순을 밟고 있다. 삼성전자의 미래기술 사업화 벤처 조직 '스타랩스'가 개발한 네온은 지난해 CES 2020에서 처음 공개됐다. 신한은행은 네온을 가상 은행원으로 채용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손잡았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24시간 365일 고객과 상담하는 '영업 현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MBN의 김주하 AI앵커도 가상인간의 범주에 속하는 사례다. 김주하 AI앵커는 인간 김주하 앵커를 본떠서 만들었고, 실제 'MBN 종합뉴스'를 진행하며 이슈를 만들었다. AI앵커는 실제 인물의 영상을 학습한다.


방송 원고를 주면 그 사람과 똑같은 목소리, 말투, 몸짓을 재현한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에 김주하 앵커 본인은 "'AI 기술이 언젠가는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수십조 인플루언서시장 잡아라…해외서는 가상인간 마케팅 봇물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인사이더인텔리전스는 기업들이 인플루언서에게 쓰는 마케팅 비용은 2019년 80억달러에서 2022년 150억달러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때 로지와 같은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 시장 규모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시장에서는 로지의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김래아와 네온, 아담까지 소환된 수준이지만, 전 세계에서는 이미 가상인간을 활용한 마케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가상인간은 미국 LA에 사는19세 팝 가수 '릴 미켈라'다. 2016년 등장한 브라질계 미국인인 미켈라가 지난해 벌어들인 돈만 약 130억원(1170만달러)에 달한다.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폴로어는 304만명이 넘었는데, 인스타그램 게시물 광고 한 개의 단가가 1000만원(850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미켈라는 현재 샤넬, 프라다, 버버리,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도 맡고 있다. 삼성전자도 2019년 미켈라를 활용해 갤럭시S10 신형 모델의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가상 슈퍼모델 '슈두'도 21만명의 인스타그램 폴로어를 보유한 스타다. 2017년 4월에 데뷔한 흑인 여성인 그는 큰 키와 매력적인 마스크를 지녔다. 일본 최초의 버추얼 모델인 '이마'는 글로벌 가구기업 이케아 모델로 활동하면서 하라주쿠 이케아 매장에서 생활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AI 가상인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와 AI 오디오 스타트업 타입캐스트가 영상·음성에 특화된 AI 반도체를 적용해 가상인간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타입캐스트는 AI 성우 서비스로 현재 140명 이상의 AI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가상인간을 통해 AI 음성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가상인간을 활용한 브랜드 마케팅은 앞으로도 더욱 고도화될 전망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이커머스의 비중이 쇼핑을 장악한 상황에서 인터넷과 메타버스 등 새로운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특히 구설에 휩싸일 필요도 없고 항상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며 철저하게 관리 가능한 인플루언서라는 점도 선호가 높아지는 지점이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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