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아이템 뽑기로 배 불리더니"…게임 '3N' 시총 28조 증발

입력 2021/10/31 18:32
수정 2021/10/31 23:59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확률게임 안주하다 외면당해
◆ 벼랑끝 몰린 한국 게임 3사 ◆

"혁신을 기반으로 한 게임 업(業)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28조원'. 국내 대표 게임사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에서 지난해 최고치 대비 1년 만에 감소한 시가총액 규모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며 한때 70조원을 넘어섰던 3N 기업가치가 이처럼 추락하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넥슨 주가는 1년 새 45% 급락했고, 엔씨소프트·넷마블도 37% 떨어졌다.

3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3N은 올해 상반기 실적 충격에 이어 조만간 발표할 3분기 실적도 부진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이미 올 상반기 매출이 뒷걸음질 쳤고, 영업이익은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혁신의 실종'을 거론하며 국내 1세대 게임사들이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한다.


연초부터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사상 초유의 집단 트럭 시위가 벌어진 데다 신작 게임 부진 등 해외 진출 난항까지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동시에 터진 결과다. 국내 다른 게임사도 3N을 벤치마킹하면서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과금 시스템은 대다수 게임의 핵심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한국 3N '확률형 게임' 돈벌이하다 세계 10대 흥행 게임 全無

혁신없이 안주하다 글로벌 게임시장서 밀려날 위기

억소리 나는 아이템 구입비

리니지M 캐릭터등급 올리려
3천만원 들여 만번 뽑기도
0.001%대 확률에 유저 외면

우려먹기 신작에 실망

십수년전 성공한 PC게임 재탕
메타버스 등 새 흐름 못따라가
中 게임규제도 엎친데 덮친격

1031149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언제부턴가 한 달에 1000만원 넘게 쓰고 있더군요. 큰일 나겠다 싶었죠."

40대 직장인 장 모씨는 새벽부터 대규모 전투에 출전하는 이른바 '린저씨(리니지 게임을 하는 아저씨)'다. 오랫동안 엔씨소프트 PC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탐닉해온 장씨는 2017년 리니지M이 출시되자 모바일로 갈아탔다. 그런데 최근 장씨는 리니지M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서 과감히 삭제했다. 그는 "캐릭터 변신부터 장비, 스킬까지 아이템 대부분이 과금형 뽑기를 통해 획득하는 구조"라며 "여기에 드는 비용이 나도 모르게 한 달에 1000만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고 씁쓸해했다.


'린저씨' 생활을 접은 장씨는 아내와 4만8000원에 구입한 블리자드 '디아블로2: 레저렉션'을, 초등학생 아들과는 미국 로블록스의 메타버스 게임을 즐긴다.

사행성 유혹에 겁을 먹고 '린저씨' 생활을 접은 장씨 사례는 게임을 즐기는 상당수가 공감하는 문제다. 사용자들은 게임 자체의 혁신보다 뽑기 확률을 낮춰 수익 극대화에 나선 게임사들 사업 전략에 혀를 내두른다. 여기에 새로운 게임으로 도전하기보다는 기존 지식재산(IP)에 기댄 '후속작' 출시와 같은 우려먹기 전략에 피로감을 보인다. 게임업계 '3N'으로 불리는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이 올해 내내 고전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혁신 부족과 세계 경쟁력 약화라는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 확률형 아이템 '독배' 든 3N


넥슨이 2000년대 초반 처음 적용한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산업의 핵심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초기엔 게임에 재미 요소로 작용했지만 아이템을 뽑는 데 복잡한 조건이 붙고, 뽑기 성공 확률도 점점 낮아지면서 이용자에게 계속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사행성 논란이 커졌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은 상당수 캐릭터 변신이나 장비, 스킬 관련 아이템의 뽑기 성공 확률이 1% 밑이다. 변신 뽑기 성공 확률은 고급 등급에선 3~5%이지만, 희귀 등급은 0.1~0.03%, 영웅 등급은 0.02~0.01%, 전설 등급은 0.0005~0.0003%까지 낮아진다. 게임 재화로 한 번에 3000원씩 든다. 확률을 적용해 단순 계산해보면, 영웅 등급에서 1만번(3000만원)을 뽑아야 원하는 변신에 한 번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리니지 이용자 A씨는 "여러 유료 패키지 구매를 거쳐 회당 많게는 100만원 이상 드는 뽑기도 있다"며 "최상급 레벨의 용사가 되려면 서울 아파트값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했다. 3N의 대다수 게임들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리니지처럼 확률형 아이템을 활용한 과금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확률장사 5대 악덕 게임'으로 리니지,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모두의마블 등 3N 대표 게임을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재탕 느낌 신작에 해외 진출도 부진


신작 게임이 작년엔 20개에 육박했지만 올해는 절반에 그칠 전망이다. 그마저도 대다수가 기존 IP와 유료 상품, 뽑기 등 과금 시스템의 재탕이다. '신작'이란 수식어가 붙지만 상당수가 십수 년 전에 이미 성공한 PC 온라인 게임을 모바일에 이식한 '후속작'이다.

넥슨은 작년 PC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와 '카트라이더' IP 기반 모바일 게임을 출시했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 앤 소울2'를 내놨지만 '리니지가 연상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넷마블 역시 'A3' '세븐나이츠'처럼 기존 IP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이 주류를 이룬다. 게임 방식과 그래픽, 배경음악을 스마트폰 환경에 맞게 바꿨지만 '추억의 게임'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는 신규 IP를 개발하거나 메타버스·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과 패키지·정액제 등 비용 부담이 작은 시스템을 게임에 적용해 이용자 저변을 확대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로블록스, 블리자드, 닌텐도 등과 대비된다.

비슷한 IP와 게임 시스템으로 게임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해외에서도 성과가 부진하다. 넥슨의 국가별 매출을 보면 한국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8년 29%, 2019년 36%였는데 작년엔 56%까지 올라왔다.

엔씨소프트는 매출에서 한국 비중이 절대적이다. 작년 국가별 매출은 한국이 83.3%에 달했고 북미·유럽은 3.9%, 일본 2.3%, 대만 1.5%에 그쳤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과금을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리니지가 대만에서만 성과를 거둔 것은 수익 모델 때문"이라고 말했다.

3N에선 넷마블만 해외 매출 비중이 70%를 넘어섰고, 북미·일본·동남아시아 등 국가별로 고르게 분포됐다.

'차이나 리스크'도 고민거리다. 넥슨 매출에서 중국은 한국에 이어 두 번째(28%)로 비중이 크다. 10년 이상 중국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인 PC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기대는 구조다. 넥슨은 모바일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했지만 중국에서 1년 넘게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도 중국 판호(게임 허가증)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최근 청소년 게임 시간 1시간 제한처럼 중국 게임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임영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