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노벨상 '씨앗'은 2030때 연구인데…한국 이공계대학원 정원도 못채워

입력 2021/10/14 17:52
수정 2021/10/14 20:26
◆ 한국도 노벨상 배출하자 ② ◆

최근 1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 상당수는 수상의 밑거름이 된 핵심 연구를 20·30대에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연구재단이 2011~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 79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수상자들이 핵심 연구를 시작한 연령은 평균 37.9세였다. 특히 노벨 생리의학상은 수상자 중 약 30%가 20대에 핵심 연구를 시작했다. 대학원 시절과 신진 연구자 시절의 연구 성과를 장기간에 걸쳐 발전시켜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이 '노벨상급' 연구 성과를 내려면 젊은 연구자들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사업에 선정된 국내 전체 연구자 가운데 30대 이하는 2019년 12.6%(1792명)로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 30대 이하 전임교원 중 절반이 넘는 56.9%가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했다. 또한 전체 재원을 놓고 보더라도 연구자 1인당 연구비가 1억원 미만인 경우가 72.7%에 달했다.

한국 이공계 대학원 진학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이공계 A교수는 "연구비도 연구비지만, 요즘은 대학원생 부족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대학원은 2017년 이래 지난해까지 4년째 정원 미달 사태를 겪었다.

"에너지·질병·우주…노벨상 위해선 인류난제 풀 연구 도전해야"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공계 석학 3인 제언

97613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한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준의 과학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그동안 그때그때 필요와 유행에 따라 연구주제를 바꿔가며 과학을 경제발전 수단으로만 여겨왔던 사회적 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

한국인 가운데 노벨 과학상 수상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유룡 KAIST 화학과 명예교수와 현택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등 석학 3인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과학계가 '노벨 클래스'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과 관련해 이같이 진단했다.


다양한 다공성 나노물질 합성법을 창안해낸 유 교수는 2014년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세계 상위 0.01% 수준의 논문 피인용 횟수 등을 근거로 예측한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에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개척한 박 교수와 나노입자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현 단장은 각각 2017년과 지난해 노벨상 수상 예측 후보로 선정됐다.

976132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도 이제는 국가 발전을 넘어서 과학 지식을 진일보시키고 인류 공통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선진국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 교수는 "가난한 나라는 기초과학을 하기 어렵지만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는 것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인류 지식 발전을 위해 탐구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노벨상은 인류 공통의 거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전 세계에 공헌한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며 "에너지, 질병, 우주 등 전 세계 과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런 인류의 보편적 복지와 관련한 메가트렌드를 읽고 자기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렇다고 철새처럼 최신 유행 키워드를 따라 연구주제를 바꾸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현 단장은 "10년, 20년 뒤 특정 분야의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만물상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석학들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분 짓지 않아야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연구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산업 발전을 위해 응용 분야에 투자를 많이 했던 한국이 지금에 와서 기초과학을 강화한다며 '기초 분야 연구자니까 기초만 하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완전한 미지의 영역은 기초에 초점을 맞춰야겠지만 이제는 대부분 영역에서 두 가지 관점을 같이 가져가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현 단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해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들의 공통점은 자기 이름으로 설립한 스타트업 등 회사를 2~3개씩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기초과학 연구자가 무슨 회사를 차리냐'고 하지만 해외에서는 기초 분야 교수들에게 오히려 창업을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소위 '대박' 나는 기술은 기초과학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매년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생화학자인 로버트 랭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나노입자 기술로 그동안 모더나를 비롯한 40여 개 회사를 창립했다. 그가 창안한 나노입자를 몸에 오랫동안 잔류시키는 기술은 모더나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핵심 밑바탕이 됐다.

석학들은 특히 젊은 과학자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 단장은 "그동안 연구비 규모는 꾸준히 늘어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며 "대학원생, 신진 교수와 같은 젊은 연구자들이 일찍부터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 연구를 경험하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연구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노벨상 수상의 결정타가 된 핵심연구를 시작한 나이는 평균 37.9세였다. 유 교수는 "'연구하면 배가 고프다'는 것은 이제 옛날얘기"라며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상대적으로 의대를 선호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런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노벨 과학상 수상의 또 다른 걸림돌로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획일적인 정년 제도가 꼽혔다. 최근 10년을 기준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이 69.1세로 높고, 70대 이후의 연구성과로 고령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단장은 "국내는 만 65세가 되면 명예교수직을 받더라도 더 이상 같이 연구할 대학원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60세만 넘어도 사실상 연구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다"며 "정년이 지난 시니어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 이어가려면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국가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만난 세계 정상급의 국내 연구자 한 분은 얼마 전 정부 연구과제 제안서를 냈다가 나이 때문에 심사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국이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탁월한 성과를 낸 과학자들에 한해서는 정기적인 평가를 거쳐 계약을 연장하는 등 정년 없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65세 이후에도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자는 전체의 1~2% 안팎"이라며 "이들에 한해서만 예외를 적용한다면 사회적으로도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