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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교과서 틀 깬 불가능에 도전해야 노벨상"

입력 2021/11/07 16:41
수정 2021/11/08 00:21
올 노벨생리의학상 논문 제1저자
김성은 파노로스 창업자 인터뷰

신약 개발 최적 환경은 벤처 회사
연구에 재미 느낀다면 인생 걸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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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도 가능하게 만든 게 우리 연구였다. 지금도 그런 자세로 임하고 있다. 목표는 분명하지만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정해진 교과서가 있는 건 아니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게 고생스럽긴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결국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신경과학과 교수의 핵심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김성은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공동창업자 겸 연구기획본부장(CSO·39)은 지난 4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어 과학자가 됐다며 이처럼 밝혔다. 경기 화성 동탄의 파노로스 본사 사무실에서 김 본부장을 만났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동물 피부에서 꼬집기, 찌르기 등 물리적 자극을 감지하는 압력 수용체인 '피에조'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압력 수용체는 피부나 장기에서 느끼는 통증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체(體)감각과 신체 발달에 필수적이다. 김 본부장은 "눈 감고도 걸을 수 있고 팔다리가 어디 있는지 인지할 수 있는 것도 피에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피에조는 비마약성 진통제나 말라리아 치료제 등 신약의 표적으로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김 본부장은 "지도교수님이 노벨상을 받아 정말 기뻤다. 우리가 해결한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제는 학계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KAIST 화학과를 졸업하고 파타푸티언 교수 연구실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 노벨상 수상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세포 수준에서 발견된 피에조의 역할을 처음으로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입증한 연구 결과를 제1저자로 201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보통 논문의 교신(책임)저자는 연구 주제를 처음 고안한 지도교수를, 제1저자는 연구에 필요한 핵심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직접 실험을 수행하는 등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자를 의미한다. 김 본부장처럼 한국에서 교육받은 연구자가 노벨상 수상 연구를 직접 수행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그는 "피에조가 쥐 세포에서 발견된 만큼 연구실에선 처음부터 살아 있는 쥐로 실험하려 했는데, 피에조 유전자를 결손(녹아웃)시킨 쥐 모델은 발달 장애로 쉽게 죽는 문제가 있었다"며 "그래서 교수님께 초파리로 먼저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해보라고 하셔서 연구를 주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김 본부장은 "실험을 위해 초파리 신경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로 분리해야 했는데, 전엔 아무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방법론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해결해야 했다"면서 "그때 초파리 해부학도 독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처음 분리에 성공한 초파리 신경세포를 본 순간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기초과학자였던 김 본부장이 회사로 시선을 돌리게 된 건 박사후연구원 이후다.


그는 "박사 때 논문이 워낙 좋다 보니 박사후연구원 때는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실을 골라 갈 수 있었고 덕분에 피에조가 신경재생에 관여한다는 사실도 밝혔다"며 "하지만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대단한 연구실이라 해도 신약 개발처럼 직접적으로 사람들한테 영향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은 대학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길로 김 본부장은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와 녹십자가 설립한 목암생명과학연구소에서 3년간 희귀질환 치료제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한국에선 대규모 자본을 들여 신약을 개발할 수도 없고 오히려 큰 회사에선 알짜배기 신약을 개발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스타트업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에이프릴바이오 부센터장을 거쳐 2019년 직접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를 창업하게 된 이유다.

설립한 지 2년 남짓 된 파노로스는 항암제 등 단백질 구조학 기반의 바이오신약 개발 기업이다. 김 본부장은 "2세대(표적치료제) 항암제 메커니즘으로 규제로부터 자유로우면서 3세대(면역항암제) 특성도 갖는 항암제를 개발 중"이라며 "최첨단보다는 부작용이 적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 있는 완성도 높은 약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파노로스는 지난 5월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현재까지 총 31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직원 27명 중 절반 이상이 연구인력이다.

최근 초청 강연과 세미나로 연구 외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는 "나의 경우는 과학을 연구해보니 재밌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며 "연구에 재미를 느낀다면 인생을 걸어볼 만하지만 모두가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화성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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