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규제 장벽에…혁신 '지혈주사' 상용화 좌절

입력 2022/01/20 17:14
수정 2022/01/21 09:55
개발 3년 넘은 '피 안나는 주사기'
2차 감염 막아 의료 수요 높고
개발자 이해신 KAIST 교수
'이달의 과학자상'까지 받았지만
허가기관 불명확한 기준에
지난해 혁신 의료제품서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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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된 지 3년이 넘은 '피 안 나는 주사기'가 규제·허가기관의 장벽을 넘지 못해 아직까지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출혈 주사는 혈액으로 인한 2차 감염을 막을 수 있어 의료 현장에서 수요가 높지만, 혁신의료기기 선정에서 좌절되며 상용화 단계에서 발목을 잡혔다. 일각에서는 허가기관이 혁신의료기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 개발자들 의욕을 꺾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온다.

지난해 6월 바이오기업 이노테라피는 주삿바늘에 지혈 성분을 첨가해 접종 후에도 별도의 지혈 처치가 필요 없는 주사기를 개발한 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혁신의료기기군 지정을 신청했다.


식약처는 보건복지부에 이 제품이 혁신의료기기군에 포함되는지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복지부는 무출혈 주사기는 대상이 아니라고 회신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혁신의료기기군 선정에는 제품의 혁신성과 안전성 등 두 가지 요인이 중요하다"며 "당시 검토 결과 무출혈 주사기는 혁신성이 있다고 판단됐으나 안전성 측면에서 임상시험을 받을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노테라피 측은 "안전성 측면에서 미비했던 부분을 보완해 올해 다시 식약처에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한 뒤 연내에는 다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노테라피의 무혈 주사기는 이해신 KAIST 교수가 개발한 것으로, 이 교수는 2018년 10월 이 주사기를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이달의 과학자상'을 받았다. 이는 주삿바늘 표면을 지혈이 되는 기능성 재료로 코팅한 방식이다. 이 교수는 홍합이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게 하는 성분인 '카테콜아민'과 갑각류의 단단한 껍질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활용한 신소재로 무출혈 주삿바늘 코팅용 생체 접착제를 개발했다.


이미 이 성분을 활용한 패치형 제품의 경우 2015년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아 상용화됐을 뿐 아니라 2016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받았다. 무출혈 주사기는 에이즈와 에볼라, 간염바이러스 등 환자의 혈액이 매개가 되는 의료진의 2차 감염을 해결해주고, 혈우병이나 당뇨 등을 앓고 있어 지혈 기능이 약한 환자들의 주사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 교수는 "기존 주사기와는 전혀 다른 제품이기 때문에 혁신의료기기군으로 신청해야만 했지만, 사실상 혁신의료기기군에 대한 선정을 '혁신적인 시각'으로 봐주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미 같은 성분의 패치 제품이 상용화됐는데도 안전성을 이유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혁신의료기기군은 실제 의료기기 허가와는 다른 개념이다. 혁신의료기기군에 선정되면 허가 절차에서 일반 제품보다 먼저 심사받을 수 있는 '우선심사', 개발 단계와 심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단계별 심사' 등을 적용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이 부여된다. 시제품 제작과 전임상, 임상시험 완료 후 등 의료기기 제품 전 단계에 걸쳐 혁신의료기기군 신청이 가능하다.

의료기기 업체와 과학계에서는 농담처럼 mRNA 백신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다면 현 규제·허가 제도하에서 허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다른 과학계 관계자는 "mRNA 백신의 경우 혁신성은 인정받을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허가기관이 요구하는 안전성 자료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새봄 기자 /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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