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펑크 안나는 타이어·수소센서…미래산업 첨병된 기술거점大

입력 2022/05/18 17:04
수정 2022/05/18 20:37
'산업기술거점 육성센터' 시범사업
2년만에 독보적 성과


3개 대학에 시범설치해 운영
유망기술 개발해 기업 제공
센터·대기업·중기 협력 구축

연구생산성 압도적으로 높아
他대학·公기관 연구소의 10배
미국 주요대학 연구소 웃돌아

연세대, 소재·부품·장비 집중
성균관대, 미래 모빌리티 맡아
한양대는 AI-스마트공장 지원
439745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연세대 산업기술거점센터 소속 연구원들이 신소재 합성·분석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연세대]

대학이 기존 상아탑을 벗어던지고 기업의 '기술 공급 기지'가 될 수 있는 청신호가 켜졌다. 국내 대학에 주요 기술을 공급하는 거점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에 미래 유망 분야 기술을 공급해 상용화하는 시범사업인 '산업기술거점 육성센터'가 사업 2년 만에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 사업화하는 과정은 혁신과 경쟁력 확보에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은 실제 기술 사업화까지 가지 못한 채 사장되는 서랍 속 기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매년 기술이전으로 얻은 수입료를 전체 연구개발(R&D)비로 나눈 '연구생산성'이 1%대에 그친다는 아찔한 조사도 나온다. 연구비 100억원을 투입했을 때 기술이전 수익이 1억5000만원 선에 그친다는 뜻이다.

439745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하지만 연세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3개 대학에 위치한 기술거점센터의 평균 연구생산성은 기존 연구소의 많게는 10배를 웃돈다.


미국 주요 대학의 연구생산성(4%)뿐만 아니라 기업에 기술이전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공공 연구소의 생산성(10%)을 뛰어넘는 수치다.

통상적으로 매출 대비 기술의 가치는 3% 수준으로 본다. 연구기관의 연구생산성이 높아지면 산업 활성화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성공 모델이 여러 분야로 확대될 경우 기초·원천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죽음의 계곡' 문턱도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산업기술거점 육성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대학·연구소를 통해 미래 산업의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축적하고 이를 기업에 공급해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했다. 총 2년6개월간 각 센터(대학)당 약 70억원의 국고를 지원받으며, 연세대는 초임계 소재(소재·부품·장비 분야), 성균관대는 복합소재·부품 동시 설계 및 제조 기술(미래모빌리티), 한양대는 제조·공정·물류 산업 지능화 기술(인공지능) 분야 거점센터를 각각 유치했다.


연세대 초임계 소재 산업기술 거점센터의 이우영 센터장(신소재공학과 교수)은 "기존에는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정하고 연구진(교수)에게 개발을 맡기는 구조였지만 거점센터는 기업에 필요한 분야와 기술, 규모 등을 대학이 파악하고 협력 모델을 제공하는 전혀 다른 구조"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거점센터는 소속 교수 12명이 그간 관계를 맺었던 기업을 한데 모아 협력기업 풀을 구성했다. 대학이 구심점이 돼 공백 기술(미개발 기술)을 메워주다 보니 대기업·중소기업 간 '기술적인 네트워크'가 생겼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소자동차에 들어갈 '수소센서'를 연세대와 공동 개발하고 있는 자동차용 센서 전문회사 아모센스와의 협업이다. 연세대가 갖고 있는 핵심 특허를 활용해 아모센스와 공동 개발하고, 수소자동차의 제조 기업인 현대차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뢰성 테스트 등을 진행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규형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대학이 가지고 있는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기업과 제품화를 연구하면 연구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제품화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는 자율주행차,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형 이동수단에 쓰이는 복합소재와 부품을 집중적으로 개발한다. 성균관대 기술거점센터장인 서종환 교수는 "독일 복합소재 회사인 바스프(BASF)가 15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국 대표 화학 기업인 LG화학의 업력은 75년이다.


장기간 축적된 소재·물성에 대한 자료, 기술 등에 있어서 80년이 넘는 격차가 있는 것"이라며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소재와 부품을 동시에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래 이동수단의 경우 경량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복합소재로 만든 부품을 개발해야 하고, 개발 기간을 단축해 글로벌 경쟁사보다 빠른 결과물을 내놓아야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 서 교수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온다면 공유차 시스템이 일반화될 것이고, 이 경우 타이어가 갑자기 펑크 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비공기압 타이어가 필요하다"면서 "금호타이어를 포함해 6개 기업이 함께 소재와 부품을 동시에 설계하며 실용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양대는 인공지능(AI)을 기업체의 제조·물류 공정에 적용해 스마트공장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거점센터다. 장준혁 한양대 교수는 "AI가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AI 기술이 실제 산업체와 연계돼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섬이 존재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가장 핵심적인 산업, 즉 제조업에 AI 기술을 이전하는 '산업 지능화' 기술을 개발해 이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AI를 접목한 물류 수요예측 기술, 음향·진동 신호 분석 기술, 영상 기반 결함 판별 기술 등이 개발된다면 산업체에서 즉각적으로 응용·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일례로 시끄러운 제조·공정·물류 사업장에서 AI를 통해 필요한 신호만을 분리하는 기술이 있다. 한양대 기술거점센터는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 이 기술은 경량화 기술을 더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만드는 '이엠텍'에 기술이전돼 '소음 차단 이어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 같은 거점센터 모델이 정착된다면 한국이 제조업 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미국은 2012년 산학연 네트워크 조성과 이에 대한 지원을 핵심으로 기술 상용화를 촉진하는 '제조업혁신국가네트워크(NNMI)'를 가동하고 10년째 운영하며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수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기술 상용화가 어렵자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다. 이를 토대로 제조업 혁신을 이루고 저성장·저고용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장준혁 교수는 "대학에서는 주로 원천기술 위주의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산업과는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대학의 원천기술과 특허를 전부 다 기업에 공유하는 형태를 정부가 먼저 제안해왔고, 이 플랫폼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새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