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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악당' 타노스가 돼버린 인간...전세계 곤충 절반이 사라졌다 [사이언스]

입력 2022/05/23 17:02
수정 2022/05/24 09:23
꿀벌 등 '꽃가루받이' 곤충 급감에 식량안보 위기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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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타노스는 행성에 사는 인구의 절반이 죽어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타노스는 여러 행성을 돌아다니며 생명체의 절반을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그는 단 한 번에 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죽일 방법을 찾기 위해 우주에 흩어진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으고, 전지전능한 힘을 갖기를 원한다. 손끝만 튕기면 우주에 있는 생명체 절반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영웅들은 그를 막기 위해 힘을 모은다. 영화에서는 타노스가 손끝을 튕기자 갑자기 절반의 인류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장면이 묘사된다. 곁에 있던 친구가, 가족이 지우개로 지워지듯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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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이 비극이 이미 지구상의 곤충들에게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4월 국제저널 네이처에는 전 세계 주요 지역의 곤충 수가 절반에 가까운 49%나 줄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곤충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타노스는 '인간'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은 "지구온난화가 없는 자연지역보다 기후 온난화가 진행 중이면서 농업활동이 집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역들의 곤충 수가 49%나 더 적었고, 종의 수 역시 29% 적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 지구 6095곳에서 표본 채집된 자료들을 포함해 곤충 2만종에 대한 약 75만건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토지 75%가 자연지역(자연서식지)인 곳에서는 곤충 개체 수가 7%밖에 감소하지 않았지만, 토지 75% 이상이 농경지 등으로 개발된 지역은 63%나 줄었다.

당장 한국에서도 꿀벌 개체 수가 줄어 큰 문제가 발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겨울 꿀벌 78억마리가 폐사했다. 국내에서 사육하고 있는 꿀벌 14%에 달하는 수치다. 꿀벌이 사라진 데는 기생충 응애로 인한 피해, 농약 사용 등을 포함해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그중 가장 큰 이유가 '기후변화'다.

특히 지난해 9~10월에는 날씨가 평년보다 유독 추운 저온현상으로 꿀벌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는데 11월과 12월에는 고온으로 꽃이 이른 시기에 피었다. 이로 인해 꿀벌이 화분 채집에 나섰다가 날이 추워지고 체력이 소진돼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월동을 하기 위해서는 꿀벌들이 공 모양으로 촘촘하게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벌들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해 '봉군'이 형성되지 못했다. 꿀벌뿐 아니라 야생 곤충들은 온난화 때문에 갈수록 빨라지는 개화 시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로 인해 꽃가루받이를 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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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뿐 아니라 대기오염 물질은 곤충의 수분능력을 크게 감소시킨다. 올해 초 영국 레딩대와 버밍엄대 연구진은 배기가스에 존재하는 질소산화물(NOx)과 오존 등의 오염 물질이 야외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2년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대기오염 수준이 높은 곳에 위치한 식물에는 수분 매개 곤충이 방문하는 횟수가 62%에서 72%까지 감소했다. 특히 꿀벌과 나방, 꽃등에, 나비 등 '주요 매개 곤충'이 방문하는 횟수는 83~90%까지 줄었고, 이 결과 작물의 수분이 31% 줄어 종자 수확량에도 타격을 입었다. 이들은 앞서 실험을 통해 자동차 디젤 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꽃향기를 변질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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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야생식물의 90%, 식용작물의 75%가 꿀벌과 나방, 나비 등이 꽃가루를 옮기는 '꽃가루받이'에 의존한다. 특히 꿀벌의 경우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중 70%가 넘는 71개 작물의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아몬드의 경우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꿀벌이 필요하다. 양파·호박은 90%, 수박 역시 70% 이상이 꿀벌의 꽃가루받이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 이 때문에 찰리 오스웨이트 UCL 생물다양성환경연구센터 교수는 "곤충 개체 수를 잃으면 자연환경에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수분 매개체 손실로 인간의 건강과 식량안보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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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스대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꿀벌 등 화분 매개 동물이 없을 때 현화식물의 3분의 1이 씨앗을 아예 맺지 못했으며, 절반가량은 생식능력이 8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분 매개 동물이 줄어들면 잡초와 같은 화분 매개 동물에 의존하지 않는 식물이 번성할 수 있고, 자가수분 식물이 늘어나면 꽃가루나 꿀을 덜 생산해 화분 매개 동물의 생존에 더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5월 20일이 '세계 꿀벌의 날'로 지정되는 등 꿀벌의 멸종 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유다. 미국은 2016년 꿀벌을 멸종동물로 지정했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내놓은 '수분 및 수분 매개체 평가서'에 따르면 과거 50년간 벌의 개체 수는 37%, 나비는 31%나 감소했으며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40% 이상의 벌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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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꿀벌 대소동` 주인공 배리.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꿀벌과 같은 곤충들이 사라져 작물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면 인류의 생존 역시 큰 타격을 받는다. 과거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꿀벌이 사라졌을 경우 매년 142만명이 추가로 사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과일과 채소 등이 줄면서 임산부와 아동, 청소년에게 필요한 영양소 공급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사망자가 크게 늘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곤충을 포함한 꽃가루 매개자가 세계 농식품 생산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연간 최소 2350억달러(약 298조원)에서 최대 5770억달러(약 731조원)로, 이들 매개자가 감소하면 식량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연간 최대 1350억달러(약 171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달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과 영국 레딩대 등 공동 연구진은 꽃가루 매개자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세계 무역에서 어떤 변화가 나오는지를 추정해 관련 결과를 국제 학술지 '인간과 자연'에 게재했다. 프란시스코 산체스바요 호주 시드니대 교수와 크리스 위크휘스 중국 농업과학원 박사 공동 연구진은 2019년 국제 학술지 '생물보존' 3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곤충이 매년 2.5%씩 사라지고 있으며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개체 감소보다 8배나 빠른 속도"라고 밝혔다. 이들은 "곤충의 멸종은 지구에 제6의 대멸종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류에 의한 자연 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해 제6의 대멸종이 임박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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