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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다 버린 껌이 타이어로...'과학' 만나 변신한 쓰레기들

입력 2022/07/04 17:05
수정 2022/07/04 20:09
쓰레기 재활용 넘어 자원 변신
과학자들 팔 걷어


美화학회 학술대회 깜짝 발표
상한 음식으로 곰팡이 배양 후
천연섬유에 가죽까지 만들어내

영국 과학자는 페트병 재발견
화장품용 바닐라 향 추출해내

음식물 쓰레기와 박테리아 혼합
항공유 만들어 시험비행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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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을 재활용해 만든 고무바퀴.

올해 3월 열린 미국화학회(ACS) 춘계학술대회에서는 가죽공방에서 볼 법한 손바닥만 한 카드지갑이 등장했다. 소가죽도, 양가죽도 아닌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곰팡이 가죽' 지갑이었다. 스웨덴 보로스대학 섬유공학 연구팀은 마트를 돌며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얻어 잘 말리고 가루가 되도록 빻았다. 이 부스러기를 다시 물에 섞어 상한 음식에서 쉽게 발견되는 리조푸스 딜레마(Rhizopus delemar) 곰팡이 포자를 넣었다. 곰팡이는 빵을 먹고 자라면서 세포벽에 축적돼 있던 키틴과 키토산으로 구성된 미세한 실을 만들어냈다. 이틀이 지나고 난 후 연구원들은 지질과 단백질을 포함해 기타 부산물들을 제거했다. 곰팡이가 만든 천연섬유는 의료용 붕대나 의류로 활용된다.


이들은 또한 부산물을 제거하고 난 후 남은 곰팡이 세포의 현탁액을 평평하게 펼쳐놓고 건조해 '곰팡이 가죽'을 만들었다. 유연성과 강도, 광택 등 천연 가죽과 유사한 특성을 주기 위해 나무에서 추출한 탄닌 등 다양한 천연 성분을 넣었다. 곰팡이 가죽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가축의 사료로 다시 쓰인다. 학술대회 참가자들은 "머지않은 시기에 곰팡이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학술대회가 아닌 패션쇼에서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기대를 남겼다.

연구 책임자인 아크람 자마니 스웨덴 보로스대학 섬유공학과 교수는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곰팡이의 먹이로 사용해 플라스틱을 활용한 합성섬유와 동물 가죽, 면 같은 천연 소재의 섬유를 대체하기 위한 시도"라며 "최근 들어 꾸준히 대두되고 있는 윤리적·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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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쓰레기들은 이제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과학계에서는 인류가 살고 있는 시대를 선캄브리아대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에 이은 '인류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의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썩지 않아 지층 곳곳에 쌓인 비닐 등 플라스틱이 전 지구에서 동일하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인 비닐봉지들은 사막의 낙타를 굶겨 죽인다.

2020년 두바이·미국 공동 연구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두바이에서 사망한 낙타 3만마리 중 300마리의 배 속에서 엉겨 붙은 플라스틱 덩어리가 나왔다. 먹이 대신 플라스틱을 먹고 배가 부르다고 착각한 낙타가 굶어 죽은 것이다.


이처럼 인류가 일으키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플라스틱과 비닐봉투가 만들어진 이유는 역설적으로 환경보호 때문이다. BBC 영상 스트리밍 섹션인 BB릴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비닐봉지를 처음 고안한 배경은 종이봉투를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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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봉투를 사용하다 보니 나무가 많이 사라졌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비닐봉투였다. 하지만 이들이 대표적인 골칫거리로 전락하자 과학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곰팡이 가죽처럼 플라스틱을 대체하면서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을 새로운 소재들을 또 다른 쓰레기를 통해 찾아내고, 이미 처치 곤란한 플라스틱을 다시 활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낸다. 플라스틱뿐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쓰레기들이 지구와 인류를 위해 다시 쓰일 수 있도록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스베틀라나 보리스키나 박사 연구진은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재료로 많이 쓰이는 소재인 폴리에틸렌(PE)을 섬유로 재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폴리에틸렌은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데다 열 투과성도 높지만 물과 땀을 흡수하지 않아 지금까지는 의류로 활용되지 못하고 밧줄 등을 만드는 데만 쓰였다. 연구진은 폴리에틸렌 중합체를 용융점 이상의 온도에서 녹여 작은 구멍으로 압출한 후 냉각시켜 직접 섬유를 뽑았다. 이들은 이러한 압출 공정 과정에서 폴리에틸렌이 산화하면서 섬유 표면이 일부 친수성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흡수능력을 최적화하기 위해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실의 직경과 조성, 이들을 직물로 엮을 때 배열 방식 등을 모델링했다.이 결과 일반적인 면과 폴리에스터 섬유에 비해 더 높은 흡수율을 보이는 PE 섬유를 만들었다.

지난해 영국의 과학자들은 버려진 페트병에서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바닐라 향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대중적인 향인 바닐라는 바닐라 식물에서 자라는 바닐라 콩에서 얻는다. 바닐라 열매를 4개월간의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친 후에야 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천연 바닐라는 가장 비싼 향신료 중 하나로 꼽힌다. 이를 대체할 화학 성분인 '바닐린'은 지금까지는 대부분 석유화학제품이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 연구원들은 음료수 병에 주로 활용되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돌연변이 효소를 사용해 테레프탈산(TPA)으로 분해하고, 유전자를 조작한 대장균을 이용해 TPA를 바닐린으로 바꿨다. 연구진은 대장균과 TAP를 섞고 섭씨 37도에서 하루 동안 배양하자 테레프탈산의 79%가 바닐린으로 변환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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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부스러기와 곰팡이로 만든 가죽지갑.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디자인 스쿨에 재학 중인 두 학생이 버려지는 껌을 수집해 스케이트 보드 바퀴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기도 했다.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PMMA)로 만든 수집판을 곳곳에 붙여 사람들이 바닥에 껌을 뱉는 대신 수집판에 껌을 붙이도록 유도했다. PMMA는 껌을 녹이고 바퀴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껌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대부터 존재해왔던 껌은 여러 나무의 수액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근의 껌은 자동차 타이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폴리이소부틸렌이라는 합성 고무로 구성된다. 이를 재가공하면 타이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재활용 기업 '검드롭'은 사람들이 씹다 길에 뱉은 껌을 수거해 고무장화와 휴대폰 케이스, 일회용 포크 등을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하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자오옌윈 오리건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사과 주스로 가공되고 남은 사과 찌꺼기를 과일·채소 등을 포장하는 포장재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특허를 받았다. 사과 껍질에도 포장재로 활용될 수 있는 펄프 성분이 있지만 습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들은 사과 껍질의 내수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키토산과 리그닌, 글리세롤 등 사과 펄프로 만든 필름의 수분 흡수를 줄일 수 있는 물질로 코팅을 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연료도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이미 바이오 연료로 일부 쓰이고 있지만 수분이 많은 음식물 쓰레기의 경우 발효되는 과정에서 메탄으로 바뀌기 때문에 항공유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 연구소 데릭 바던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음식물 쓰레기를 메탄으로 발효하게 하는 메탄 미생물의 발효를 억제해 휘발성 지방산(VFA)을 생성해냈다. 이후 촉매 전환 과정을 거쳐 두 종류의 파라핀 연료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만든 두 가지 종류의 파라핀을 일반 제트 연료와 7대3의 비율로 혼합했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든 연료는 일반 화석에너지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165%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 공군 역시 미 해군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로 군용 항공유를 개발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이들은 음식물 쓰레기와 특정 박테리아를 혼합해 기름 성분을 생성한 다음 촉매와 열을 가해 항공 연료를 만들었다. 초기 실험실 조건에서 만든 15ℓ의 연료를 통해 엔진 테스트에 성공한 공동 연구진은 지난 3월 영국 윌트셔주에서 4m 크기의 무인 드론에 주입한 후 진행한 20분간의 테스트 비행에 성공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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