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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Journal] 빛처럼 빠르게, 송곳처럼 정확하게…'꿈의 癌치료기'가 온다

입력 2022/08/10 04:24
'최첨단 방사선 기술의 총아' 중입자치료기 대해부
◆ 제주 중입자치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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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방사선 암치료기 가운데 가장 효과가 좋아 '꿈의 암 치료기'라고 불리는 중입자치료기(Heavy Ion Radiotherapy)가 제주도에 도입된다. 내년 3월 가동을 앞둔 세브란스병원(서울 신촌), 2027년 가동 예정인 서울대병원(부산 기장)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김일환 제주대 총장, 송병철 제주대병원장, 이기운 CCG인베스트먼트 아시아 대표, 무라타 다이스케 도시바 중입자 신기술사업총괄대표, 쓰지이 히로히코 전 QST 병원장, 강태현 중입자치료지원센터코리아 대표 등 6개 기관 대표는 지난달 29일 원격 영상으로 한국과 일본을 연결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25년까지 암 치료 환자와 보호자가 장기간 머물며 쉴 수 있도록 '치료+힐링' 개념의 '한국 중입자선 암치료 메디컬 리조트'를 완공하고 2026년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제주도 중입자치료기 도입에는 50년이 넘는 중입자 연구와 임상 경험이 있는 QST병원(일본 국립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옛 NIRS) 의료진이 제주대병원과 협력해 국내 중입자선 암 치료 의료진의 교육과 임상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도시바 역시 세계에서 중입자 설비 구축에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3억5000만달러의 투자계약 의향서를 체결한 CCG인베스트먼트 아시아(CCG Investment Asia Limited)는 싱가포르 증권사 CGS-CIMB 계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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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서울, 부산, 제주도에 중입자치료기가 설립되면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대수를 보유하게 된다. 중입자치료기는 현재 일본 7대, 독일·중국 각각 2대,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각각 1대 등 13대가 설치돼 있으며 대만도 1대를 구축 중이다. 중입자 치료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은 일본이며 2021년 말 기준 약 1만4000명의 암 환자가 이용했다. 중국은 치료 실적이 매우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의 핵의학 역량과 의술을 가진 미국은 왜 중입자치료기가 없을까. 미국은 1954년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양성자 치료를 시작했고 1973년 네온, 1977년 탄소이온을 사용해 중입자 치료를 본격 시작했다. 1977~1992년에는 네온, 탄소, 헬륨이온 등을 중입자 치료의 초기 암 임상에 활용했다. 당시 치료한 2054명은 헬륨이온, 433명은 네온이온을 조사(照射)해 치료했는데, 헬륨이온을 조사한 환자들은 일부 척색종(원발성 골종양), 연골육종 등과 같은 암이 발생했다. 1980년대 들어 MRI가 도입돼 1987~1992년 중입자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그 이전보다 치료 효과가 훨씬 좋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국제 정세의 탈핵 분위기와 맞물려 주요 핵물리연구 가속기들이 해체됐고 중입자치료도 1993년 전격 중단됐다.


특히 그 당시 영상의학이 발달하지 못해 불충분한 화면, 들쭉날쭉한 조사량(照射量), 불명확한 암세포 시각화 등 제한이 많아 중입자 치료를 중단해도 반발이 거의 없었다. 미국에서 중입자 치료가 중단되자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일본 연구원들은 자국으로 귀국해 중입자 치료 연구를 계속해 1994년 국립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지바 소재)에서 세계 최초로 의료용 중입자선 조사장치((HIMAC)를 개발했다. 이후 일본은 약 10년 동안 임상시험을 거쳐 정부가 안전성과 효능을 인정해 2003년부터 암 환자 치료에 중입자치료기를 본격 활용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일본은 이미 1950년대부터 중입자 연구를 진행해왔다.

역설적이지만 '원폭(原爆)'이 시발점이 됐다. 일본 정부는 1954년 방사선의 인체 유해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고 1957년 NIRS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광자선(X선·양성자), 전자선, 입자선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 과정에서 1981년 암 사망자가 급증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1984년 방사선 연구를 암 완치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바꾸게 됐다. 1993년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일본 연구진 합류로 중입자치료기 개발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현재 미국은 중입자치료기가 없는 대신 양성자치료기(proton therapy center) 34대(2020년 8월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양성자치료기는 우리나라 국립암센터, 삼성서울병원 등을 포함해 약 90대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중입자치료기보다 양성자치료기가 널리 알려진 것은 국내 의료진이 주로 해외연수를 미국에서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성자치료기도 중입자에 비해 효과가 다소 낮지만 '꿈의 암 치료기' 반열에 올라 있다. 양성자 치료는 수소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빛의 60%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시킨 뒤 환자 몸에 쏘아 암 조직만을 파괴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일부 암의 양성자 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주고 있다.

암 치료 분야의 저명 국제 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온콜로지(Frontiers In Oncology)'는 올해 6월 14일자로 "메이요 클리닉이 플로리다 잭슨빌에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중입자가속기 도입을 발표했다"면서 "미국도 엄청난 설비투자비용과 운영비 등 부담이 작지 않지만 암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 잠재적 이득을 고려한다면 중입자치료기의 재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과학계와 의료계가 매우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고 학술지는 강조했다.


중입자치료기 설립은 보통 2500억~3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까닭은 암 치료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중입자치료기는 최첨단 방사선 기술이 집약된 '총아'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세계 최고의 중입자선 치료 기술을 갖게 된 것은 탄탄한 물리학 인프라스트럭처 때문이다.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 29명 중 과학(물리, 화학, 생리의학)부문 수상자가 25명이다. 중입자 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12명이다. 중입자치료기 설비 제작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도시바를 비롯해 히타치, 미쓰비시 등에서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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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QST병원에서 의료진이 중입자치료에 앞서 암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일본 QST병원]

세계 각국에서 그동안 중입자 치료를 받은 암 환자는 약 3만7000명, 양성자 치료는 약 25만명(2020년 말 기준)으로 추산된다. 중입자 치료와 양성자 치료는 모두 방사선치료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방사선 치료는 입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암조직에 쏟아부어 암세포를 죽인 뒤 방사선에너지는 소멸하는 '브래그 피크(bragg peak)'를 활용하는 치료법이다. 방사선치료기는 사용되는 입자에 따라 종류가 구분된다. 기존에 방사선 치료에 사용된 X선과 감마선은 암세포를 겨냥해 강하게 쏘아도 피부를 뚫고 몸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살상 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하지만 입자선은 몸의 표면에서 방사선량이 적지만 몸속 암조직에 도달하면 방사선량이 극대화됐다가 사라진다. 중입자(重粒子) 치료기는 탄소, 네온, 헬륨과 같이 무거운 입자인 중입자를, 양성자(陽性子)치료기는 수소입자를 사용한다. 중입자는 수소입자보다 12배나 무거워 보다 더 큰 힘으로 암세포를 파괴할 수있다. 이 때문에 중입자치료기는 양성자치료기보다 치료 횟수가 적고 회복 기간도 짧다.

암세포 살상 능력은 X선보다 12배, 양성자보다 3.2배나 강하다. 탄소입자를 사용한 중입자 치료는 초당 10억개의 탄소입자가 암세포를 공격한다.

이와 함께 중입자 치료는 양성자 치료나 기타 X선 치료와 달리 암세포 외의 주변 조직에 입자가 흩어지지 않는다. 입자를 쏘아 몸속에 그림을 그린다고 가정하면 양성자는 그림의 경계가 약간 흐릿하게 그려지는 반면, 중입자는 보다 선명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중입자는 정상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얘기다.

중입자 치료는 빛의 속도 70~80%까지 탄소입자를 가속시켜 체내 30㎝ 깊이에 에너지 감소 없이 침투시켜 암세포를 정확하게 타격한다. 가속된 탄소입자는 처방된 치료 방사선량으로 종양을 3차원으로 '페인팅'하기 위해 약 2500㎜ 거리에서 1㎜ 미만의 정밀도로 수직·수평으로 조정돼야 한다. 치료 방법은 고정빔형과 회전형 갠트리로 나뉜다. 고정빔은 치료기가 고정돼 있고 환자가 치료 부위와 치료 계획에 의해 몸을 돌려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회전형 갠트리는 환자는 가만히 누워 있고 치료기가 356도 회전하면서 치료 각도를 맞추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훨씬 발전된 형태다.

중입자는 주로 폐암, 간암, 췌장암, 두경부암, 골육종암, 전립샘암 등 고형암(암세포가 덩어리로 자라난 암)에 대한 치료 효과가 좋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중입자치료기를 암세포를 파괴하는 명사수"라고 표현했다. 폐암이나 간암의 경우 절제 수술 없이 중입자선 1~2회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치료 시간도 30분 이내로 짧다.

이 때문에 중입자는 고령화로 암수술을 받기 힘든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송병철 제주대병원장은 "중입자치료는 비수술로 암을 치료할 수 있어 암환자에게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암은 초기라도 종양 위치에 따라 거의 대부분을 절제하고 항암·방사선치료를 한다. 고령환자는 항암이나 방사선치료를 받다가 면역력이 뚝 떨어져 다른 질환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많다. 우홍균 서울대병원 중입자가속기사업단장은 "임상 경험이 쌓이고 연구가 계속되면 엑스선이 없어지고 중입자치료가 주된 방사선치료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입자는 이미 원격전이된 암은 그 효과가 제한되고 계속 움직이는 소화기계통 암, 끊임없이 움직이는 혈액암 등은 치료가 어렵다. 다만 전이암은 전이된 곳이 2~3군데 이내라면 중입자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 중입자치료기는 최근 등장한 의료기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다. 또한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한 차세대 항암제가 출시되고 있어 감가상각을 계산한다면 수천억 원의 치료기 도입이 꼭 필요한지 재고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논란은 내년 세브란스병원의 중입자 암치료기가 가동되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027년 국내에 중입자치료기 3대가 완공되면 한 해 암환자 5000~6000명이 치료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해 신규 암환자가 약 20만명이라면 그중 전이가 안 된 주요 고형암환자 5만4000명(27%) 가운데 약 10%, 즉 5400명이 중입자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중입자치료는 비용이 5000만원 이상 고가여서 실제 치료가 가능한 암환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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