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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에 과학자가 나가면 이런 모습? 지구촌 '두뇌'들의 이색 경연 [한입과학]

김우현 기자
입력 2022/09/21 09:01
수정 2022/09/2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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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댄스 유어 피에이치디(Dance Your Ph.D)` 최종 우승자인 포빌라스 시모니스 리투아니아 물리과학기술센터(FTMC) 연구원의 출품작 한 장면. 이들은 펄스 전기장이 처리된 효모의 반응을 조사한 연구를 춤으로 표현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연례행사는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노벨상은 6개 수상 분야 중 절반(물리·화학·생리의학)이 과학과 관련됐는데 이 분야 수상자는 과학계를 넘어 세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권위 대신 '유쾌함'에 초점을 맞추면 과학계에는 노벨상 수상만큼 유명한 경연이 몇 개 있다. 깊게 파고들지 않으면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들이 왜 이런 겨루기를 하는지 이해 못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치하하는 노벨상만큼 숭고하지 않을지언정 각자 나름의 목적이 있다.




◆ 웃긴 게 먼저, 생각은 나중에! '이그노벨상'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마크 에이브러햄스가 1991년 만든 상이다. 현재 에이브러햄스가 창간한 과학 유머 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이하 AIR)' 주관으로 매년 10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름에 '노벨상'이 포함돼 있어 과학적인 느낌이 물씬 나지만, 대중들에게는 '가짜 노벨상', '괴짜들의 노벨상' 등으로 알려져 있다. 어두에 붙은 '이그(Ig)'도 '있을 법하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의 약자라서 상의 성격을 짐작게 한다.

실제로 이그노벨상 수상자의 연구는 하나같이 독특하다. 이달 15일(현지 시각) 발표된 올해 수상자의 것을 살펴보면 ▲변비가 전갈의 짝짓기 가능성에 끼치는 영향(생물학상) 연구▲손가락으로 문손잡이를 돌릴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공학상) ▲법률 문서를 쓸데없이 어렵게 만드는 요소 분석(문학상) ▲ 등이 있다. 참고로 수상자 선정 후 분야를 적당히 붙이는 식이라 수상 분야랄 것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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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의 공식 마스코트인 `냄새나는 사람(The Stinker). 로댕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했다. [사진 출처 = AIR]

선 넘은 유머는 실례이듯 한편으로는 연구 내용이 과하게 유쾌해 과학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AIR 측은 수상 목적에 대해 "우리는 사람들을 웃게 한 후 생각하게 만드는 업적을 기린다"라며 "특이한 것을 축하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을 존중하며 과학, 의학,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조롱 같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좋은 업적도 기묘하고 웃기며 심지어 터무니없을 수 있다"라며 "다수의 좋은 과학적 성취가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불합리한데도 불구하고 나쁜 성취가 존경받기도 한다"라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이그노벨상 수상식은 매년 하버드대 샌더스홀에서 열리고,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상을 수여한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면 이그노벨상의 취지와 권위가 과학계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에서도 4명의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가장 최근 수상자는 지난 2017년 유체역학상을 받은 한지원 당시 버지니아주립대 재학생으로,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걸을 때 쏟아지는 이유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박사님들의 춤 대결 '댄스 유어 피에이치디'


지난해 엠넷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가 방영된 후 국내에 춤바람이 일었다. 그런데 과학계에는 스우파보다 유서 깊은, '박사 학위(Ph.D) 소지자' 대상 댄스 경연 대회가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14년째 개최하고 있는 '댄스 유어 피에이치디(Dance Your Ph.D)'다. AAAS는 네이처, 셀과 함께 과학 분야 3대 학술지로 꼽히는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기관이다.

이 대회는 과거 과학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존 보하논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보하논은 2008년 과학자들이 참석하는 파티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박사 학위 논문 내용을 말없이 춤으로 표현하는 일회성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런데 과학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자 AAAS는 2009년 연례 대회로 만들었다.

AAAS에 따르면 과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소지했거나 박사 과정 학생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저자로 참가한 논문을 춤으로 표현한 후 이를 찍은 영상을 유튜브나 틱톡에 올린 후 링크를 제출해야 한다. 무용수·과학자·예술가로 이뤄진 심사위원단이 물리학·화학·생물학·사회과학 등 4개 부문에서 우승자를 선정하고, 이 중에서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각 부문 우승자는 750달러(약 105만원), 최종 우승자는 2000달러(약 28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영상 제작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상금이 후한 편은 아닌데 참가자들은 보통 교육적인 이유로, 연구를 재검토하는 차원에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춤을 췄다고 답했다. 별개로 대회 초기 3년 동안 수상한 '댄스 유어 피에이치디' 영상의 총 조회수는 75만회를 넘기며 과학 대중화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올해 최종 우승자는 생물학 부문에서 나왔다. 주인공은 포빌라스 시모니스 리투아니아 물리과학기술센터(FTMC) 연구원으로, 전기 자극을 받은 효모 행동에 관한 연구를 바게트빵을 이용한 춤으로 표현했다.

◆ MIT 최고의 '적분왕'은 누구


전 세계 내로라하는 과학 덕후가 모인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는 매년 초 독립활동기간(IAP)에 이색 대회가 열린다. MIT 수학과 대학원생들이 '적분 대회(MIT Integration Bee)'다. 지난 1981년 당시 응용수학과 3학년 학생이었던 앤드루 버노프가 수학의 근본을 '적분'이라 생각해 열었던 것이 올해로 41회를 맞았다.

수학 개념 중 특히 복잡한 적분과 관련된 문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풀리는 경우가 많아 종종 수학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인다. 수학과 대학원생들은 예선을 통해 성적이 좋은 8명을 선발한다. 대회 당일 이들이 토너먼트 형식으로 개인전을 펼쳐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2명씩 짝지어 동시에 똑같은 적분 문제를 1개씩 풀어가며 더 많이 푼 사람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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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MIT 수학과 대학원생이 주최하는 `적분 대회`에서 최종 4인에 든 학생들. 모자를 쓴 사람이 최종 우승자다. [사진 출처 = MIT수학과]

최후까지 남은 4인에게는 수학과에서 준비한 수학책을 선물로 주고, 우승자에게는 '위대한 적분가'라는 칭호와 함께 기념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 '영광'까지 부여한다. 지난 1월 열린 올해 적분 대회에서는 수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성통 장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적분 대회는 강의실 안에서 칠판과 분필만 가지고 치르는 대회지만, 관중이 보통 100명을 넘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김우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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