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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성공한 세대교체…YS·DJ 40대 기수론, 386세대 국회진출

입력 2020/12/27 17:04
수정 2020/12/30 09:18
정치권에 '젊은피' 새바람 불러와
남원정·천신정, 여야 혁신파 그룹
정풍운동 주도하며 중진으로 성장
◆ SPECIAL REPORT : X세대 정치인 ◆

정치권에서 새로운 세대가 부상하는 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미미한 출발이었지만 세력화에 성공하면서 주역으로 성장한 전례들이 있다. 세대교체론 혹은 혁신파의 원조 격은 1970년 이른바 '40대 기수론'이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40대가 젊은 대선 후보가 돼 새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969년 당시 42세인 김영삼 의원이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 도전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명분은 두 가지. 첫째는 평화적 정권 교체 기회가 있었지만 노쇠한 야당 지도자들이 놓쳤다는 점, 둘째는 40대가 주력인 집권 세력에 비해 야당 지도자 연령이 높다는 점이었다.


해를 넘긴 1970년 당시 44세인 김대중 의원과 47세인 이철승 의원도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하나의 흐름이 됐다.

물론 당시 신민당 지도부는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아직 젖비린내가 난다)"라며 불편해했지만 흐름을 꺾지는 못했다. 그해 9월 40대 기수 삼파전으로 치러진 신민당 전당대회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대중 의원이 대선 후보로 결정됐다.

그리고 1971년 여당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경쟁했다. 대선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40대 기수론을 주장한 이들은 이후 한국 야당 거목으로 성장한다.

또 한 번의 세대교체 바람은 386세대 등장이었다. 386컴퓨터에서 파생한 이름인 386세대는 1990년대 말 등장했는데, 학생운동 지도부를 거쳤던 30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이란 의미를 가진 신조어였다. 즉,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젊은 고학력층을 의미한다.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은 1996년 32세인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민석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선에 당선되면서 시작됐고 김대중(DJ)정부가 들어선 뒤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대거 영입됐다. 다만 이때만 해도 신인 정도의 위상이었다.


그러나 임종석 등이 2000년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386세대가 성장했고, 2004년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40명 넘게 당선되면서 386세대 전성기가 시작된다.

당시 국회에 들어온 인물로는 이인영(현 통일부 장관)·우상호(전 민주당 원내대표)·윤호중(현 국회 법사위원장)·김현미(현 국토교통부 장관)·김태년(현 민주당 원내대표)·최재성(현 청와대 정무수석)·강기정(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있다.

이들은 2012년·2016년 총선을 거치면서 위상을 굳건히 했고, 2017년에는 민주당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주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50대 중후반이 돼 586으로 불리는 이들은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40대 기수론과 386세대가 세대교체 수준의 큰 흐름이라면 '남원정'과 '천신정'은 개혁을 주장한 혁신파 그룹의 대명사 격이다.

1990년대 말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 주도로 '젊은 피' 영입이 활발했는데 그 가운데 남경필(전 경기지사)·원희룡(현 제주지사)·정병국(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른바 남원정이 있었다.

이들은 2000년 총선 이후 본격적인 소장파 활동에 들어간다. 당 지도부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고 개혁을 주장하면서 유명세를 얻었고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주축이 됐다.

천정배(전 법무부 장관)·신기남(전 열린우리당 의장)·정동영(전 통일부 장관) 등은 '천신정'으로 불린 현 여권의 개혁 소장파였다. 1996년 총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이 됐는데, DJ 키즈로도 불렸다. '정풍 운동'을 주창했고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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